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혼이 있어 이혼이 있다

결혼 14주년이 되었을 올해였다

by Heana

'5월의 신부'

꽃이 피고 따뜻하고 어쩌면 가장 아름다울 계절

학원강사라는 직업에 걸맞게도 나는 스승의 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더 특별한 날들이 모여있는 달이였다

남편의 생일, 이제 중1 되는 아들의 생일, 결혼기념일 까지..

내 핸드폰 캘린더에는 이제 아들 생일 말고는 '이후의 모든 일정'을 삭제 했지만...


딱 서른의 나이였다

나 때만해도 여자가 삼십대에 결혼을 안하고 있으면 마치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했다

'결혼 적령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적령기'라는데 마음이 급해져서

결혼 안한 여자 나이가 삼심대가 된다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서

결혼을 선택한건 아니였나... 이제서야 그때를 뒤돌아보게 된다


이혼을 하게 되자 이상하게도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지?'하는 태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피난처'는 아니였을까 생각도 해보고

연애하던 당시에도 느꼈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사실은 외면하고 회피했던건 아닐까도 되돌아보고

지금의 남편과 꼭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난 어떤 이유로 이 사람을 선택했던 걸까??

짧은 시간도 아닌 십여년이 훨씬 넘는 결혼생활이였는데..

그 시간은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결혼한 이유도

그 긴 시간을 살아온 이유도

헤어지는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할까 만은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혼을 진행하다 보면

내 기억이 과거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는 부족한 며느리였고 모자란 아내였고 어설픈 주부였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보면 가장 못났던 자리는 엄마의 자리였던 것 같다


이제 머지않아 남이 될 남편아..그거 아나?

나는 '엄마' 하기 이전에 '와이프'가 항상 먼저였어

난 다른 기혼 여성들하고 다른게 있더라고

다른 여성들은 '엄마'가 되고 싶어한데

그런데 난 처음부터 '와이프'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함께 사는 동안도.. 이제 헤어지는 마당이니 더더욱..

난 결국 '와이프'가 돼지 못 했네...


한번이라도 내가 당신의 사람인 적이 있었을까...?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있을 리 없는 일들이였는데..

오히려 나를 너무 믿었던 걸까?

그게 되려 잘못이였을까??


변호사에게 여러가지 서류를 제출하면서

그 과거의 시간부터 기억해내 적어내려가면서

정말 말도 안돼는 시간들을 내가 견뎌내며 지내왔다는걸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그 모든게 사랑이였구나..'

오히려 깨달았다는걸 알까...


당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있어야 하는 자리가 항상 비어있어도

'남편'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결같은 모습으로 당신곁에 10년 넘게 있었던 나란 사람을

아예 모르는 남보다 더 모습으로 헤어지는데엔

당신 나름대로도 이유가 있겠지


난 결국 이혼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 과정이 너무 끔찍하고 아프고 고통스러게..

시간이 지나면 고마울 것 같기도 하다


난 후회와 아쉬움이 없거든

'와이프'로써 했던 내 모든 희생과 사랑 그 시간 모두

진심이였고 최선이였으며 내 모든걸 쏟아부었기에

그런데 미련 한 올까지도 탈탈 털어주고 있다

자식까지 낳고 십여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사람이.. 이정도의 사람이란게.....

내 30대, 40대 초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아서 억울하기도 했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제라도 알게 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래도 나 아직 젊잖아

나이는 많지만 사회생활도 이제 다시 시작했는데

다시 내 인생을 시작하고 개척할 수 있을 때 이렇게 놓아줘서 고마워하게 될 것 같네

당신이 다른데 눈이 멀어서 지금 뭘 잃고 있는지도 모르는게 참 다행이라고

최대한 천천히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눈물을 흘리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이 더 긴 시간을 더 아프게 울었으면 좋겠

그런데도 진심어린 바람은..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


이혼을 온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다

이혼 전에 몸부터 먼저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으니

더 빨리 실감났던 것 같아


이제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2주안에 모든 것이 끝난데

'이혼'이란 말이 나오고 벌써 만 3개월이 지

이 고통의 시간들이 이제 다시 오지도 않고 완전히 끝난다는게

안도하면서도.. 왜 그 안에 그리움이 있는지...

나도..잘,, 모르겠지만.....

긴 결혼생활이였고 그 안에 좋았던 시간들도 있기에 아픈거겠지

하지만 난 '와이프'라는 이름으로는 더 이상 울지 않으려고

내가 흘리는 눈물은 오직 '엄마'라는 이름의 눈물이여야만 하니까


서류상, 법적으로 완전히 남이 될때까지는

그리고 완전히 남이 된 이후에도

분명 내겐 아픔과 슬픔 그리고 눈물이 있겠지만

최대한 빨리 자리 잡으려고

마음이든 몸이든 경제든

그게 나를 위한 일이고 같이 살진 않아도 내 아이를 위한 일이니까


이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보려고

당신은 더러운 것인 줄만 알고 버려야 하는 폐기물인줄 만 알고

자세히 보지도 않고 날 버리지만

그 진흙 속에 진주가 있었음을

내 스스로가 증명해 보이면서 살려고


아직은 조금은 나중에 이루어질 이야기겠지만..

앞으로의 내 삶을 기대하며 꿈꿔보려고

아내라는 엄마라는 며느리라는 주부라는 그 모든 이름표를 떼고

오직 내 이름 세글자.

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발걸음을 설레임으로 걸어보려고


이 길 끝에 뭐가 있는지 나도 몰라

그런데 분명 뭔가는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보려고

내게 준비된 뭔가가 있는데 그게 너무 크고 좋은 거라

이런 시간을 보내야만 는걸꺼라고..

그 믿음이라도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지금이기에...



이혼,

남의 이야기 일 줄 알았던 그 단어

내게 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