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기 보결 순회기간제 교사

by 블랙홀

코로나로 집콕 하다가 작년 초부터 시간강사로 근무를 시작했지만, 강사는 말 그대로 시간을 채우면 페이가 나오고 학교 행사나 아이가 결석을 하면 빈 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주당 10시간을 계약했지만 실제론 7-8시간밖에 되지 않아 교통비 및 품위유지비(기름값, 화장품, 옷 등) 거기에 시간을 맞추려 툭하면 과속위반이라 돌아서면 별 볼일 없는 생활이었다.

속물근성은 아니지만 자원봉사나 페스탈로찌도 아닌 현실적인 내겐 버거운 자리였다.

종일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제에다 방학엔 그마저 쉬어야 하니 시간을 채우는 게 어려웠다.


방학이 되자 처음 강사자리를 알아보던 것처럼 교육청 홈피를 기웃거리다 보니 채용공고 중 생소한 걸 발견했다.


'00 교육청, 단기보결 순회기간제 교사'

공고문을 보니 무려 6차 공고에 학교가 아닌 교육청 소속으로 평소 복무는 일반행정직과 같이 교육청에 근무하는 자리란다.


학교에서 요청이 오면 해당학교로 교사의 복무시간에 맞춰 출. 퇴근해야 하는 조금은 이중적인 근무였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일단 한시적으로 만 65세까지 가능하다니 지원서를 냈다. 물론 그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만 60이 되면서부터 학교의 기간제 자리는 젊은 이에게 밀리고, 명퇴는 3순위라서 거기에서도 밀렸다.


1순위가 임용대기자, 2순위는 나이 상관없이 초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3순위는 명예퇴직자로 제한을 뒀다.


50대 명퇴자는 60대 정년퇴직자에게도 밀리는 상황이 허다하게 벌어졌다. 도 교육청의 정책이 그렇다니 지역교육청은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단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억울하면 하지 말라는 게 정책이었다.


암튼 6차 공고라는 건 그만큼 지원자가 없다는 얘기고,

지원자가 없다는 것은 인기가 없다는 얘기고,

인기가 없다는 건 불리한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느꼈지만 명퇴자라 번번이 밀렸던 걸 생각하면 내겐 호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지원서를 내고 이틀 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헐... 지원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면접 날, 공고에 있던 것처럼 실제 수업실연을 해 보라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기간제를 5-6년 했어도 수업실연은 머리 털나고 처음이라.


수업연구대회를 거치고 수석교사를 하면서 숱하게 한 것이 수업공개라 대수롭지 않게 장학사 3명 앞에서 연극수업을 하려 했지만 쑥스러워 웃음만 나왔다.


다행히 30여 년 동안 해 왔던 일이라서인지 수업에 대한 세포는 아직 살아있어 내 방식대로 시작했다. 동기유발과 수업활동 1단계까지만 하란다.

5분 남짓한 시간은 20분여분 흐른 듯 했다.


그날로 계약서를 쓰고, 사무실에 자리가 마련된다는 일주일 후부터 근무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 궁금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담당자에게


@ 이 자리는 왜 6차 공고가 날 때까지 채용이 안되었을까요?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동안은 뭘 하나요?

@ 대상이 몇 학년인지도 모르는데 수업 자료는 어떻게 만드나요?

@ 전담(체육, 과학, 영어 등)은 전공자가 해야 되는데 전 경험이 없어 어떡하나요?

@ 병가와 연가는 어떻게 하나요?

@ 제가 받는 수당종류는 어떻게 되나요?

@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어떻게 신청하나요?......


그때부터 담당자는 멘붕이 왔나 보다.

아마도 괜히 노땅 뽑아서 시집살이하는 거 아닌가? 하는 땡감씹은 얼굴...

하지만 궁금한 건 미리 물어봐야 나중에 오해가 생기지 않는 법. 까탈스럽다 할 정도로 확실히 짚고 가는 게 낫다는 게 내 지론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하니 내가 받을 봉급과 수당명세서, 병가와 연가 출장과 출장비에 대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a4용지에 출력을 해 줬다.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사무용품도 따로 준비해서 그렇게 단기보결 순회기간제 생활은 시작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