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ㅇㅇ 인사팀입니다. 채용 건에 지원해주심에 깊이 감사 드리며,
본 채용 건에 불합격 되셨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회사 사정 상 채용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귀하의 우수한 능력에도 불구 좋은 분들은 모두 모시지 못하는 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앞날에 항상 좋은 일이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제는 줄줄 외울 수도 있는 불합격 통보 메일 내용.
또 한번의 탈락 메일을 받은 어느 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대체 몇 번이나 불합격이란 글자와 마주했을까.
(그러나 이내 곧 그만 두기로 했다. 내게 너무 잔인한 듯해서)
누구나 탈락은 두렵다. 싫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는 것,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 없음을 확인하는 것,
누군가가 필요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많다는 것.
이 모든 사실들을 길면 5문장, 짧으면 1문장으로 확인받는 걸 어느 누가 좋아할까.
취준생 초기, 불합격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내 자신의 별볼일없음’이었다. (이게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는 걸 몰랐다.)
높지 않은 성적, 가족관계, 성취를 이루었던 경험, 장점과 단점,
키와 몸무게(10여년 전만 해도 당연히 기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등에 어찌나 채울 것이 없던지.
텅텅 빈 이력서를
약간의 창작과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진실과 약간의 미래와
약간의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곧 이룰것 같은 어떤것들로 꾸역꾸역 채워 넣으며
매일매일 내 한계와 게으름과 무지를 탓했다.
동아리 활동을, 봉사활동을, 국토대장정을, 인턴을, 시험을
그 어떤것이라도 몸을 한번쯤 갈아 열심히 해보지 않은 나를 위한 식상한 변명들을 되새김질하면서.
하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건지,
서류 불합격은 곧 내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사건의 범위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류 합격을 확인하기 위해 채용 사이트에 접속 해 손을 벌벌 떨고 눈을 질끈 감으며
확인 버튼을 눌렀었지만,
약 두 달 정도 지나자 나는 어느새 불합격을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나 조차도 놀랄 의연함으로 견디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불합격이야! 하며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얼른 다른 지원서를 작성하거나,
불합격을 핑계로 내 마음을 달래주겠다며 맛집이나 극장으로 향했다.
오히려 모니터에 서류합격이라고 (아주아주가끔)뜨기라도하면,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몇 번이나 다시 눈을 비비며 거듭 확인을 했고.
이렇게 서류 불합격은 어느정도 적응해갔으나,
면접 불합격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처음 S그룹 면접에서 탈락했던 날의 기억들이 생생한 것은 역시
그 기억이 내 인생 속 불합격의 조각들 중 제일 강렬하기 때문이려나.
나는 과제가 있어 S그룹의 합격자 발표를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네.. 거듭 말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었지요.)
절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해놓고도 나는 손이 벌벌 마음이 동동거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험번호와 비밀번호를 보내고 난 뒤 흘렀던 얼마간의 정적.
그리고
‘ㅠㅠ’라고 보내온 친구의 답장.
지하철 안에서 위태롭게 서있던 내 마음이 툭.하고 떨어졌다.
문장 그대로 눈물이 차올랐다. 머리가 멍해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불합격이 누군가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어야 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미안하던지…
이 날의 내 감정이 아직도 문득 문득 내게 생생한 또 다른 이유는
아직 남아 있는 그날의 휴대폰 문자들 덕분이다.
나는 예전에 사용한 휴대폰들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는데,
최대 200개까지 저장이 가능한 보관함에 있는 문자들 중 그 날 받은 문자들이 몇 개 남아있다.
그 날의 그 문자들이 내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문자를 보내준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도,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선배도,
그때처럼 편하게 연락할 수는 없는 누군가도 있기에
문자를 다시 읽으며 그때를 추억하며...
어느새 미소 짓고 있는 나는 결국 불합격의 기억도 또 이렇게 좋은 추억과
애틋한 고마움으로 견뎌내는 그런 성숙한.....
하...
어쨌든, 첫 불합격을 시작으로 나는 줄줄이 불합격했다.
정말로 줄줄이.
불합격은 자신감, 나의 존재가치 등을 몽땅 쓸어가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렇게 점점 나는 불합격에 무뎌져 갔다.
서류 불합격 같은 건 정말 일상이었기에
취준생으로 꽉 찬 15년을 보내며,
나는 내가 어디에 지원했고, 불합격 했는지 관심도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우선 넣고, 잊어버린다.
그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알아버려서인지 정말 기억력이 쇠퇴한 건지는 노코멘….ㅌ…
사실 내가 잊어버려도 회사는 잊어버리지 않고,
대부분 합격한 곳만 면접을 위해 연락이 오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맘이 편했다.
하지만
사실… 난 알고 있었다. 불합격에 아주 무뎌질 순 없다는 걸.
불합격은 굳은살처럼 내게 오래오래 머물렀다.
굳은살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굳어진거지.
매일 들여다보지 않을 뿐 매일 나와 함께 한다.
불합격에 무뎌진 마음들도 사실은 얇지만 단단하게 내 마음 어딘가에 쌓여 굳어졌고,
나는 잠시 그걸 덮어 놓았으나 아예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평생.
매번 아프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괜찮다고 말해주며 나를 안심시킬 수 있는 사람,
그래야만 하는 사람은 나뿐이므로 노력하는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필요할 만한 단편적인 이미지에 나를 끼워 맞추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누구인지도 모르는, 혹은 앞으로도 몰라도 될 사람들에게,
간절한 부탁을 반복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거절당하는 것.
그 모든 것에서 오는 상처가 내 안에 천천히 쌓여가고 있었다.
아팠다.
문득 문득 걸음을 내딛을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때,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온 몸을 감쌀 때,
내가 누구인지 나 조차도 알 수 없을 때
아팠다.
작정하고 파고 판 날은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고,
새 살은 커녕 더 거칠고 단단한 굳은살이 구석 구석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번 굳어진 살들은 살뜰히 보살펴주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실은 아무리 돌봐줘도 처음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완벽히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계속 안 좋은 상태로 있을 순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종종 무심한 척 불합격을 흘려보내다가도,
또 다른 어떤날들에는 종종, 불합격을, 불합격한 나를 들여다본다.
불합격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불합격을 마주한 내 마음을 살펴본다.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둔 자괴감과 허탈함을 오래 들여다 본다.
그런 과정들이 불합격이라는 폭풍우 앞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다독이면서.
그래서 나는 어찌되었든 여기까지 왔다. 아주 많이 무너지지 않고.
+아 물론.
탈락이 늘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마치 소개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만났으나 다음 만남을 거절하기 곤란할 때,
상대방이 먼저 나를 거절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처럼.
혹시 합격해도 내가 그 회사를 선택하기에는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을 때,
번거롭지 않게 회사에서 먼저 나를 탈락시켜 줬으면 하고 바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불합격 연락이 오면 그렇게 반갑……
(아. 역시 나는 정신을 덜 차린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