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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Nov 16. 2024

자기 생니 9개 뽑아버린 영화감독


최근 업무 제안이 예전보다 더 많이 들어와 일을 하다보면 기본 새벽 1~2시는 훨씬 넘어서 잠을 잔다. 점심에 된장국 안에 두부를 씹다 치아가 욱신거려 치과에 갔더니 잇몸이 많이 붓고 내려앉아 치아 뿌리가 다 드러났다고 한다. 양치질을 할 때 통증이 느껴지는 원인이었다.


방송업계는 어렵고 불황이라 하지만 일 하는 사람들은 계속 일한다. 현업에 더 충실하고자, 아쉽지만 이곳에서의 글을 줄이려고 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갈 길이 멀다.



Netflix 전설의 시리즈 <오징어 게임> 을 만든 황동혁 감독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황 감독님은 <오징어 게임> 첫번째 시즌을 촬영하다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이빨을 9개 뽑았다고 한다. 이빨이 알아서 뽑혔을거라 생각한다. 잇몸이 내려앉다보면 뿌리가 흔들리고, 그러면 부드러운걸 씹어도 저절로 뽑힌다. 시즌 1을 촬영할 때는 49살의 나이였는데 치아 9개를 날린 셈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생니 9개를 뽑는 걸 감당할 만큼 전념하고 있냐고. 집중하고 있냐고. '집중'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집중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솔직히 ADHD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순간도 많다. 애초에 그런 질문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만큼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


고대 수렵채집인과 현대인의 집중력을 비교해보면, 아마도 금메달리스트 선수와 어린 아기 정도의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언제 야생동물이 자신들을 침략할지 모르는 상태로 늘 경계를 기울였다. 새로운 버섯을 발견하면 집중해 관찰하고 살짝 먹어보면서 그것이 독버섯인지 아닌지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 중 한번에 단 한가지 행동만 하는 사람은 거의 멸종됐다고 보여진다. 밥을 먹으면서 휴대폰 영상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건 당연하고, 걸으면서 노래를 듣는다거나, 맞은편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휴대폰을 확인한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는 전보다 선택의 여지는 많아졌지만, 선택한 것에 대해 실제로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아니 그래서요? 치통 속에도 쾌감은 있는 법인걸.”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꼬박 한 달 동안 이가 아팠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도 쾌감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소. 이 경우 물론 말없이 성질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신음 소리를 낸다오. 하지만 이건 솔직한 신음이 아니라 적의에 찬 신음인데, 바로 이 적의 속에 이 장난의 핵심이 들어 있는 것이올시다. 이 신음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쾌감이 표현되거든. 만약 거기서 쾌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신음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요."

그럼,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을 병신으로 만들고 괴롭혔느냐, 하고 물을 텐가? 대답인즉 이렇다. 즉,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지겨웠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재주를 부려 본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자신을 좀 더 잘 살펴보면, 여러분, 여러분도 정말로 그렇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다 보니 스스로 이런저런 모험담을 고안해 내고 삶 자체를 지어 냈던 것이다. 이런 일이 나한테 얼마나 자주 있었던지, 뭐, 예컨대 아무 이유도 없이 골을 내기도 했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잘 모르는 이라 하더라도 <죄와 벌>이라는 소설은 들어봤을 거다. 그 소설 쓴 작가 맞다. 그가 살던 시기는 1821–1881년으로, 그는 사는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글을 썼다. 소설과 중편 소설로는 약 15편이 있고, 단편 소설은 30편이 된다. 수필 빛 비평은 20편 이상이고, 희곡은 1~2편이다.


그가 너무 한가하고 안온해서 그렇게 많은 글을 썼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 날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출간하고, 주목받는 신인작가였다. 순탄한 소설가의 걸을 뻔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체제 비판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는다. 사형장에서 처형직전 황제의 사면으로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된다. 시베리아 유형 4년형과 강제 군 복무 6년을 마친 뒤에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이후 그는 무지막지한 분량의 글을 쏟아낸다. 오늘날 원고지 매수로 환산하면 4만매에 이른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문학계에 굵직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렇게 작가로서 대성공을 거둔 뒤 무난하게 잘 살면 되는데 삶이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우연히 접한 룰렛에 꽂혀 평생 도박장을 전전하며 도박중독으로 고통받았다. 거액의 빚을 지고는 죽기 직전까지 빚쟁이들이 쫓아왔다고 한다.


그에겐 간질도 있었고, 도박벽도 있었다. 그런 남자가 어떻게든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직업 중 성실성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직업 중 하나다. 스스로를 감금해 썼을 거다. 광기와 정신병이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적었을 거다.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는 법칙이 결코 없다. 이 글을 보고 '아 그래!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잠을 더 많이 자고 웃긴거 많이 보면서 즐겁게 살면 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행운의 영역이다.



다만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새벽 늦게까지 일하다 잠드냐고 묻는다면, 내가 플레이 하는 게임은 이미 생존 단계를 넘어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우습게도. 치통 속에도 쾌감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KYA-zmz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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