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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왜 위로가 필요할까요?

by 스몰빅토크

Q. 안녕하세요.

가깝게 지내는 직장 동료가 약 두달 전쯤 임신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기에,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보냈습니다. 약소하지만 마음을 담아 출산 선물도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임신한 아이를 유산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너무 빨리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린게 미안하다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안쓰럽더라구요. 제가 경험도 없고, 유산한 슬픔이 얼마나 상상도 잘 가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직장 동료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까요?


A. 안녕하세요.

위로와 공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직장 동료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은 그 깊은 마음이 귀하게 전해집니다.


여성에게 있어 임신과 출산은 일생의 중요한 획을 긋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임신 중 아이를 잃게 되는 유산 또한 잊을 수 없는 아픔과 기억이죠. 그러나 유산을 하게 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처음부터 그렇게 칼같이 정리되지만은 않습니다. 시시때때로 자책을 하게 되고, 작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또 유산을 했어도 임신 호르몬은 당분간 지속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르몬도, 몸도 무척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감정 컨트롤을 잘 해주는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감정과 신체가 취약한 상태에서, 주변에서 위로와 응원, 지지를 보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평생 기억에 간직할 고마운 인연으로 간직하게 될 수도 있겠어요. 사연자님께선 미처 말씀하진 못하셨지만, 저는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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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슬픔에 잠겨있는 존재에게 위로를 건내야 하는가'


이 말은 곧, '슬픔은 왜 위로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사람마다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 다릅니다. 푹 자고 일어난다거나, 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거나, 훌쩍 여행을 떠난다거나 등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도 있습니다. 어찌됐건간에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선, 기존에 갖고 있던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건 증명할 필요 없는 사실입니다. 그 힘을 자기 내부에서 발전기를 돌려서 찾아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결국 맺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얻어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얻어내는 힘이야말로 강력하죠.


슬픔은 대개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고립됐을 때 찾아옵니다. 기회, 꿈, 의미, 관계 등 내가 갖고 있었던 소중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갈때 사람은 '슬퍼진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럼에도 내 곁에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을 때, 상실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감정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슬픔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직장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슬픔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차원의 소통과 진심을 건네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진실된 눈빛과 침묵, 손길과 공감을 보내주세요. 많은 말보다 더 위로가 되는 법입니다.


당신이 위로는 슬픔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겁니다. 다만, 위로를 하기 전 이 사실은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슬픔은 없애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저믈요. 특히나 아이를 유산한 아픔과 고통은, 노력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도록 둬야겠지요. 그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일. 그것이 회복하게 만듭니다.


당부할 점이 있다면 괜히 유머러스하게 만든다고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거나, 분위기를 애써 밝게 띄우려는 노력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상대방은 무척 예민하게 곤두서 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밥도 잘 먹지 못할거에요. 이미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노파심에서 이야기를 해봤어요.


유산의 슬픔에 빠진 직장 동료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사연자분의 마음, 잘 받아봤습니다. 공감의 감수성이 뛰어나신 분들은 그렇더라구요. 주변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겪을 때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슬픔이 전이되었을 스스로의 마음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직장 동료분과는 어느정도 시간이 좀 흐른 후 함께 미역국을 먹으러 가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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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을때 내리는 진눈깨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 한강, <흰>


https://www.youtube.com/watch?v=tAcKfnf0z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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