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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Dec 28. 2023

그때 난 진짜 거지였거든

김치와 광어회

움파룸파족이 건네는 쥬시한 애벌레는 먹을 수 있어도 김치만은 엄마의 김치를 고집했다.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손맛의 결정체인 김치를 지극히 사적이고 농밀한 것으로 여겼다. 손  잡으면 다 끝난 거라고 믿었던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집안의 김치를 먹으면 뭔가 다 해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지금도 남의 집 김치에 첫 젓가락을 들이대는 순간은 조금 두렵다.  

    

원래 김치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김장 당일에만 먹을 수 있는 알싸한 생김치를 흰 밥에 얹어 먹는 건 좋아하지만 새콤한 맛이 올라오면서 시어 버리기 시작하면 도무지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김치를 낯설어하고 즐기지 않았던 나는 결혼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부수입 파이프라인과 재테크 노하우가 있지만 한 우물만 파는 나는 한 해도 빠짐없이 월급의 70~85%를 저축하는 무식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출금을 갚았다. 해가 시작될 때마다 1년 치의 가계부 내역을 미리 작성했다. 각 달마다 정해놓은 저축률을 달성하려면 쓸 수 있는 돈은 미미했는데 그 하찮은 지출도 줄여서 끝내 내가 설정한 저축률보다 더 높게 저축하는 게 나의 방식이었다. 책이나 음반을 구매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했고 나는 식비를 줄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갔다.  

    

아침은 먹지 않았고 잦은 야근으로 저녁 끼니까지 회사에서 때울 때가 많았지만 식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엄마의 김치 때문이었다. 나는 김치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만들었다. 두부, 스팸, 참치,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를 돌아가며 끓였고, 김치찜, 김치고등어조림, 김치 콩나물국, 김치볶음밥, 김치부침개, 김치말이 국수, 김치 비빔국수, 묵은지를 씻어서 쌈을 싸 먹거나 들기름에 볶아먹었다. 그렇게 처절하게 한 달 내도록 김치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식비로 5만 원을 지출한 적도 많다.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엄마의 김치가 있었다.     


10년 만에 이룬 대출 완납을 축하하기 위해 자갈치 시장에 있는 ‘명물 횟집’에 갔다. 그 당시 광어회 회백반 가격이 1인분에 3만 5천 원 정도였는데 당시 나의 소비 스케일은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들어서 그것도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회 한 점을 집어 먹었다. 우리는 서로가 대견하고 짠했다. 그는 아등바등하는 나를 보며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이런 고생 없이 편히 살았을 거라고 씁쓸해했고. 나는 오래되고 낡은 옷을 입은 그의 뒷모습을 보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가 측은했다. 그랬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절박한 공동의 목표가 사라지고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그는 돌연 자신만의 삶을 찾고 싶어 했다.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나와 떨어져 지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그렇게 방황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수없이 많은 음식을 함께 먹었지만, 이 광어회 백반이 우리가 부부이자 동지로써 했던 마지막 식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이혼을 말한 시기가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1년째 되는 날인 것은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다른 이유도 분명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물건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되려고 미친년처럼 돈을 모았나 싶은 상실감이 몰려왔다. 능력의 한계치를 갱신해 가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그동안의 내 인생은 오로지 돈만 좇았던 빈곤한 삶이었다. 내 명의로 된 집과 차, 노후자금만이 안정적인 생활의 필수요건이라 여겼고 오래전부터 우리 사이에 시작된 균열을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도 나만큼 애쓰고 살았기에 돈만 모으느라 놓친 수많은 순간의 상실감을 분명 느꼈으리라. 그 상실감을 채워가려는 방식이 우리는 달랐던 것 같다. 나는 함께하기를 그는 혼자되기를 택했다. 나는 자신이 쓸모를 다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떨쳐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믿었다기보단 그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달랐을 뿐이고 나의 용도는 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안정적인 삶을 쟁취했다고 건방을 떨었다. 그 덕에 지금은 몹시 흔들리고 있다. 더 오래 걸리더라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순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여유를 누리고 주변을 살피며 적당히 살았어야 했다. ‘적당함’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강한다는 오명을 씌운 것을 사과한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삶을 적당히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이젠 안다. 그러니 적당히 이 시기를 넘겨주기를 적당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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