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2004,민음사)를 읽고
<크눌프>는 1915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헤르만 헤세가 <수레바퀴 아래서>를 낸 후, <데미안>을 내기 전에 쓴 작품이다. 주인공 크눌프는 휘파람을 불고 시를 쓰며 자유롭게 유랑하는 사람인데, 매력적인 성품으로 어딜 가나 환영받는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든 그가 고향에 돌아와 생을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작가의 이상향을 담았으며 가장 애정 하는 캐릭터라고 알려질 정도로 각별한 인물이다. 헤르만 헤세는 친구에게 크눌프 작품에 대해 말하며 다음처럼 전한다.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1954년 1월 에른스트 모르겐탈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p.142 작품 소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와 닿았다. 크눌프는 고향에 돌아와 여러 친구들을 만난다. 무두장이와 그의 아내, 재단사, 의사, 대장장이 등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누구를 만나서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어떤 사람은 희미하게, 어떤 사람은 밝게 각자 그가 할 수 있는 대로’라는 <데미안> 구절처럼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 이름 없는 풀이 없듯 이유 없는 인생이 없으니 모두 옳고 소중한 것이다. 크눌프는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과 대화하며 존재의 의미를 확인받는다.
네가 근심 걱정 모르는 방랑자가 되어 이곳저곳에서 어린아이 같은 행동과 어린아이의 웃음을 전달해 주어야만 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니? 그래서 세상 곳곳의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너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겠니? (...)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단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p.133-134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단다'라는 구절이 특히 와 닿았다. 있는 그대로 내가 괜찮다는 것 같아서. 그동안 내 모습이 괜찮지 않다고 생각해서 다르게 바꾸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최근 어떤 사람이 내가 지워진 사람처럼 내 얘길 안 하고 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하는 말을 듣고 몇 년간의 노력이 헛되게 느껴졌다. 그동안 바꾸려고 나름 애썼는데 똑같이 제자리인 것 같았다. 누군가 인정해주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도 이유가 있다고 괜찮다고 듣고 싶었다. 그래서 크눌프가 신에게 확인받는 대화에서 위로를 받았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좋게 포장하는 게 합리화가 아닐까 정신승리가 아닐까 하는 의문과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말이다.
사람은 주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투영해서 타인에게 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자유로운 시인이 되고자 했던 헤르만 헤세도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크눌프>를 통해 한 건 아닐까. 그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이야기했듯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북테라피 워크샵을 하며 요즘 마음이 어떤지 묻고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는지 성장을 알아봐 주는 일. 나의 크눌프는 그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