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풍선 May 23.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8)

계속해서 코를 찌르는 냄새, 찾을 수 없는 원인, 답답한 공기가 계속되자 사람들의 적개심은 결국 민서를 향했다. 물론 민서는 회사에 있는 식물을 관리하는 업무를 받은 적이 없었다. 민서가 식물의 관리를 하다가 그 일에 태만해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직원들은 민서가 냄새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회의실에서 민서의 무책임을 이야기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당연하게도 민서의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조심했다. 하지만 민서에 대한 욕은 어디서도 들렷다. 직원들은 민서가 없는 곳에서 그녀의 험담을 하는 것을 조심하지는 않았다. 주식회사 티모에 존재하던 존중의 공기는 민서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티모의 직원들은 더 이상 모든 직원이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주체라고 느끼지 않았다. 적어도 민서만큼은 주식회사 티모의 혁신이 없애야 하는 하나의 적이었다.


민서는 바보가 아니었다. 무능력하고 책임감이 부족한 취급을 받았지만, 민서는 주체적이고 꾸준한 노력으로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기업에까지 올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부당함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뒷정리를 하려고 들어간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들어오자 하던 말을 멈추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직원들은 말을 멈추기는 했지만, 민서에 대한 적대적인 표정은 그대로였다. 심지어 민서는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민서를 보며 숙덕거렸다. 자기들끼리 민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를 그녀가 모르는 것도 이상했다. 이유 없는 악의나 부당한 미움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인만큼 은밀했지만, 스스로가 정당하다는 감각에서 기초한 분노와 공격성은 상대방에게도 당당했다. 민서는 자신이 주식회사 티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그렇지만 민서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자신에 대한 누명을 벗기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하면서 아무도 자신을 건들지 못하도록 만든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민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실을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민서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냄새와 관련된 일이 있기 전처럼 일을 했고, 적당히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지원요청이 있으면 세팅을 했고, 행사가 끝나면 정리를 했다. 다만 민서는 더이상 기분좋게 웃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민서는 자신에 대한 욕과 질책을 모르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냥 그 상황을 다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여름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냄새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민서에게 민원이 들어갔고, 비난의 목소리는 커져갔지만, 민서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민서에 대한 질책이 그녀로 하여금 의욕을 갖고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서에 대한 비난과 민원은 그녀를 바꾸지 못했다. 그러한 지적들이 한 일은 그저 민서가 회사에서 더 조용해지고 더 무표정해지는 것뿐이었다. 민서는 메신저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민서를 압박했지만, 누를 곳이 없는 손은 허공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민서에 대한 비난과 압박은 곧 물품지원팀 전체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졌다. 티모의 직원들은 이제 대관 및 지원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언제쯤 식물관리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민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만큼 직접적이거나 비난조는 아니었지만, 물품지원팀에 대한 물음에는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것도 해결하지 못하냐는 힐난이 녹아들어있었다. 그건 말하는 직원들의 표정에서, 주머니에 꽂혀진 그들의 손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항상 티모의 행사를 책임지던, 사람들에게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던 물품지원팀의 직원들은 이제 회사의 천덕꾸러기이자 무책임하고 능력없는 집단이 되어있었다.


물품지원팀의 직원들은 민서의 상황이 억울한 것을 알았다. 자신들도 한 번도 식물에 물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식물이 처음 들어온 순간에 물품지원팀은 함께하지도 않았다. 그냥 회사의 임원 중 한 명이 더 사무실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6개월 전에 가져온 식물들이었다. 그는 공금으로 여러 식물을 구입했고, 그건 직원들이 퇴근한 사이에 곳곳에 자리했다. 분위기는 좋았었다. 식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나 화사한 게 칙칙한 것보다는 좋았다. 그 식물을 가져온 임원은 누구였을까. 알 일이 없다. 회사 직원들 중 누구도 그 임원이 누구였는지를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품지원팀의 구성원들은 더이상 자신들에 대한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 안그래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회사에서 큰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이었다. 서포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들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의 인정이 없으면 가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품지원팀의 구성원들은 민서를 찾아갔다. 그들은 부드럽고 좋은 태도로 물품지원팀에서 식물을 그냥 관리하는 것으로 하면 어떤지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건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쉽고 편안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은 조금 늘어나긴 한다. 하지만 그게 팀원들에게 문제는 아니었다. 원래는 물품지원팀은 항상 바빴고, 조금 더 바빠진다고 한들 큰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민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민서씨, 지난번에 올린 메신저 관련해서 그런데… 우리끼리 잠깐 이야기해보니까 어차피 다들 힘들기도 하고 해서 그냥 우리팀에서 나무랑 풀들 물주고 흙갈이하고 하면 어떨까. 돌아가면서 하면 그렇게 일이 많아지지도 않을 거 같고, 어쨌든 냄새 때문에 우리들도 너무 힘드니까.”


사람들은 민서가 그러자고 말하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터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품지원팀의 다른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민서의 반응은 싸늘했다.


“싫어요.”


“민서씨가 오해하시나본데, 하는 일이 엄청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끔씩만 관리하면 되는 겁니다.”


“그걸 제가 왜 해야하죠?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참 황당하네요...저희 호의를 무시하시는 건가요?”


“돌리지 말고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제가 식물관리를 해야할 이유가 있나요? 공식적으로 물품관리팀이 하기로 한 일 중에 식물관리하는 일은 없잖아요.”


“그야 민서씨가 시작한 일이잖아요. 지금 이렇게 된 이유가 민서씨가 냄새의 원인이 식물이라고 해놓고 아무 행동도 안해서인건데. 당연히 민서씨께서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동안은 다들 그래도 민서씨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발성을 인정하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던 거지만, 이제 문제가 심해지고 있으니까 말씀드리는 거에요. 그리고 사실 물품지원팀의 다른 사람들은 굳이 이 일을 해야 할 의무까지는 없는데 민서씨를 위해서 해드리는 거고 우선은 그런 정성에 감사를 표해주셔야 될 거 같은데요? 좋은 의도에서 저희가 먼저 좋은 제안을 드리는 거잖아요.”


민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민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