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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Dec 03. 2024

달리는 마음

러닝을 시작하였다.

 상스럽게 느껴지는 동사를 지양하고자 하지만 이 동사를 대체할 표현은 없어 보인다. 사람은 깝치면 안 된다. 헬스 3개월 차에 근육 0.9kg을 얻고 득의양양 깝쳤는데 한 달 만에 생때같은 근육이 떠났고 각설이처럼 잊지도 않고 지방이 몸집을 불려 왔다. 죽기 살기로 했던 4개월 근력운동의 결과가 마른비만이라니. 


깝친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인바디 결과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오도카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땅콩버터를 너무 많이 처먹었나?’     


믿기 힘들겠지만 속된 표현을 지양하고 싶은 본인은 땅콩버터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싶을 만큼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다는 것을 밝힌다.      


실은, 멘탈은 이미 무너져있었다. 아직도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관념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헛웃음이 나왔다.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둘은 끔찍할 정도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 사실이 끔찍하게 버거울 때가 있다. 그래서 그들을 또 슬며시 분리시켜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간 마음이 힘들어서 운동이 잘되지 않았다. 당연히 단백질도 잘 챙기지 못했다. 땅콩버터만이 원흉이 아니었던 거다. 무기력이 온몸을 덮쳐 덤벨을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걸어 내려가 나를 판단하지 않는 이불속으로 숨어들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화가 났다.      


처음으로 러닝머신에 올랐다. 5분 걷고 5분 뛰었다. 화가 났던 마음이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스크린에 뛰고 있는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쳤다. 웬걸? 뛰는 폼도 꽤 괜찮다.(또 깝친다) 5분보다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다시 걸었다. 그렇게 45분을 걷고 뛰었더니 내일도 내일모레도 뛰고 싶어졌다. 내년에 러닝에 도전할 생각이었지만 미루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으므로 하고 싶은 건 당장 하자고.      


달리고 나서 부랴부랴 법문을 들으러 갔다. 스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꼭 나를 향하는 것 같아 주책스럽게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나와 난감하다. 조용히 울음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졌다. 달리기로 땀을 빼고 법문으로 눈물, 콧물을 뺐더니 내일도 내일모레도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또를 샀다.      


달리고 법문을 듣고 로또를 사는 사람. 이런 내가 어이없고 이런 나를 돌보는 것이 버겁지만 어떻게 어르고 달래야 하는지는 아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아르바이트마저 구해지지 않은 현실은 어이없게도 3년 전 퇴사했던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방향을 틀어서 새로운 일을 도전하려는 마음을 오도 가도 못하게 붙잡아 놓았다. 마치 이혼하지 않고 한집에서 살았던 지난날처럼 또다시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이혼이다. 그것만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제야 가닥이 잡혔다. 근력운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주저앉아 잠시 쉬고 뛰면 된다. 뛰다가 힘들면 걸으면 된다. 유산소가 지겨우면 다시 근력운동을 하면 된다. 뒤돌아보지만 않으면 된다. 아니, 뒤돌아보더라도 뒤만 바라보지 않으면 된다. 다시 앞을 볼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다시 걷고 뛸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체육관이 휴관이라 아침을 챙겨 먹고 밖으로 뛰러 나갔다. 몇 분 못 견디고 걷게 되리라 예상했는데 광안리까지 단번에 뛰었다. 30분이 걸렸다. 걷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속도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천천히 간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도 막상 해보면 된다. 나는 나를 좀 더 믿어 줘야 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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