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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na Apr 23. 2024

흐릿해지는 허전함과 삶에 묻어있는 그리움

참으로 오랫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생각이 나지 않은 건 아니다 뜬금없이 올라오는 기억과 그리움 슬픔은 여전히 내 속에 있었으니


바쁘고 정신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삶은 빈자리를 잊어가게 했다.

내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떠난자에 대한 예의이자 나에게도 최선이였다


시간은 흐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느덧 '허전함'은 내 안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아빠가 없는 가족모임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살아계셨다면..'하고 생각하는 생각들은 '그리움'의 몫이였다.


첫 해에는 꿈을 정말 자주 꾸었는데 점점 꿈에서도 보이시지 않았다

얼마전 동생이 아빠 꿈을 꾸었다고 했다

유일하게 그 존재조차 모르는 마지막 손주를 엄청 이뻐하시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어서 일까

아니면 또 기일이 다가와서 일까

나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

아빠가 나오시는 꿈의 대부분의 장면은

내가 결혼직전까지 살았고

결혼후에는 '친정'으로써의 의미가 있는 그 집이였다

안방침대에서 누워 계신 아빠는

마지막 손주가 오자 이뻐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시며

손주를 둥게 둥게 안아들고 좋아하셨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꿈 속 아빠의 얼굴이 선명해서

그 목소리 마져도

흐릿해졌다고 해서 잊은 것은 아니다

내 40몇년의 시간의 기억 속 아빠가 계셨고

계시지 않은 것 아직 3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아니 벌써 3년째가 되어간다.....

굳이 기일이 다가온다는건 달력을 세지 않아도 알았다

집 가까이 있는 절이 부처님이 오신날 등을 달기 시작하니까

절이 커서 그런지 행사준비를 참 빨리 시작했다

덕분에 내 슬픔도 조금은 빨리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부처님이 오신날 바로 앞날이 아빠의 기일...

부처님이 오신날도 아빠의 기일도 음력으로 지내기에

항상 부처님이 오신날 앞날이 아빠의 기일이였다

그래서 부처님이 오신날을 준비하기 위해 달리는 등들은 나에게 슬픔이 되었다

달리는 등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슬픔이 점점 깊어졌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빠른 시간이 너무 야속하다...

치열한 삶을 계속 살아내야 하는게 내 몫임이 가끔은 잔인하게 느껴진다


다만 이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아빠 이야기를 일상해서 덤덤하게 이약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덤덤하다기엔 속은 순간 울컥하지만

너무 슬퍼 서로 먼저 얘기할 수 없었던 아빠 이야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그렇게 얘기하고 추억할 수 있는게 유일한 감사거리였다


삶과 죽음은 어쩌면 항상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것 같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항상 죽음이 곁에 있다는걸 알기에

삶이 중요하고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기일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첫 제사 말고는 제사도 모시지 않기에 그날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한 기분이 든다

아마 집 근처 큰 절에서 하는 부처님의 날 행사 핑계삼아 그져 가족끼리 모여 밥한술 뜨지 않을까

엄마는 그날이 아빠의 기일이라는걸 인지하시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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