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29살 듀오
내게는 눈에 넣으면 아프긴 아플 절친들이 있다. 워낙 히스토리들이 많아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오늘은 나의 아홉수와 평행이론을 달렸던 친구 '유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왜 유과냐고 물으신다면 예전에 한국 전통 컨셉 성격테스트를 했을 때 '유과'형 이라고 나와서 유과가 되었다. 더 많은 별명이 있지만 이미지를 위해 생략하도록 하겠다.
유과는 중학교 때는 서로 존재만 알고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절친이 된 친구다.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하고 벌써 17년이 되었으니,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친구로 지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취직도 비슷한 업계로 하고 겪었던 일도 묘하게 비슷한 경우가 많았는데 놀랍게도 아홉수도 거의 똑같이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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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과는 첫 회사에서 근 2년 가까이 일을 하고 퇴사를 했다. 퇴사 당시에 다양한 회사의 면접 전형이 진행 중이었고 친구는 맘 편히 사표를 던졌다. (그녀는 나처럼 퇴사의 목표가 휴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홉수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했던건지 회사와 인연이 아니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도 퇴사를 했으니 유과와 나는 29살 퇴사 듀오가 되었고, 역시 평행이론 팔자라며 신나게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둘 다 경력도, 학력도, 스펙도 나쁘지 않았기에 당장 취직에 대한 걱정을 심각하게 하기보다는 '커리어 성장 목표에 맞는 곳',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을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스포하자면 놀라우리만치 두 명 모두 바로 다음에 취직한 회사에서 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미친 아홉수다 정말.
나는 퇴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2~4월 친구는 규모가 매우 큰 한 회사의 면접 전형이 진행 중이었다. 서류 접수 후 서류 합격까지 약 한 달 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차 면접을 거친 상황이었다. 분위기가 좋았던 1차 면접을 두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이야~ 대기업 친구 두는거냐!'라며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마시는 축하의 메시지를 건넸다. 1차 면접 합격 후 일주일 뒤, 무난하게 인사팀과 2차 면접까지 마친 친구는 마지막 면접 일정을 기다렸다.
회사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시점부터 사이다 없는 고구마 타임이 시작되었고 (그 전 과정도 너무 오래걸리긴 했음) 일단 임원 면접 일정이 미친듯이 밀렸다. 일정조차 잡히지 않는 면접 일정 대기의 기간 동안 유과는 '수능도 저렇게 공부를 안했던거 같은데' 싶게 면접준비를 했다. 더 이상 쉬고싶지 않았기에 마지막 단계만을 앞둔 기회에서 친구는 무엇보다 간절해보였고, 그 간절함만큼 난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정은 밀리고 밀려 한없이 밀려서 최종 면접은 우리의 베트남 여행 전날에 잡혔다. 임원 일정에 맞춰서 면접 잡기가 힘든 건 알고 있었지만 2주 넘게 걸리는 시간에 지켜보는 사람조차 지쳐갔다. 3차 면접본 날을 기준으로 서류 접수부터 2달 가까이 걸린 것으로 기억하니까 주말 소개팅을 해도 16번은 했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베트남 여행 출발 당일, 공항에서 만난 친구의 표정은 묘했다. 그 묘한 표정의 이유는 출국 전 식사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나에게는 베트남 호치민과 그 회사의 이름이 항상 함께 떠오르게 되었다. 참고로 나중에 나도 그 회사의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었다.... 그래서 그 회사 안좋아한다. 여기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게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