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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May 02.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6)

이번 여름으로 죽을 맛인 곳은 물품지원팀이었다. 물품지원팀은 회사의 창립 이후로 가장 호황을 맞이했다. 사실 물품지원팀은 가장 한가한 부서였다. 사람들은 회사의 어떤 물품을 이용하거나 공간을 사용할 때 회사앱에서 대관 및 시설이용신청을 했고, 물품지원팀은 그 물품을 구비하여 미리 세팅을 해주거나 뒷정리를 해줄 뿐이었다. 물품지원팀은 어떤 기획과 창의성 없이 오로지 서포트만을 위해서 생겨난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원들은 물품지원팀에 신청을 하면서도 그 팀의 실체에 대하여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물품지원팀은 매번 늦지 않게 물건을 가져다 주었고, 회사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새로 구입해왔다. 비품이 간혹 고장나는 경우나 치워야 할 일이 많을 때 잠깐잠깐 마주할 뿐이었다.

 

직원들은 회사의 공기도 물품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그들은 물품지원팀에 냄새에 대하여 문의를 시작했다. 직원들은 처음에 온라인을 통해 정중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물품지원팀도 냄새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냄새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화살표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품지원팀의 사람들은 가장 오래 사무실에 머물며 냄새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부탁에 죄송하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돈을 들여 건물 전체를 검사하고  냄새의 원인을 찾는 쉬운 방법이 있었다. 그치만 그건 물품지원팀의 역할이 아니었다. 물품지원팀은 정말로 물품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일만 했을 뿐, 예산을 짜고 관리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물품지원팀은 팀장급 인사가 없는 유일한 팀이었다. 팀장이 없는 팀의 팀원이 임원에게 가서 검사를 위해서 예산을 달라고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애초에 물품지원팀은 쏟아지는 회의, 행사에 대한 준비로 근무시간을 거의 다 쓰고 있었다.

 

물품지원팀의 답변이 시원치 않자 사람들의 반응은 격해졌다. 잘 처리되기를 기원한다는 공손했던 글은 어느순간 이것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는 질책으로 변했다. 물품지원팀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쳤다. 특히 그런 인식은 소위 창조적인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던 부서에서 더 강했다. 몇몇 부서의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데 방해가 안되는 게 일인 주제에 그것도 하나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절대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몇 명 없었다. 하지만 마음과 대화 한켠에 있는 아주 작은 비중의 그런 대화는 암암리에 그 냄새처럼 티모의 바닥부근에 자리하고서 누군가를 노릴 기회만을 갖고 있었다.


물품지원팀 직원인 민서는 양팔에 잔뜩 짐을 들고서 깔끔한 타일로 빛나고 있는 2층 세미나실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형편없었다. 항상 웃는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다크써클은 생기다가 못해 눈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눈화장을 진하게 해서 그 피로감과 스트레스의 흔적을 감추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도는 소용없었다. 민서는 피곤할 만 했다. 물품지원팀으로 몰려드는 문의와 비난과 질문에 대하여 팀 차원에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민서는 그저 상대방이 아무리 비아냥거리거나 맹비난을 퍼붓더라도 일관된 어투로 사과와 최선의 노력을 약속하는 답장을 보낼 뿐이었다. 지금 그녀게 최선은 미쳐서 노트북을 집어던지지 않고 답장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민서는 물품지원팀에서 가장 많은 글을 읽었고, 가장 많은 답장을 보냈다. 나이가 제일 어렸고 경력도 제일 짧았던 탓이다. 무엇보다도 민서는 티모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었다. 공평하게 문의에 대해서 답변을 하는 것 같았지만, 민서는 항상 남들보다 조금씩 더 많은 답변을 달았다. 민원이 늘어나는 만큼 민서에게 주어진 할당량도 늘어났다. 민서는 조금씩 더 적절한 문구와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야근을 시작했다. 그녀는 '원인불명의 냄새로 인하여 불편을 겪으신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합니다.'와 '문의드린 부분에 대하여 바로 답을 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답 중에서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덜 기분이 나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녀의 답장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민서는 일주일에 삼일씩 지하철이 끊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야근, 반복해서 보내는 사과메일, 그것들은 사람 한 명을 갑자기 쓰러지도록 하기에 충분한 무게였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민서는 행사 때문에 짐을 들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휘청거렸다. 24시간 공복 후 전력질주를 하다가 몸에 힘이 풀리는 것처럼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짐을 떨어뜨리려다가 민서는 이를 악물고 짐을 조심스럽게 내려두었다. 그녀는 쓰러지는 것에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녀는 복도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하얀 천장이 시퍼렇게 보였다.


민서는 천장을 봤다. 회사의 천장이 이렇게 낮았는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천장이 낮다고 생각하자 숨을 깊게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갑자기 한 숨 한 숨이 너무 신경쓰였다. 햇빛을 잘 받아서 좋아했던 흰색 타일도 어지럽게 느껴졌다. 민서는 모든 일이 왜 이렇게 흘렀는지를 생각했다. 그건 원인을 알 수 없는 냄새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갑자기 친절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자신과 자신의 팀이 무능했기 때문일까. 알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민서는 자신이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처음으로 생각해보고 있다는 느낌에 울컥했다. 원인불명이라는 답변을 온갖 직원들에게 보내면서 자신의 원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릴 힘만 있었어도 울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민서가 앉아있는 곳은 세미나실의 복도였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답게 티모의 세미나실에서는 매일같이 강연, 멘토링, 네트워킹 행사가 있었고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초에 민서가 세미나실 복도에서 짐을 들고 낑낑거리던 것 역시 그 날 있던 행사 때문이었다. 민서가 앉아서 천장을 본 지 5분도 되지 않아 세미나실에서는 강연을 들으러 온 대학생 9, 10명과 티모의 인사팀장이 걸어나왔다. 대학생들은 티모의 일원이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선망의 눈으로 보며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팀장은 부드럽고 여유있는 태도로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90년대 후반 쯤에서나 볼 수 있는 훈훈한 시트콤처럼 걸어나오던 그들은 널부러져있는 민서를 봤다.

 

초점이 흐릿한 눈, 복도에 앉아있는 그녀의 표정, 옆에 놓여있는 수북한 짐, 이것들을 다 보면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은 민서에게 고정되었다. 몇몇 대학생들은 민서를 향해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나머지 사람도 인사팀장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물론 그들은 민서의 사정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민서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한 눈에 봐도 민서는 너무 아파보였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중에 걱정이 많은 성격인 누군가는 응급실에 전화를 해야 할 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인사팀장의 대처를 기다렸다. 회사의 관리자인 그라면 적절한 대처를 해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사팀장은 민서를 흘긋 바라봤다. 민서는 눈을 뜨고 그들이 나오는 것을 봤지만 그대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직장상사와 손님을 보고도 어떤 응대도 하지 않는 민서를 보는 그의 뒷목엔 살짝 힘이 들어갔다. 물론 그는 힘든 직원은 얼마든지 쉴 수 있고, 적당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팀에서 자율적으로 쉬는 것을 강조했다.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보다 적당히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게 결과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밖에서 사람이 와있는 시간에 이런 장소에서까지 마음대로 쉬는 건 아니었다. 가볍게 쉬는게 아니라 이렇게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이건 티모가 가지고 있는 자발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었다. 특히 팀장은 직원 중에서 회사에 퍼지는 냄새에 가장 예민했다. 그는 민서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더 마음 속으로 낮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에 민서를 불러서 혼을 낼 수는 없었다. 티모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무엇보다도 달라야 했다. 인사팀장은 적당히 애둘러 표현하는 방식으로 민서를 배려하고자 했다. 인사팀장은 특히 민서를 신경쓰고 있는 학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신경 안 쓰시고 편하게 계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티모에서는 쉬는 것도 완전히 자율에 맡기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짐 드는 일 하다가 쉬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하려는 사람한테 무리해서 책임을 지우지 않으니까요. 물론 인사도 자율입니다. 저는 티모에서 일하는게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물론 농담입니다. 하하하 자 이 쪽으로 다들 오시죠.”


권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의 말 한 마디는 분위기를 바꿨다. 대학생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구김살없이 해맑은 학생들 몇몇은 팀장의 말을 듣고 민서를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근무시간에 앉아서 팀장이 나오는 데도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민서를 성공한 인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몇몇은 불성실하고 대충대충 일하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지 의구심에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학생들은 모두 팀장이 하는 말에 집중했고, 모두는 금방 멀어졌다.


민서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인사팀장에게 자신의 상황을 어필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주체가 돼서 스스로 무언가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얼핏 보기에 민서는 팀장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대로였다. 하지만 민서의 안에서는 약간의 집착이 생겼다. 그건 팀장의 말에 대한 상처도, 팀장에 대한 집착도 아니었다. 그 집착은 지금도 아주 은은하게 퍼져오는 냄새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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