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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Apr 25.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5)

더 큰 문제는 정주의 도전이 명백하게 성공했다는 점에 있었다. 정주의 주장을 두고 교육기획팀이 화를 내지 않았다면 이 날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이상한 직원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회의에서 사람들은 공격성을 표출했다. 팀장은 인격적인 모독을 했고, 상대방을 비난했으며, 모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회의를 끝냈다. 한 팀원은 다른 팀원을 상대로 손찌검을 하려 했다. 주식회사 티모의 사람들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서로의 공격성을 직접적으로 확인했다. 그들은 당연히 사람이었기에 폭력성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이렇게 날 것의 상태로 서로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교육기획 회의에서의 일은 삽시간에 회사에 퍼졌다. 1층 카페에서 회의를 하는 다른 팀만 3팀이었고, 혼자 일을 처리하던 사람이 7명이나 있었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회사답게 그들은 자신들이 본 일을 이곳저곳에 말했다. 대화의 시작은 항상 '너무 걱정돼서 그러는데…'라는 말이었다. 2, 3일만 지나자 티모의 모든 직원은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정주가 어떤 이야기를 꺼냈고, 팀장이 열받아서 정주의 말을 끊고 짜증을 냈다는 사실뿐이었다.물론 세부적인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소문의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치만 침묵과 정적은 조용하다는 것을 뜻할 뿐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찜찜한 정적이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정주가 어떤 잘못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목관은 넉살이 좋으면서도 신사적인 사람으로 유명했다. 방배의 체면을 생각해서 티모의 직원들은 그 이야기를 교육기획팀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의 일은 오히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더 커지고 더 이상해졌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다들 교육기획팀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복도에서 걸어다니는 목관의 표정이 어두워진 걸 보면 사람들은 그날 그 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팀 안에서 불화가 있었다더라, 정주의 처우를 두고 욕설을 했다더라. 교육기획팀원들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더라. 근거 없는 낭설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당연히 팀원들은 몇몇 사람들이 그날의 장면을 목격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교육기획팀은 그 소문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만들어 온 개방과 혁신의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다. 아마 온 회사의 사람들이 그 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교육기획팀은 그 루머를 정정하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팀원들은 이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여전히 개방적이고, 배려심이 깊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적어도 다른 팀에게 짜증내고 신경질부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정주가 아니라 교육기획팀 전체가 이상한 사람으로 공식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그들은 혁신을 위한 전장에서 이탈해야 했다. 그걸 막기 위해 팀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아무 일도 없는 척을 했다.


교육기획팀의 노력은 엄청났다. 그치만 그 노력은 외부를 향해서만 이뤄졌을 뿐, 팀 내부를 향해서 이뤄지지는 않았다. 교육기획팀은 그 날 이후 다른 팀이 되었다. 팀원 각각이 일하는 공간은 점점 멀어졌다. 예전에는 3층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1층과 5층으로 흩어졌다. 1인실을 이용하는 팀원의 수는 확연히 늘었다. 매일 낄낄거리면서 일이야기를 하는 기획팀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이었다. 1층 카페에서 교육기획팀이 사는 간식은 더이상 없었다. 예전에는 메신저로 할 수 있는 대화를 만나서 했다면, 지금은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도 메신저로 하려고 했다.


팀장인 목관의 변화는 그 안에서도 눈에 띄었다. 너털웃음을 잘 짓던 그는 사라졌다. 목관은 여전히 팀장으로써 능력과 인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엄격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고, 그들을 봐주는 어른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목관은 부하직원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제압해나가기 시작했다. 손짓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낮추거나 다른 이야기로 회의가 나가면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이상 막내가 요청하는 상담에 항상 응하지 않았고, 자신이 먼저 팀원들과 잡담을 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상이었지만, 팀원들은 이제 그가 있는 공간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교육기획팀의 모든 이들이 티를 내지 않아서 다른 팀에서는 아무도 몰랐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정주의 일은 티모 안에서 일어난 큰 사건이었다. 하나의 팀이 이 일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도 주식회사 티모의 일상은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밝게 웃으면서 인사했고, 회사의 이미지는 여전히 좋았다. 모두가 기분좋은 웃음을 하고, 밝은 햇빛을 맞으며 일을 했다.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면서 티모에는 열린 창문이 늘어났고, 직원들은 그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을 사랑했다. 너무 날씨가 더우면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긴 했지만, 직원들은 대부분 창문을 여는 걸 좋아했다. 그건 환경을 지키려는 사소한 자부심이었고, 오후시간대의 사소한 즐거움이었다. 티모에게 있어 그동안 여름은 곧 열린 창문과 시원한 바람이었다.


올해 티모의 여름은 달랐다. 이번 여름은 티모에게 있어 냄새였다. 사무실 곳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복도를 기분좋게 걸어가는 사람들은 냄새에 맞아 휘청거렸다. 시큼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한 냄새는 역했다. 그건 분명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원인을 모른 채 그 구역에서 빨리 탈출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창문을 걸어 잠궜다. 그들은 동네 어딘가에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냄새는 점점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반대로 창문을 활짝 열어도 마찬가지였다.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그건 아주 짜증나는 일이었다. 냄새는 침묵과 같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잡을 수 없었고, 불쾌하기는 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기분좋은 바람이 들어야 할 여름이 냄새를 피하는 화생방이 되어버렸다.


냄새는 불평등했다. 외근이 많고 바깥에서 일을 하는 팀장급이나 대표급은 냄새를 잘 알지 못했다. 복도에서 냄새가 나도 그 날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나보다하면서 넘어갈 뿐이었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은 외근을 하거나 강연을 나갈 일이 전혀 없는 막내급 직원이었다. 그들은 냄새가 티모의 안에서부터 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매일 회사 안에서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 냄새는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민한 몇 명은 자신의 몸과 옷에서도 그러한 냄새가 나는 것같았다. 회사에 있지 않아도 티모의 직원들은 두통에 시달렸다. 후각이 강렬한 것에 비해서 금방 사라지는 감각인 것처럼 두통도 냄새가 피부를 찌르는 순간에 올라왔다가 냄새에 적응할 때쯤 뒷짐지고 휙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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