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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아주오래된 면접이야기(1) 삼성카드

by mingminghaen

+이상하고 슬픈 취준기록은 약 15년이 넘는 기간동안의 취준에 대한 기록이므로 연재되는 면접 이야기들은

최대15년~최소6개월 전의 시간을 넘나들 수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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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대학졸업 후 진행된 공채들 중 내게는 제일 상실감과 절망감이 컸던 삼성카드.

당시 최종 불합격과 함께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터지는 바람에

똑바로 서있을 수 조차 없는, 사방이 꽉 막혀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잔인하고도 슬픈 10월을 맞았었던 기억.

무엇보다 평소와는 달리 이상하리만큼 자신이 있었고,

면접을 보고 나온 후, 면접관들께 칭찬을 받기도 해

'기대'를 경계해온 삶을 살아온 나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그 기대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탈락 후 가장 오래 방황했기에 면접을 톺아볼 여유가 없었으나

그래도 한번 정리해두고자 한다. 이 모든것이 내 삶의 기록이니까_



SSAT에 합격 후 당시 많은 삼성 계열사들 중 삼성카드는

SSAT 합격자 발표 후 거의 바로 면접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열심히 준비해야한다는 사명감과 절실함에 활활 타올랐던 나.

삼성은 당시 다른곳과 달리 하루에 모든 면접 전형이 끝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하루에 PT, 토론, 임원면접 모두를 진행하는 방식은 분명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기약없는 기다림을 힘들어하고, 사실 성격이 급한 내게는

나의 합격여부를 떠나 정말 마음에 드는 방식이었다.

그렇다고해도 하루에 서로 다른 3가지 유형의 면접을 준비하고, 봐야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이 동반되는 일로, 면접을 보고 나온 뒤에는 몸 안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


사실 면접을 준비한다는 건, 아니 열심히 준비하다는 것은 분명 힘들고 어렵고 귀찮은 일이지만,

오랜시간동안 다양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며 깨달은것은

면접준비가 그 어떤것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면접은 시험처럼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분명 부족하겠지만

그럼에도 면접을 준비했던 시간의 내 마음가짐, 열정, 절실함, 최선을 다한 경험 등은 나도 모르게 내게 차곡차곡 쌓여 면접을 보는 내게 단단한 믿음과 자신감과 여유를 준다. 그건 정말 확실하다.

당시의 나도 설익고 서투르고 너무 몰랐던 이전의 면접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내 기준에서는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고 드디어 면접 당일.


3개의 면접을 하루에 치뤄야하므로 아침 8시에 시청역 면접 장소에 도착했고,

면접 장소에는 면접 대상자 개개인별로 시간대 안내 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PT-임원-토론 면접의 순서!


당시 PT면접은 지원자들에게 5~6개의 문제묶음을 한번에 나누어 주고, 그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다만 문제를 선택하는 시간도 준비 시간에 포함된다고 했다.

주어진 문제가 굉장히 내용이 많기 때문에 문제를 읽고 고르는 데 시간을 많이 사용해버리면 정작 가장 중요한 답변을 준비하는 데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그런 (돌이켜보니) 치사하고 잔인한 방식...ㅎㅎ

차례차례 문제를 읽어보았는데 우선 첫번째 문제는

A카드사의 마케팅 방안

음. 어렵군. 그냥 다음거 해야겠다. 라고 빠른포기를 하고 뒷장으로 넘긴 뒤 만난 두번째 문제는

자동차 리스

오잉? 더 어렵네....다음거 다음거! 서둘러 본 세번째 문제

출구전략

흠......뒤로....

네번째는 회계 관련

아.. 하 하 ... 저는 회계를 재수강해 겨우 B+를 받았던 사람인데요.... 다시 뒤로....


결국 뒤로뒤로 넘기던 내가 선택한 문제는

1번, 카드사의 마케팅방안이었다.

문제의 대략적인 내용은 A라는 카드사의 서비스 coverage는 66.6%이지만

서비스들 중 K서비스는 특정가맹점에서만 두드러 지고 있어 활용도가 편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1) 현재 A카드사의 위치를 정의하고

2) 외부상황과 내부상황을 분석해보고

3) 마케팅 방안을 수립하며 그에 따른 위험을 제시하여

4) 새로운 마케팅 컨셉을 제안하라

.

.

.


숨막히는 정적.

당시 나는 40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하얗게 된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했었을까.

아주아주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보니 그때는 자책하느라 해주지 못한 말을 해줘야겠다.

고생했어.!! 잘했어.!!



3~4분의 면접관님들 앞에서 5분 분량의 PT를 진행했는데,

이전에 망쳤던 많은 면접들 덕분인지 크게 떨거나 긴장하지 않고

발표할 수 있었다.

PT 후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타 카드사 삼성카드와의 서비스 비교, 경험해본 독특한 카드서비스, PT내용에 대한 질문 등이 이어졌다.

이 때 면접관분들이 너무 잘했다고, 남은 면접도 이렇게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말해주셨으니

내가 기대의 풍선을 둥둥 하늘로 띄우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흑흑.


PT면접이 끝나고 진행된 임원면접에서도 질문은 비슷했다.

기본적인 자기소개, 전공과 삼성카드 직무의 연계성, 친구들과의 관계, 성격 상 장점,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것,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 등등

임원면접에서의 분위기가 좋거나 나빴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고,

그것이 합격여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것이 아니므로

만약 임원면접의 분위기가 어렵고 불편하고 나빴고 나아가 적대적으로 느껴졌더라도

절대 주눅들지 말고, 다음 면접에 그 서걱거리는 기분을 가져가지 않도록 경계하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토론면접.

이때쯤 되면 긴장이 아주 조금 풀리지만

입은 마르고, 머리는 뒤죽박죽에 공들여 한 화장같은건 무너지고...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 이렇게 또 마지막이구나 하는 허탈함으로 싱숭생숭한 마음.

내가 속한 조가 토론할 주제는 '경차택시도입' 이었다.

가장 자신없었던 면접이었고, 준비했던 주제가 아니었어서

확실히 처음보다 집중력이 떨어진걸 느꼈지만 최대한 발언 횟수를 다른 지원자들과 맞추고자 했다.


면접 후 10일 정도 지난 어느 날 계열사 중 가장 처음으로 합격자 발표가 났다.

10일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기대와 절망 속에서 줄타기 하며 보냈던 시간들.

너무 기대가 컸어서인지, 아니 사실은 마음 한 구석의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면접에서의 내 모습을 미화시켰었다. 아주 조금의 근거없는 자신감을 더해.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그 감정없고 딱딱한 하지만 너무나도 차갑고 무서운 그 세글자를 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부정하고 싶었었던 그 날이 기억난다.


하지만,

불합격으로 인해 생긴 좌절과 속상함을 오래오래 갖고 있으면 가장 힘든 사람은 자신이고,

그러니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데 쓰이는 그 큰 마음을

나를 다독이고 응원하고 일으키는데 쓰도록 애써보자고,

물론 어렵지만 너무 힘들지만 그렇게 해야만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러지 못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이미 수많은 면접에 탈락해 마인드컨트롤을 잘 한다고 자부했음에도

워낙 기대가 컸고, 공채에 합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평소의 나와 달리 나만의 동굴을 파고 그 안에서 내가 만든 슬픔과 좌절과 자책의 감옥에 갇혀

한참을 헤맸다.

만약 합격을 했다면 이것도 저것도 다 좋은일만 있었을거란 또 다른 망상에 갇혀 있기도 했다.

그때, 내 면접 내용에 대한 복기, 최선을 다한 나에 대한 응원,

회사와 내가 인연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정과 용기가 있었다면

조금 더 빨리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조금 덜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라고 뒤늦게 깨달았다.

탈락은 나의 부족함만으로 결정되는것이 아니다.

최선은 다하되,

면접의 불합격은

분명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내 탓이, 내 잘못이 100퍼센트 일 수는 절대로 없다는 것을 꼭꼭 기억하자.

꼭.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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