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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an 04. 2024

먹다가 울어버린 맛

돼지 생갈비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공허하면 폭식을 하고 슬프고 우울한 날엔 잠을 잤다. 그 모든 감정이 맞물려 증폭되면 나는 먹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더라. 살려고 먹는 곤욕스러움과 끼니를 대체할 알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기록적인 시간은 끝났지만 일 년 반 동안 떠나가 있던 식욕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지만, 덕분에 다이어트의 괴로움도 사라졌다. 뜻하지 않은 큰 성과에 만족 상태라 집 나간 식욕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원래는 먹는 게 제일 좋았던 사람이었다. 앞서가는 식탐을 팔로업하기에 내 위장은 터무니없이 작았지만 적게 자주 오래 먹는 공략법으로 충실히 업무를 수행했다. 위장에 음식이 꽉 차서 갈비뼈가 뻐근하고 배가 아파 떼구루루 구르고 딸꾹질을 해대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아침 댓바람부터 맛집을 찾아 걸어 다녔다. 차가 있었음에도 워낙 걷기를 좋아했고, 술 마실 것이 분명했고 둘 다 살찌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던 터라 그래야 좀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하루에 4~5시간을 걸으며 서로를 향해 이건 정말 미친 짓이라고 소리쳤다. 아킬레스건에 염증까지 생겼지만, 한동안 그 미친 짓을 멈출 수 없었다. 주말이 되면 꿀을 찾아 떠나는 불곰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먹이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찾아다닌 맛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돼지 숯불갈비 집이었다. 2시간 걸어서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재빨리 맥주부터 주문하고 생갈비가 나오기 전에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뒤이어 나온 고기를 구워서 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나는 고기 한 점을 씹어 먹었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만큼 행복해서 이를 앙 물었을 때 그가 말했다.      


‘... 어? 왜 이러지. 눈물이 난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주체할 수 없는 행복에 눈물이 찔끔 흘렀던 경험은 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와 함께 보냈던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게 남은 행복의 순간들은 몇 장 되지 않는다.  그 행복이 찰나라는 걸 인정하는 게 너무도 어려웠고 그 강렬한 몇 장에 매달리느라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버팀목 삼아 살아가는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믿고 싶다는 건 결국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랬다간 굶주림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걸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고 현재가 지옥이라도 지금을 살아야 했다.     


그때의 행복은 깨끗하게 사라졌고 덕분에 다른 행복이 찾아왔다. 어디에 있다가 내게 왔는지 여전히 혼란스러워도 나는 지금의 행복이 퍽 만족스럽다.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고기를 우물우물 씹어 삼켰던 그 순간이 아쉽지가 않다. 다만 그 행복이 내게 머물렀던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고맙다. 날 웃게 해 줘서. 고맙다. 날 울게 해 줘서. 고맙다. 날 행복하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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