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Dec 21. 2023

그의 어머니가 해준 유일한 음식

잡채

엄마의 음식은 대체로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잡채만은 뭔가 아쉬웠다. 모름지기 잡채란 간장양념이 잘 배어든 짭짤하고 들큼한 당면을 와구와구 죄책감을 느껴가며 먹어야 제맛인데 엄마의 잡채는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담백한 맛의 잡채였다.     


남편의 어머니가 불고기 잡채를 먹으러 오라고 했을 때 나는 돼지고기, 파프리카, 버섯, 시금치, 당근, 양파가 들어간 엄마의 잡채를 떠올렸고, 아마도 돼지고기 대신에 불고기 양념에 버무린 소고기가 들어갔으려나 싶었지만, 그녀의 잡채는 소량의 소불고기에 당면을 때려 넣은 것에 불과해서 잡채라기보다는 고기가 적어서 당면으로 커버하려는 요리가 아닌가 싶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한 젓가락 집어 들어 입에 넣었을 때, 불고기 잡채는 내가 딱 바랐던 맛이 났다. 짜고 달고 게다가 소고기의 풍기까지 느껴지는 기름진 맛. 소고기가 없어도 아쉽지 않은 맛으로 과연 불고기 잡채라 부를 만했다. 이것이 그녀가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내게 해준 유일한 음식이다.  

    

엄마는 김치통에 김치를 넘치도록 담아서 2통이나 주려는 사람이라 날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남편의 어머니는 김장김치를 1/4 포기만 줘서 날 당황케 했다. 그때 알았다. 이 집은 우리 집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각자 모아놓은 돈으로 결혼했다. 나의 부모님은 대견해하면서도 미안해했고 그의 부모님은 상견례 자리에서 본인들의 재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으며 3년만 지나면 큰 도움을 줄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덜어놓지도 않고 본인들이 먹다 남긴 배달 음식을 내게 권하거나, 시들어 빠진 사과는 나눠주면서도 값비싼 것들은 둘이서만 꾸역꾸역 먹어서 배탈이 나고, 아침부터 제사음식을 만들었던 내게 점심으로 김밥을 사 와서 먹으라는 사람들.     


코로나 덕에 최근 몇 년은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게 되었지만. 아들 입에 고기 한 점 넣을 틈을 주지 않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밥을 다시 먹었다. 나중엔 오기가 생겨 나도 질세라 남편 앞접시에 고기를 나르고 내 입에 쑤셔 넣다가 노인들을 상대로 대체 뭔 짓거리인가 싶어서 현타가 왔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한없이 추레해졌다.    

  

인생에서 먹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나는 그들의 언행을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생기는 해프닝으로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나는 마음을 닫았다. 그리고 마음을 다시 열기로 했다. 그리고 또 마음을 닫았다. 그걸 무한반복 했다.      


알고 있었다. 내가 무표정으로 철벽을 칠 때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나는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그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게 했다. 그들에게 마음 한 톨도 주지 않으려 더 꽁꽁 싸맸다. 한동안은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떼쓰는 어린아이와 같은 나의 행동은 스스로를 떳떳이 여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시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 전화를 걸어 서로 할 말이 없는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견뎌 보기도 하고 그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욕하고 돈을 요구했을 때도 남편에게 숨기고 참았다. 나는 자신이 떳떳해지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한들 내가 남편이 원하는 살가운 며느리가 될 순 없었다. 그건 고양이에게 멍멍 짖으라는 것과 같았지만 멍멍 흉내라고 내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비난만 하는 그를 보며 더 이상 내 노력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나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노력하면 변하리란 생각은 어리석었고 변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생각은 더 어리석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매 순간 평가한다. 숨 쉬는 일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라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살아가기에 그 일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고 나서야 알아차려진다.     

 

나는 여전히 품이 넓지 않고 매사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달라진 건 딱 하나, 누군가의 생각도 옳다고 여기게 된 것에 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라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이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명백히 그의 부모님은 범죄에 해당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다를 뿐이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비에 가까운 사랑을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내가 추레해지는 순간을 마주하면 그땐 어김없이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를 위하는 일이라기보단 무엇보다 나 자신이 떳떳해지고 싶으므로 그 자리에 평가를 멈춘다. 수도 없이 반복한다. 이것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인지하지 못할 지경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                                              

이전 04화 칼국수를 싫어합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