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다큐멘터리 '샤먼 : 귀신전'
귀신을 믿냐고요?
모든 사람이 그 질문을 해요. 그럼 늘 이렇게 답하죠.
'믿느냐'는 잘못된 질문 방식이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질문의 방법은 '믿느냐'가 아닌 '효과가 있느냐'인 것 같아요.
효과가 있다는 의미는 '이 무속인이 도움이 되었다'
'이 무속인과 같이 일하는 신들이 효과가 있거나, 없다'
'의식을 하고 나서 상황이 나아졌느냐?' 같은거예요.
-다큐멘터리 '샤먼 : 귀신전' 중 인류학 박사 '로렌 켄달'의 인터뷰
점과 사주, 무속신앙과 전통에 대해 관심이 깊은 나는 민속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꽤 독특한 꿈이 있다. 신점과 사주팔자를 믿기도 하지만 나에겐 학문적인 호기심이 믿음의 영역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현실(돈벌이)에 치이고 현재 타 전공의 야간대학 석사과정에 있어 그 꿈을 정말 실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진짜 대학원에 진학을 해볼까 싶어 깊게 찾아본 적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민속학과는 중앙대와 안동대가 있었으나 두 곳 모두 폐지(또는 변경)되었고 주로 국문학과나 인류학과의 세부 전공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인류학이라니 너무 재밌을 것만 같은 이 기분.
그런 나에게 티빙 '샤먼 : 귀신전' 다큐는 안보고는 못배기는 콘텐츠였다. 티빙에 공개되자마자 보기 시작하여 하루만에 4화까지 시청 완료. 1~4화가 먼저 공개되었고 오늘(7월 18일) 5~8화가 공개된다고 하는데 8화까지 보지 않아도 이미 2화에 나온 한 인류학 박사님에게 반해버렸다. '믿느냐'가 아닌 '효과가 있느냐'라는 질문. 이것이 인류학과 민속학을 학문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나의 이유를 명확하게 꿰뚫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바쁘고 압박감이 크고 타인과의 비교가 심한 한국사회에서 정신과의 수가 이렇게 적은 데는 '점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정신과가 아니라 점집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좋든 나쁘든 이미 정해진 것이고 당장 일어나는 안 좋은 일이 내 탓이 아니라는 증명, 그것이 점이고 사주이기 때문이다. 이 의견을 보고 생각해보니 나도 점집에 가면 해답을 얻는다기 보단 '맞아 당분간은 좀 힘들거야', '몇월이 되면 취업이 될거야', 'NN살이 되면 더 좋아질거야!'라는 희망과 위안을 품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한 마디를 희망으로 붙잡고 힘든 시기를 버텨냈던 나를 돌아보면 진짜 정신과 상담에 준하는 치유가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다큐는 로렌 켄달 박사의 말처럼 귀신과 무당의 존재에 집중하기 보단 일반인 출연자들의 사연에 집중하되 해결책 또는 고통감면의 방식으로써 무속을 제시하고 있다. 귀신이 보여 고통받지만 가족들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사연자, 피하고 싶은 무속이라는 운명을 결국 받아들이게 된 사연자, 빙의로 고통받는 사연자까지. 여타 다른 방송과 달리 약간은 긴장한 듯한 무속인들과 과장 없이 담담한 연출은 사연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특히 귀신이 보여 힘들어하였던 첫 사연자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무도 자신에게 공감해주지 않아 더욱 힘들었던 그녀에게 굿이라는 방법을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을 전달해주던 무속인은 그 어떤 상담과 약물치료보다 도움이 됐으리라 나는 확신했다. 아이처럼 서럽게 울며 힘내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던 그녀를 보며 설령 그녀가 본 것이 진짜 귀신이든 아니든 무당이 정말 아버지의 말을 전해주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굿과 무속인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의 상황이 나아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도 있고 그런게 어딨냐며 절대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의학의 기능까지 일부 담당했던 무속이 현재까지도 일부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과거에는 물리적 치료였다면 지금은 정신적 치료로 바뀌었을 뿐.
종교로서의 무속, 문화로서의 무속, 예술로서의 무속 등 무속신앙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한국인의 일상에 녹아들어있을 것이다. 5~8화에서는 어떤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면 아마 인류학 또는 민속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지 않을까. 꼭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공부를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 오늘은 추천도서를 구매하려 서점을 들러봐야겠다.
참, 이 글을 모두 읽은 여러분은 무속을 믿나요? 귀신을 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