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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Feb 03. 2022

1인 가구의 삶은 바쁘고 평화로워

독립 예찬

독립한지는 1년이 넘었다. 지금의 이 상황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다가도 여전히 잘 사용하지 않고 있는 집의 부분들을 보면 벌써 1년이나 되었나 싶기도 하다.


수납공간이 넘쳐나는 복층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나, 긴 옷을 걸 곳이 마땅치 않아 이렇게 저렇게 임시방편을 찾기도 하고, 공간은 분명 있으나 동선이 편하지 않아 여전히 비어있는 곳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제일 잘 쓰는 곳일수록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가방이며 옷이며 책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기 속에서 손을 깊숙이 뻗어 필요한 물건을 어찌 됐건 곧잘 찾아내는 역량도 나날이 발전 중이다.


이렇게 사는 1인 가구의 삶은 꽤나 바쁘다.


본가에서는 신경 쓰이지 않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집에 오래 붙어 있는 날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기를 돌려야만 한다.


샤워부스의 물때는 상상만 해도 어찌나 싫은지. 최대한 화장실을 뽀송하게 유지하기 위해 샤워가 끝나면 물 밀대로 벽에, 바닥에 남아있는 물기를 다 밀어버린다.


수채 망엔 머리카락이 곧잘 끼기 일수고, 게다가 비누거품과 엉켜 덩어리 질 때도 있으니 구역질을 하며 그걸 다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그때그때 머리카락을 걷어내야 한다.


1인 가구 집의 싱크대는 또 얼마나 작은지, 요리라도 했다간 한 끼만으로도 통이 그득해지는 탓에, 설거지를 위한 동선을 확보하려면 먹자마자 마시자마자 치우는 습관이 중요하다.


쓰레기도 큰 과업이다. 이 한 사람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지, 솔직히 내가 일회용품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 사실 환경을 위한 거라기 보단 내 귀찮음 해소를 위한 거다.


그런 와중에 1인 가구의 삶은 평화롭다.


나의 불편함은 보통 회색지대에서 발생했다. 내 공간도 남의 공간도 아닌 것 같은 부모님 댁에서, 나는 청소에 대한 의무감은 지지 않으면서도 청소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부모님 사이에 싸한 기운이 흐를 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한 불평을 내게 늘어놓는 것이 귀찮고 불편하면서도 내가 나서서 둘을 화해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던지 결혼기념일이라던지 어버이날이라던지 명절이라던지 할 때도 나는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친구들이랑 놀고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몰아 효도해야지 - 라면서 일정을 잡고 행사를 챙기면서 먼저 나서지 않는 동생에게는 마음속으로 눈을 흘기기도 했다.


내가 꼭 해야 해?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또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일들 속에서, 나는 마음이 번잡해졌다.


그에 반해 한 명분의 더러움과 한 명분의 감정과 한 명분의 대소사만 책임지면 되는 1인 가구의 삶은 얼마나 쾌적한지!


모든 귀찮음이나 번거로움은 오롯이 내가 만든 것이며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바쁜 와중에 그것들을 해치워나가는 것이 귀찮을지언정 마음을 괴롭게 하지는 않았다.


새로이 독립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여전히 내게 묻는다. 외롭지 않냐고. 집안일 귀찮지 않냐고. 힘든 건 없냐고. 무서울 땐 없냐고.


하지만 나는 한순간도 헷갈리질 않았다. 이 마음의 평화가, 떨어야 하는 바지런함보다 훨씬 내 마음에 든다는 걸.


진짜 독립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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