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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Apr 11.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4)

“팀장님, 저희 식물들에 물주는 일을 정확하게 나누고, 당번을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저희 팀이 이용하는 공간에 있는 식물한테 물주고, 관리해주는 일을 정확하게 분장하고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팀장은 처음듣는 정주의 단호하고 큰 목소리에 당황했다. 그래서 팀장의 말에는 그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그는 바로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고 다시 신사적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균열은 시작했다. 모든 팀원들은 티모에서 볼 수 없는 균열의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아니 중요한 안건에는 말도 안 하더니 갑자기 이게 뭔… 아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서 당황했습니다. 죄송해요. 그런데 정주씨, 식물관리는 기획팀 일이 아니라 시설관리나 경영지원 쪽 일인 거 같은데, 이걸 굳이 이렇게 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 하던 이야기가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거 같구요.”


다른 팀원들도 슬슬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팀장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정주씨, 식물관리도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담당업체에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정주씨께서 매일 해주시는 일에는 감사하긴 하지만, 그건 정주씨가 혼자 하던 거잖아요. 이걸 뜬금없이 저희한테 말씀하시는 건 이상하긴 한 거 같아요.”


“정주씨께서 매일 수고해주시니까 억울하실 수 있긴 한데, 지금은 일단 하던 이야기 마무리하자는 제안 드리고 싶은데, 정주씨는 어떠세요?”


주식회사 티모의 회의에서 볼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심으로 정주에게 지금 이 순간을 넘어가길 제안했다. 사람들은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좀 그냥 끝나라고. 정주의 비합리적인 주장과 별개로, 팀원들은 이런 공기 자체를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정주는 완강했다. 입사 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식물은 회사의 건물이 아니니까 관리실이나 청소업체에서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물만 준다고 해서 식물마다 잘 관리해주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구요. 우리 팀이 주로 있는 공간에 있는 식물 정도는 저희가 어느정도 관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식물이 있으니까 분위기가 좋다고 말만 하면서 관리는 안해서 식물이 다 죽고, 그럼 아무 생각없이 새로운 식물 사고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매번 몇몇 사람들만 이걸 신경써서 관리하는 것도 웃기구요. 팀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주의 말투는 더욱 완강해졌다. 그 말에는 약간의 공격적인 느낌까지 있었다. 무기력한 그녀에게 그런 투쟁심이 있었다는 걸 예상한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어이없었다. 정주는 무언가 억울해보였다. 왜 자기가 억울해하지? 그동안 자기 때문에 우리가 힘들었는데. 고작 식물에 물주고, 영양제 꽂아주는 일에 정주는 해고를 감수한 사람처럼 결연했다. 다른 팀원들은 그 모습을 봐주기 힘들었다. 교육기획팀 팀장 목관은 정주의 저런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는 턱이 돌아간 것처럼 입을 쩍벌리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목관을 보면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누가보면 그의 입 안에는 개구기가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목관의 비언어적 반응은 격렬했다. 물론 속으로만 생각한 거지만 이제 그는 정주에게 조금 전에 심하게 말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기 정주씨가 이렇게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인 줄 몰랐네요. 그동안은 한 번도 이야기를 안했어서… 일단 알겠습니다. 정주씨한테 식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몰랐네요. 혹시 가족이 농사를 짓거나 꽃집을 하나요?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런데 그 일을 정주씨보고 하라고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일로 정주씨가 피곤하시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애초에 정주씨가 해야 할 일은 그 일이 아니잖아요. 일단 여기는 교육기획팀이니까 교육 기획에 신경써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정기회의 때 이야기하죠.”


“하지만 팀장님 오늘 회의 주제가 아니긴 하지만 지금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팀장님께서도 기획회의가 다 끝났다고 이야기하셨고, 다른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셨으니까…”


“시끄러워요! 지금 이야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할 말은 당연히 안건과 관련된 말이지. 지금 이건 좀 아닌 거 같네요. 여기까지만 하죠.”


목관은 자신의 텀블러를 들고 1층 카페에서 나가버렸다. 텀블러에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이 인사를 하기도 전이었다. 목관의 걸음은 평소와 달랐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던 팀장인 그는 지금 투우장에 있는 황소처럼 앞만 보고 걸어나갔다. 나머지 팀원은 팀장이 회의 후 어떠한 대화도 없이 나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는 여태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팀장이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서 팀원들은 주식회사 티모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건 배신이었다. 주식회사 티모가 자신에게 약속한 새로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팀장이 떠나버린 지금, 팀원들은 정주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거기에서 가장 명랑한 지훈이 정주에게 말을 걸었다. 


“정주님, 팀장님이 당황하셨나봐요. 그래도 아시다시피 팀장님이 나쁜 분은 아니니까 이따가 잘 풀면 금방 또 괜찮아질 거에요.”


“지훈님, 저는 지금도 괜찮아요. 그리고 팀장님과 따로 풀 거 없습니다. 팀장님 기분 상하신 거랑 일은 다른 문제니까요. 그냥 제가 이야기한 안건이 무시당해서 불쾌한 거 말고는 딱히 별로인 거 없으니, 팀장님과 풀란 말은 하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지훈의 얼굴은 시뻘개졌다. 그건 부끄러움으로 인했다기보다는 불쾌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지훈은 정주에 대한 자신의 호의가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그건 누군가한테 맞은 것보다 더 불쾌한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호의를 거절한 사람이 정주씨였기에 그 불쾌함은 더 했다. 자신의 호의는 순수했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친절,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실제로 팀장과 화해할 생각이 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친절을 배푼 사람에게 최소한 고마워는 해야 하는게 기본적인 예의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지훈은 순간적으로 분노를 이기지 못해 정주에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바로 옆에서 다른 팀원들이 지훈의 어깨를 토닥이지 않았다면, 지훈은 그 충동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정주는 지훈의 시뻘건 얼굴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가방을 왼쪽 어깨에 턱하고 걸치고서 걸어나갔다. 다른 팀원들은 정주가 걸어나가는 뒷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응시했다. 정주는 그들 중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다른 팀원들의 시선은 계속 이어졌다. 여태까지 복도에서, 카페에서 사람들이 정주를 피했던 것과는 딴 판이었다. 더이상 정주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넘어가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동안 정주의 행동이 주식회사 티모의 문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면, 오늘 정주는 티모에게 명백하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 개방적이고, 정중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티모의 문화는 정면으로 도전받았다. 정주는 주식회사 티모의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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