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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 겨울 Feb 01. 2019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의 발견

위로의 맛, 칠리새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칠리새우’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스물네 살의 나에게는 그랬다.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인천에 있는 회사로 취업을 하게 됐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당장이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터라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시작했다.

낯선 도시에서 시작한 첫 회사생활은 좀 힘들었다. 갓 상경한 터라 사투리가 무척 심했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보니 사장님과 사모님이 다소 못마땅해 하셨던 것 같다. 일이 서툴러서 지적도 많이 받았다. 이래저래 고달픈 객지 생활이었다.

그래도 사장님과 사모님은 평소에는 깐깐하셨지만 직원 회식만큼은 비싼 곳에서 근사하게 시켜주셨던 분들이었다. 내가 고급 중식당을 처음 간 것도 그 회식 때였는데, 그날 나온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칠리새우였다. 나는 처음에 칠리새우를 맛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직원들 모두 사장님 말씀을 듣느라 젓가락도 드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새내기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칠리새우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가져갈까 봐 입에 집어넣자마자 젓가락으로 다음 칠리새우를 집어서 앞접시에 덜어놓길 반복했다.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던지, 마지막 하나 남은 새우를 보며 아쉬워하던 내게 사장님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시며 한 접시 더 시켜주셨다.


칠리새우

시간이 흐른 뒤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형편도 나아지게 되었다. 그러고는 내 돈 내고 칠리새우를 사 먹었는데, 어쩐지 예전에 나를 황홀하게 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분명 음식을 잘하는 집이었는데 왜 그 맛이 안 났을까.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사 먹어봤지만 스물네 살 때 처음 먹어보았던 그 정도의 감흥은 없었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나는 주방이 갖춰진 자취집을 구한 뒤로는 퇴근길에 실한 새우를 사와 칠리새우를 직접 만들어서는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면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었다.

월급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안정된 직장이 있고, 작고 낡았지만 직장에서 제공해준 숙소가 있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면서 칠리새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여유! 그렇다. 스물대여섯 즈음의 내 ‘소확행’은 바로 칠리새우였다.

오랜만에 칠리새우를 만들어 먹으려고 실한 새우를 사왔다. 새우는 머리를 떼고, 껍질을 벗겼다. 꼬리 부분을 보면 가운데에 뾰족한 게 있는데, 이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 속에 있는 물기 때문에 기름이 튀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자르면 꼬리 전체가 너덜해지니 가위로 물이 들어 있는 부분의 끝만 살짝 잘라주는 게 좋다. 이 부위에 있는 적은 양의 살점이 백미이니 살점을 제거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때 나오는 새우의 머리와 껍질은 한 번 데쳐서 데친 국물과 함께 김치냉장고(김치냉장고가 일반 냉장고에 비해 온도가 낮고, 문을 잘 안 여닫아서 곡식이며 맛국물 등을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에 보관해두었다가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사용하면 감칠맛을 더할 수 있다. 1~2일 안에 요리할 일이 없다면 그대로 냉동해뒀다가 필요할 때 녹여서 사용하면 된다. 냉동하더라도 가급적 빨리 먹는 편이 좋지만 그래도 몇 주 동안은 보관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새우 손질을 하는 동안 머리와 껍질의 선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 냄비에 팔팔 끓여둔 물에 바로바로 넣거나 새우 머리와 껍질을 손질해서 놓는 그릇 밑에 얼음을 깔아두면 좋다.

새우 등에 세로로 칼집을 낸 뒤 내장을 제거했다. 새우 등에 칼집을 내면 소스도 잘 배고, 모양도 예쁘다. 손질한 새우에 소금과 후춧가루, 마늘가루를 조금씩 섞은 전분을 묻혔다. 이때 전분을 너무 많이 묻히면 나중에 튀김옷이 훌러덩 벗겨지고 맛도 떨어진다.

웍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전분을 묻힌 새우를 굽듯이 튀긴 다음, 쇠로 된 체망에 밭쳐 기름기를 뺀다(일반 그릇에 뜨거운 새우를 그냥 담아두면 눅눅해져서 맛이 없다).

새우를 튀겼던 웍에 남은 기름을 키친타월로 적당히 닦아내고, 다진 마늘과 다진 양파를 볶아서 향을 냈다. 그런 다음 설탕 조금, 진간장 조금을 넣어서 볶고 이어서 토마토케첩과 칠리소스를 넣었다. 칠리소스는 월남쌈 찍어 먹을 때 먹는 달콤한 칠리소스다. 굴소스가 있다면 약간 넣어줘도 된다. 그럴 때는 진간장의 양을 조금 줄이는 게 좋다. 고춧가루를 약간 첨가하면 매콤한 맛을 낼 수 있는데, 남편이 매운 것을 싫어하고 아이들도 있어서 넣지 않았다. 매운 것을 좋아한다면 고운 고춧가루를 조금 넣거나 청양고추를 하나쯤 얇게 썰어서 넣어도 좋다. 그리고 약간의 물을 첨가하면 눋지 않게 소스를 끓일 수 있다. 소스가 한 번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튀겨둔 새우를 넣고 뒤적여서 소스를 묻힌다.

불을 끈 뒤 가스차단기를 내리고 환풍기를 최대치로 틀었다. 그런 다음 토치로 살짝 칠리새우의 겉면을 그을려주었다. 이렇게 하면 불 냄새가 배어서 맛있는데, 선택사항이니 토치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에 삶은 완두를 넣어서 초록색을 더해주었다.

전분으로 새우를 튀기면 바삭함과 쫄깃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탕수육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식어도 바삭바삭함이 유지된다. 달콤한 소스가 흠뻑 묻은 칠리새우는 달콤한 첫 맛과 씹을수록 바삭바삭, 쫄깃쫄깃한 식감이 예술이다.

칠리새우의 맛을 부드럽게 중화해줄 마카로니 샐러드도 만들었다. 삶아서 물기를 뺀 마카로니에 당근과 씨 부분을 제거한 오이를 섞었다. 양파나 파프리카를 넣어도 된다. 소스는 마요네즈에 설탕, 소금 약간, 후춧가루 약간, 볶은 통깨 간 것을 듬뿍 넣어 만든다. 볶은 통깨를 절구에 갈아서 바로 넣으면 고소함이 더욱 배가되고, 마요네즈에 설탕을 넣으면 농도가 묽어진다.


채소 샐러드와 시금치 무침

채소 샐러드도 만들었다. 마트에서 한 끼 분량으로 파는 샐러드 믹스에 냉장고에 있던 시판 드레싱을 뿌렸다. 가벼운 오리엔탈풍의 드레싱이라 상큼하게 즐길 수 있었다.

어쨌든 밥을 먹기 위한 상이었으므로 한식 반찬도 한 가지 했다. 제일 만만하면서도 잘 먹는 시금치 무침으로! 팔팔 끓는 물에 시금치를 넣고 바로 불을 끈 뒤, 차가운 물에 한 번 헹궈서 물기를 짰다. 그런 다음 소금과 참기름, 통깨 간 것을 넉넉히 넣고 무쳤다. 나는 시금치무침에 파나 마늘을 넣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때는 넣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양파즙과 무즙 등을 넣기도 한다.


오이냉국

국물이 없으면 서운해하는 남편을 위해 오이냉국도 만들었다. 남편이 냉국을 좋아해서 봄여름이면 자주 만든다. 만날 똑같이 만드는 게 지루해서 이번엔 올록볼록한 모양의 칼로 오이를 썰어 보았다. 뭐랄까. 그릇에 소복이 담다보니 살짝 경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식감은 재미있었다. 새콤달콤 시원한 국물을 붓고, 통깨를 뿌려서 마무리했다. 얼음을 올려주니 남편이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대학 졸업 후 시작된 사회생활은 여러 면에서 고난의 시간이었다. 먹고사는 게 어쩜 그리 힘든 일인지. 하지만 결혼하고 가족이 생긴 이후로 물론 부족한 것도 있고,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급 중식당에서 칠리새우를 턱턱 사 먹을 여유는 없지만 언제든지 직접 장 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열심히 만든 칠리새우를 함께 먹어줄 식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확실히 나를 참 행복하게 한다.

<오늘의 식단>
-다소 경박한 모양새의 오이냉국
-바삭바삭 쫄깃쫄깃 달콤한 칠리새우
-언제든 손쉽게 뚝딱! 마카로니 샐러드와 채소 샐러드 믹스
-시금치 무침과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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