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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May 09.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7)

민서는 그 날부터 냄새의 원인을 밝히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녀는 매일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그녀는 사비로 냄새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계를 구입했고, 그걸 들고 건물 곳곳을 수색했다.  사람들은 주식회사 티모 곳곳에서 냄새를 기록하는 민서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냄새가 심한 곳을 피해다니는 것과 반대로 민서는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 곳을 향해서 움직였다. 민서의 표정에는 광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민서의 행동에서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악취에 미쳐있었다. 회사에서 가장 밝고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막내느낌의 여성직원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제 민서도 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 지 약 15일쯤 뒤, 그리고 민서가 냄새탐지기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지 5일 뒤, 민서는 냄새의 원인을 알았다. 원인은 식물이었다. 물론 식물은 외관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식물은 여전히 초록빛을 띄었다. 그 부근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식물의 잎이 떨어지고 썩으면서 나는 냄새, 식물의 뿌리에서 나는 냄새,  제대로 흙을 섞어두지 않아서 나는 냄새가 섞여있었다. 회사의 식물은 여전히 잘 살아있었지만, 그건 관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민서는 짧은 메시지를 써서 회사 메신저 전체방에 공지했다. 그 보고에는 단호하고도 명확한 입장만이 들어있었다. 내용은 길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 나는 악취의 원인은 식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임.

회사 내부규정에 따라 식물은 물품관리팀의 관리영역이 아님.
향후 관련해서 문의하지 말 것.
끝.


사람들은 민서가 올린 메시지를 보고서 혀를 찼다. 민서의 글엔 배려가 없었다. 동료를 생각했더라면 저런 식으로 글을 쓰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저 메시지는 그저 더 이상 민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티모에서는 누구도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었다. 민서는 아주 한적한 곳에서 자리보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공무원과 같았다.

 

사람들의 분노는 민서가 물품지원팀이라는 점에서 더 커졌다. 창의성과 전문성을 발휘하던 직무의 사람 중 누군가가 지쳐서 일탈을 하고 있다면 그건 이해할 만했다. 티모의 사람들은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지 알고 있었다. 티모에서 개발자를 위한 여가 프로그램, 휴가제도를 만들어 둔 것은 그런 취지였다. 하지만 민서가 하는 일은 반복적이고 돕는 일이었다. 그것도 감정적인 도움이 아니라 대체가능한 도움이었다. 티모의 직원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제일 힘든 것처럼 구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억울함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까지 억울해할 수만은 없었다. 원인은 밝혀졌고, 이제 문제는 해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티모의 직원 중 누구도 이 상황의 책임자가 누군지를 몰랐다. 티모에는 수많은 부서가 있었고, 그 많은 부서는 매일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회사 건물에 난리가 난 냄새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곳은 없었다. 관리실에서는 청소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했으며, 청소업체에서는 식물은 건물주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측에서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식물관리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좋은 사람들이었던 티모의 직원들은 외부업체인 관리실과 청소업체에게 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장 유망한 기업인 티모는 화분 청소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서가 메신저에 글을 올리고 5일 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는 여전했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고,공기는 더욱 찐득해졌다. 여름이 심해지는 만큼 냄새는 진해졌다. 티모의 직원들은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 에어컨을 켰다. 하지만 창문을 닫으면 냄새 때문에 견딜수가 없었다. 조금이나마 냄새를 줄이기 위해서 창문을 열면, 찌는 날씨 때문에 숨이 막혔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기 좋은 테라스와 식물로 가득한 로비는 모두가 기피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신 1인용 사무실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사람들은 이제 출근을 하자마자 4층으로 뛰어갔다. 9시에 딱 맞춰 도착을 하면 1인용 사무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운이 좋거나, 출근시간보다 더 먼저  회사에 도착한 사람들은 1인용 사무실의 문을 걸어잠그고서 에어컨을 켰다. 수백명이 일하는 회사에서 오직 20, 30명만이 이러한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1인용 사무실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테라스나 로비에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티모에서 즐거운 회의나 대화가 일어나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1인용 사무실에 들어간 사람들이 나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무는 온라인으로 이뤄졌고,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메신저로만 하는 소통은 조금 차가웠다.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상처를 쌓아두기 시작했다. 주식회사 티모는 여전히 잘 나가는 회사였고, 모든 경제지에서 이야기하는 유망한 스타트업이었으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불렸다. 하지만 톱니바퀴는 약간 어긋났고, 그 틈에서는 주기적으로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건 이제 회사에 남아있는 몇몇의 직원들에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식회사 티모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모든 이들에게 느껴지는 어긋남이었다.


사람들은 계속 찾기 시작했다. 냄새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의 원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과연 누가 티모에 찝찝함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문제해결을 하고, 버그를 제거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프로그래머들답게, 티모의 직원들은 단순히 냄새를 제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책임한 직원을 찾고자 했다. 그래야만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고, 티모는 쾌적하고 즐거운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여러 부서와 외주업체, 파견업체 중에서 정확하게 식물을 관리하는 부서가 어디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고작 식물을 관리하는 일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곳, 오직 교육기획팀에서는 주식회사 티모의 변화가 어디서부터 발생했는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누가 그 식물들을 관리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관리하지 않기 시작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보고서를 올린 민서도, 관리실도, 청소를 하지 않는 업체도 아니었다. 이 냄새의 시작은 바로 그 회의였고, 식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정주였다. 정주가 교육기획팀장 목관의 말처럼 자신의 일이나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런 냄새는 예정되어 있었다. 티모의 직원들은 모두 교육기획팀 회의의 불화와 식물의 썩은내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교육기획팀의 구성원 7,8명은 그 연관성을 너무 잘 알았다. 이건 정주 나름대로의 항의이자 반란이었다. 정주는 식물을 돌아가면서 관리하자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된 것에 대하여, 그 일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한 자신의 상사에 대하여 은은하고, 은근하며, 끈질긴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결국 정주의 지적이 결론적으로는 맞았다. 식물관리는 교육기획팀의 일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 일을 수행하지 않는 행위는 교육기획팀원 중 누가 했던 일보다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교육기획팀도 냄새가 괴로웠다. 그리고 그들은 원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어디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팀원들은 서로도 그 원인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잊고 싶었다. 자신들의 치부를 밝힐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개방적이고 혁신적이고,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그 날의 일은 교통사고와 같은 일이었을 뿐이라고 믿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들이 매일 비판하던 예전 기업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들은 달라야 했다. 사람을 타율적으로 만들고, 누군가의 제안을 무시하는 일은 이곳에서만큼은 없어야 했다. 그래서 교육기획팀은 정주의 이야기를 어디에도 전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목관은 가장 완고하고 끈질기게 모든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는 아예 회사의 냄새를 모른 척했다. 목관이 냄새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목관은 겨울이 아닌 이상 2교시만 지나도 아침에 나오는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우유가 빛을 받아 아주 약간 발효되더라도 목관은 우유의 냄새가 변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목관이 나이가 들면서 더 강해졌다. 학창시절에 목관은 피씨방과 같이 냄새가 겹쳐진 공간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게임을 하고 싶으면, 그는 친구들이 있음에도 집에서 게임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성향을 어느정도 감추는데 성공했지만, 목관은 여전히 코가 찝찝한 날에는 집에 들어와 1시간동안 욕실에서 온몸을 벅벅 닦았다. 마치 비누칠을 세게 하면 할수록, 냄새가 벗겨지는 것처럼.


목관은 여름이 된 이후 출근하는 일이 괴로웠다. 티모에서 누군가를 교육하고, 그들과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들자고 설득하던 자신을 사랑하는 그는 티모로의 출근을 가장 무서워하는 평범한 중년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코가 조금 적응해서 괜찮았다. 문제는 출근하는 그 순간이었다. 회사 1층에 들어가는 그 순간마다 목관은 확 밀려오는 썩은내 때문에 속이 뒤집어졌다. 1층엔 로비가 가장 컸고, 가장 식물이 많았다. 목관은 매일 건물을 들어오며 저 식물을 뽑아서 던져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 눈에 목관은 전혀 평정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부서 사람들은 목관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했고, 교육기획팀 팀원들은 목관을 1층에서 만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목관은 식물에 대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회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음과 동시에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었다. 그저 다른 팀장들에게 우리팀 정주씨가 관리를 하던 것이었다고 한 마디만 하면 이 모든 문제는 끝났다. 하지만 목관은 그럴 수 없었다. 목관은 예민한 성정만큼이나 티모의 조직문화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티모는 소심하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그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다. 티모는 그에게 과거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과거를 극복하는 하나의 심리치료와도 같았다. 그는 티모의 분위기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목관은 자신의 팀에 있던 갈등을 밝힐 수 없었다. 그건 자신이 이런 회사에서조차 역할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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