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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동댁 Nov 16. 2022

네? 우리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라고요?


매주 목요일이 되면 아이를 12시 반에 하원 후, 유모차에 태워 치료센터에 간다. 감각통합치료 수업인데 어린이집 부모상담 후부터 다녔으니 8개월 정도 됐다. 두 돌까지 엄마, 아빠조차 안 나오는 그야말로 무발화였던 상태라 언어치료도 진작부터 받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기관 생활을 하기에 예민한 부분들이 있으니 치료센터라도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고, 나는 희끗한 머리를 숙이고서 마스크 속으로 눈물을 감췄다. 첫 아이라 미숙한 게 많은 나였지만, 아이를 키우며 갸우뚱거렸던 건 그저 느려서만은 아니구나 라는 걸 등 하원 시 같은 반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깨닫곤 했다.

 

 어린이집에서 센터까지는 걸어서 대략 20분 정도 걸린다. 아이가 어느새 키가 100 센티미터가 넘고 겨울옷도 두껍다 보니, 방풍커버를 씌운 유모차가 작아져 태울 때마다 다리가 이리저리 걸리곤 한다. 언제까지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데 5세가 되면 손잡고 걸어 다닐 수 있을까 벌써부터 염려가 된다. 겨울이라 해도 늦지 않게 가려 서둘러 걷다 보면 겉옷이 벗고 싶어 지고, 마스크 안은 축축해진다. 구민회관을 지나 소피아 호텔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집에서 가져온 컵 커피 한 모금 들이키며 숨을 돌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영유아 발달지원 사업 안내’라는 기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는 ‘영유아 발달’이란 단어만 봐도 순간 긴장할 정도라, 그것이 궁금해진 나는 육아지원센터 홈페이지를 찾았다. 그런데 장난감 대여와 가끔 이용하는 실내놀이터 말고는 잘 들어가지 않다 보니 내용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나 한 번 해볼까 하다가 깜빡 잊었는데, 우리 아이와 같은 센터를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 엄마가 구에서 검사를 무료로 진행해주니 신청해보라면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찾던 그 내용이었다.

 

 내용은  만 3세~만 5세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표준화된 검사도구인 K-CDI(아동발달검사), K-TABS(기질 및 비전형 행동 검사) 기본 검사를 실시하여 영유아의 발달 상태를 확인하고, 영유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영유아 발달지원 사업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육아지원센터에 전화했더니 간단한 설명과 함께 검사지를 휴대폰 문자로 보내주었다. 기본 검사는 양육자가 체크하는 방식이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고, 해당 내용을 전송하기에도 편리했다. 그러고는 늦지 않게 메일로 결과를 알려주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 치료센터를 여럿 다니고 있으니 심층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이가 받은 검사는 임상심리사가 진행하는 ‘웩슬러’라는 지능검사였다. 40~50분 정도 아이와 검사를 진행하고, 그 후 부모상담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복도 의자에 앉아 검사실에서 나는 소리를 숨죽이고 들었다. 지구 말고 아는 행성이 있는지, 파마하려면 어디를 가야 하는지 같은, 인지에 관한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아이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불안했다. 아이는 평소 알고 있는 것도 처음 겪는 상황에서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그것을 알리 만무하나, 오늘처럼 낯선 상황에서 겪는 것까지 검증받는 것이 검사일 거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님의 관찰을 바탕으로 간단한 상담이 이뤄지는 동안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말도 없이 대변보려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일이 실수라고 하기에 너무 잦으니 아직 배변훈련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고 해야겠다. 소변 가린지는 1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대변은 팬티에 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긴장을 한 건 아이만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 상황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2주 뒤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상담을 했다. 아이의 지능이 좋고, 늦게 트인 것치고 언어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놀이 상황에서 역할놀이를 할 때 너나 구분이 되지 않고, 상호작용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놀이치료를 하면서 사회성을 많이 올려야 하니, 엄마가 옆에서 꼭 잘 도와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조심스레 ‘자폐 스펙트럼’ 범주나 그 경계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역시 그 말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입으로 내뱉어서 제 귀로 절대 듣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단어, 자폐 스펙트럼.


 마스크가 있어 표정을 조금이라도 가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순간 눈이 커지며 흔들리는 나 모습을 상담자는 못 보셨을 리 없다. 스펙트럼의 범주가 워낙 넓고, 지능이 높아 예후가 좋으니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혹시 많이 당황했냐고 묻는다. 내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두 돌까지 말이 트이지 않아 대학병원 진료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 언어지연으로 보이고 아직 어리니 6개월이 지난 후에도 발화가 되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하시며 검사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말이 트여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실상 언어는 가장 큰 문제였지, 그 뒤에 가려진 문제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불빛과 소리 나는 장난감을 좋아하고, 또래와는 놀이를 수월하게 하지 못하며, 전원 스위치를 껐다 켰다 반복하는 행동을 하는 아이를 힘들어했다. 15년 직장생활까지 관두고 아이만 보고 있는데,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어려울까 하며 우울해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코로나 생활을 두려워하며 기관을 늦게 보내고 집안에서 갇혀있기를 선택한 내 잘못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성장해갔다. 소리 나는 장난감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 그만 가지고 놀까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내려놓기도 하고, 전원 스위치를 보고서도 잘 참기도 한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울먹이면서도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사실 조금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자폐 스펙트럼이 맞냐 아니냐 그걸 알기 위해 병원 쇼핑하듯 다니며 아이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안 좋았던 아이의 행동들이 노력을 통해 소거되었고, 그것이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면 다시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고, 아이가 사회생활을 할 때 조금 편안하게 살게 도우면 되지 않겠냐고. 선생님은 눈빛으로 내 마음을 깊이 공감해 주셨다.


애초 30분으로 예상했던 상담이 한 시간 가량으로 길어져 장난감 하나 없던 방에서 낮잠도 못 잔 아이가 혼자 잘 참아준 것이 그저 대견해 꼭 안아주었다. 감정이 벅차올라 여기서 그냥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아이를 위해 복도에 비치된 그림책 하나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이 검사를 지원받아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알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올해 안에 대학병원 진료를 다시 볼 예정이다. 내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책하는 생각은 멈추기로 했다.

코로나 생활 가운데 매일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무사히 지냈음을 감사해하고 언젠가는 일상을 회복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듯 우리 아이에게도 더 빛나는 날이 오기를.

오늘 아이와 내가 한 노력이 마중물이 되어 언젠가는 시원한 지하수가 콸콸 넘치는 날이 오기를.

비록 지금은 사회성이 부족해 어렵고 힘들지만, 친구들과 조잘조잘 웃으며 함께 노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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