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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13. 2023

12월 스케줄은 새 다이어리에 쓰는 게 국룰!

그래서 넌 마무리가 없구나?

11월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어리를 샀다. 성격 급한 다이어리 주인은 12월이 오지 않았음에도 다이어리를 바꿀 생각에 들떠있다. 생각해 보니 다이어리를 끝까지 채워 본 적이 없다. 언제나 12월은 새로 산 다이어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월별 페이지를 보면 대부분 12월부터 시작되지 1월부터 시작되는 것은 거의 없다. 직접 날짜를 기재하는 다이어리도 있으나 나는 무조건 새로운 다이어리에 12월부터 쓴다. 뭐랄까. 그냥 새것을 쓰고 싶달까? 크리스마스가 두 달이나 남은 시점에서 그날을 기다리는 심정과 비슷하다. 나는 이미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일일 다이어리 말고 월별 다이어리를 선호한다. 그것도 얇고 좁은 다이어리 말이다. 일일 칸이 있어봤자 하얀 백지로 남기 때문에 종이가 낭비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내가 필요한 부분만 담긴 것을 사는 것이 훨씬 좋다. 예전엔 연말만 되면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는 재미에 두근두근했는데 요즘엔 그저 내가 원하는 크기만 찾고 있다. 아무리 예쁜 들 내가 사용하는 곳은 월별 페이지뿐이니. 두꺼운 다이어리면 표지가 아무리 예뻐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육심원 다이어리가 그렇다. 육심원 다이어리가 얼마나 예쁜지 20살 때부터는 그 제품만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지고 다니기 버거워져서 포기하게 됐다. 혹시 이 글을 육심원 제품 관계자가 본다면 제발 얇은 먼슬리 다이어리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제발. 흑흑.      

올해도 새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12월이 시작되자마자 가열차게 사용하고 있다. 이 다이어리가 내 다이어리인지 우리 집 꿈나무들의 일정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지만 이것 덕분에 그나마 오프라인 작업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일정을 쓰고 완료된 것을 파스텔 형광펜으로 쓱~ 칠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버리기 전에 올해 쓴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나는 1월, 2월, 5월에 가장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좋아 좋아! 올해 출산을 했는데도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니 내가 다 기특하다! 자화자찬을 마친 뒤, 나는 새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리곤 내년 계획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 아쉽게도 놓쳤던 것들이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다이어트 같은 것은 너무 당연해서 이제 목표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렇게 목표를 적어놓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나 올해 목표는 뭐였지 싶은 것이다. 생각해 보니 연말에 얼마나 많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언제나 용두사미였나 싶고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보였다. 그 일이 한 해만이 아니라 매해 반복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는데 그 원인을 찾아보니 다이어리 때문이었다. 나는 12월의 일정을 언제나 새 다이어리에 썼기 때문에 마무리가 없었다. 맙소사! 나에게 12월은 한 해를 정리하는 달이 아니라 내년이 이미 시작된 착각의 시간이었다. 오~ 이러면 안 돼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다시 버리기 전 다이어리를 살펴봤다. 보니, 올해 못한 일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일본 유학 신청서도 안 냈고 논문 투고도 하려고 했는데 못 했고 일본어 시험을 보기로 했는데 그것도 안 봤다. 안 한 것은 그대로 채무가 되어 내 몸에 쌓여있는데 무엇을 안 했는지 점검도 안 하다니!

 

새로운 다이어리를 펼쳐서 올해 완성 못한 것들을 적어놓았다. 그리곤 내년 계획을 옆에 써놨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서른 중반에서야 깨닫는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인가? 그러니 앞으론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이 되기를! 끝을 봐야 시작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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