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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Oct 26. 2024

#4. 기다림은 디폴트_

우리는 매일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무언가를 기다린다.  

쇼핑한 물건의 배송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드라마의 다음회를 기다리고, 

눈앞에 닥친 중요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퇴근시간과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또…그냥 하루가 얼른 가버리기를 기다리고…

위에 언급한 경우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무언가를 기다린다면,

취준생의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취중생의 기다림이란... 

기다리던 것은 너무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지 않던 것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것도 

다시 너무 기다리게 되고, 

매일매일 기다림의 횟수는 많아지고, 

각각의 기다림 기간은 어찌나 더딘지.

게다가 그 기다림에 더해

결과에 따른 상처, 후회나 자책같은, 

원하지 않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싫다고 불편하다고 기다림을 없앨 수는 없다.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할지라도, 아니 실은 그럴 확률이 더 많을지라도 

간절하게 답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기에.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걸 기다리고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 후 서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게 되면 또 면접 합격을 기다려야 하고… 


이쯤 되면 취준생은 기다림을 통해 인내심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주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은 무슨. 


인내심은 맛집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티켓팅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우고 있는걸요. 

맛집은 기다리면 뭘 먹을 수라도 있지…흑흑.


하루 종일 감감 무소식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합격자 발표가 왔는지 메일을 무한 새로고침하고,  

답답한 마음에 먼저 전화해볼까 말까 망설이고, 

누구를 만나도, 어떤 일을 해도 그 생각뿐인 날들. 

특히 정말 가고 싶은 회사의 연락을 기다릴 때에는 말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왠지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심하게 긍정적이었다가도, 

금방 ‘아! 그 실수만 안했어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등등의 생각이 덮쳐오면 

극단적이고, 부정적이며 감정적인 인간으로 변신해 

눈물을 뚝뚝 흘리고, 한숨 폭폭 내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정말 내가 뭐하는 짓인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마련이다. 

너무 과장하는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 

나도 과장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유약하고 소심하며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는 나같은 사람은 

이 모든 과정이 참 견디기 힘들었었다. 


물론 15년이 지난 지금은 기다리지 않는 방법도, 

기다림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도 알게 됐지만, 

신입취준생때에는 당연히 기다림 자체가 고통스러웠었다. 

특히 합격자 발표가 가져다 주는 기다림은 또 여러 유형으로 

사람을 참 괴롭게도 치사하게도, 간절하게도 무력하게도 만든다는 것이 문젠데, 


우선, 가장 냉정한 듯 보이지만 가장 산뜻한, 개인적으로 내가 선호하는 유형이 바로 

‘당일에서 1일 이내 발표’다. 

주로 채용 절차가 짧고 규모가 작은 회사일 수록 이 유형이 많은데, 

얼마나 빠른가하면

면접을 보고 짐을 챙겨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온 후 바로, 

혹은 면접을 마친 후 밥을 먹으러 간  분식집에서 주문한 떡볶이가 나오기 직전,

탈탈 털린 면접에 참석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 조차도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칙칙하고 초췌해진 내 얼굴이 문에 비친 순간, 

면접을 본 다음 날 무언가 새로운 마음으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필요를 느끼며 

힘껏 애써서 긍정적인 기운을 내 자신에게 떠먹여주려는 바로 그 때.


합격 혹은 불합격 통보가 내게 도착한다. 


이런 유형의 좋은 점은 우선, 내 심장이 조여오는 듯 느껴지는 기다림의 순간, 

그러니까

초조하게 휴대폰을 바라보는 시간과 불편하게 밥을 먹고, 억지로 웃고, 일부러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노력들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이건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붙었을 경우에는 그 기쁨을, 

떨어졌을 경우에는 그 좌절을 어찌되었든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도 하고,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니 원망도 미련도 확실히 적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아주 간사해서, 빨리 발표나기를 바라긴했지만 

그래도 면접을 보고 나오자마자 발표를 한다는 건 이미 내정자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고, 

합격을 하게 되면 아니 이 회사는 어떻게 하루만에 직원을 뽑지, 이상한 곳 아닌가? 하는 또다른 의심을 한다. 게다가 정말 가고 싶었던 다른 회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도중, 

굳이 너무나 가고 싶지 않았던 회사의 발표가 더 빨리 나면 그것도 그것대로 

또 골치가 아프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나도 내게 말하게 되네. 그럼 어쩌라고! 

맞다. 이런 유형은 정말 고마운 ‘갑질’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묵묵부답 유형이 있으므로. 


서류 합격이야 사실 일일이 전화와 문자로 알리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고, 당연히 

그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면접에 참석했을 경우에는 

탈락하면 탈락했다, 합격하면 합격했다 

메일이나 전화, 혹은 문자로라도 알려주면 좋을텐데…

일일이 연락을 돌리기 힘들다면 홈페이지나 문자로 합격자 발표가 이미 완료되었고, 

당사자에게만 개별 연락이 갔다고만 안내해줘도 좋을 것 같다. 

아니 그것도 어렵다면 발표가 늦어도 언제까지는 날 예정이니 

 안에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면 불합격입니다. 라는 정도만이라도 언급해준다면…. 

대기업이야 채용 날짜가 명확히 정해져있고, 

지원한 사람들도 많아서 합격자발표를 놓칠 일은 없지만 

그 외의 회사들은 다르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한눈판 사이 걸려온 모르는 번호 하나에도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지. 

(대부분이 스팸전화여서 더 분노하게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커뮤니티 등에 “000회사 발표 났나요?" 라던지, 

"02-2014로 시작하는 번호 어딘지 아시는분~? 휴대폰 계속 들고 있다가 잠깐 딴짓했는데 전화가 와서 못받았어요 ㅠㅠ" 등등의 질문을 올려보지만 

회사가 작아서인지, 지원한 사람이 없어서인지 댓글은 달리지 않고, 

그 후 한 일주일쯤 더 지난 어느 날 

‘아, 거기 지지난 주에 연락 와서 제 친구 이미 다니고 있는데~’류의 댓글이 달리면 

그제서야 아 그랬구나.. 하며 단념하게 된다. 

(지나치지 않고 댓글을 달아 주셨던 고마운 분들 이 자리를 빌어 참 고맙습니다.)


그 중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아무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 똑같은 공고가 또 올라올 때다.

회사 입장에서는 마땅한 사람이 없어 다시 공고를 올리는 게 뭐가 이상할까 싶겠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뽑을 사람이 없었다는 언질정도라도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면접 당일에 면접을 마친 후 

상황이 가능하다면, 혹은 담당자분이 혹시 문의 할 것이 있는지 먼저 말해주신다면, 

합격발표가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물어본다. 

예전에는 이런 걸 물어본다고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소심해 조심스러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질문이 면접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면접자의 입장에서 합격자발표날짜를 물어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면접이 끝난 후 인사 담당자분에게 

"저..합격차 발표는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하면 약 60%정도는 대략의 일정을 

알려주시거나, 늦어도 언제까지는 발표할 계획이다까지는 말해주신다. 

그러니 혹시 묵묵부답 발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물어보자. 

이건 우리의 권리니까.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괴롭고 원망스러운 건 '장기전’유형.

15년 동안 내가 경험한 최장기전은 거의 두 달 동안 진행된 전형이었다.

(3번이나 면접을 보았으나 면접비도 없었기에 이렇게 더 화가 난 거 맞습니다.) 

처음 이력서를 넣고 사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었던 회사였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기업이었어서 더 그랬으리라.

인적성 검사를 보라는 서류합격 문자가 왔고, 

그 때부터 회사를 향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 전에 여러 번 묵묵부답 유형을 겪었던 나는 

인적성검사와 필기시험을 보고 나오며 발표날짜를 꼭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친절했던 담당자분께서는 

"한 이틀정도 걸릴 것 같아요~ 합격하신 분들은 전화로 연락해드리고, 

불합격하신 분들은 이메일로 연락드려요! 그리고 아마 발표 다음날이나 이틀뒤, 

그러니까 이번 주 안에 1차 면접이 있을 예정이예요”라고 답해주셨다. 


이틀이라면 정말 빠른데? 하고 아주 흡족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정확하게 발표날짜를 알려주는 회사라니 정말 좋은데?하고.


3일뒤, 연락이 왔다. 필기시험을 합격했으니 1차 면접에 참석하라고. 

문제는 1차 면접을 본 이후였다. 

1차 합격자 발표에는 약 3주가 걸렸다. 

합격자 발표에 얼마의 시간이 걸린다고 미리 알려준 건 아니었기에 

그 기다림의 시간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다른 곳의 면접도 보고, 친구들과 만나서 잠시 환기시켜보아도, 

합격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불합격에 대한 불안감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취업준비생 1년차였던 그때의 내게는, 

늘 습관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직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않던 그때의 내게는, 

지금은 금방 기다려지는 듯한 3주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메일을 확인하고, 

밖에 있을 때에는 그 당시 너무 비쌌던 휴대폰 무선데이터이용료를 써가며 모바일 메일확인을 이용했고

(네… 2009년에는 무선 와이파이 같은 건 없었답니다…이렇게 합격자 발표 보기가 힘들었어요 여러분!!?)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늘상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의욕도 없고, 

면접 때 내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면접관들의 표정은 어땠더라..하며 하루를 그 생각속에서 보내곤 했다.

다른 회사 면접에 가서도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고, 이력서도 잘 쓰지 못했다. 

게다가 그때는 요령도 없었으니 일정이 겹칠까 다른 곳에 지원하는 것도,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놓친 회사들도 있다. 

'마인드컨트롤'이란 단어를 아예 지워버리고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나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지치게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1차 면접 후 3주가 되던 날, 그러니까 서류 전형을 시작하고 1달이 다 되어 가던 날,  

난 다른 회사의 최종면접을 너무 망쳐 좌절이 극에 달해 있었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억지로 저녁을 먹다 습관처럼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1차면접합격] 메일이 와있는 것이 아닌가!!

콩닥콩닥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메일을 열어보니, 

1차 면접 합격 소식과 2차 면접일정이 도착해있었다. 

드디어 2차 면접이구나. 드디어 최종이구나. 

이제 정말 이 관문만 넘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힘들고 지쳤던 기다림의 시간은 내가 너무도 최선을 다해 견딘 보람 있는 시간들로 미화됐고.


2차 면접은 1:4의 경쟁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안 사실이지만 

이 직무에 400명이 지원했었고, 이 자리에 온 면접자들이 지금 100: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흠.. 나는 2.3:1이라는 삼성에서도 탈락했는데….불길하네….)

이렇게 두 달간의 전형이 모두 끝이 났다. 

그리고…

1차 면접 때 결과를 기다리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부담감과 두려움과 초조함을 안고 나는 

최종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붙으면 얼마나 행복할지, 떨어지면 얼마나 슬플지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언제나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것이 간절할 때에는 더더욱. 


2차 결과는 더 더디게 진행되었다. 

속으로 괜히 

'아니 4명중에 1명 뽑는 거면서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떨어지더라도 얼른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다가 

또 어느 순간은 '아냐 탈락자가 아닌 최종합격 예정자인 지금이 오히려 좋은걸지도 몰라'같은

하나도 도움되지 않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만약 불합격이라면… 아니 그런 결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발표가 최대한 늦게 났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게 2차 면접 후 3주가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2시간 만이라도, 억지로라도 다른 곳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영화라도 볼까 하고 

광화문으로 나간 어느 날, 

극장 앞 횡단보도에 서있다 무심코 휴대폰을 본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늘 무음으로 해 두는 휴대폰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누가 내 몸에 있는 ‘손떨림’스위치를 켠 듯 바로 벌벌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탈락.


탈락이었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힘들었던 과정들이 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으면 했는데,


또 다시. 탈락.




한 두 번 떨어진 것도 아니니까 웃어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두 달 동안 이 회사만을 생각하고 기다렸던 시간 속에서 아둥바둥했던 내 모습,

기약 없는 기다림이 준 피로와 좌절감, 

포기해야만 했던 다른 선택지들, 

결과에 따른 허탈함 등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마음을 준 시간이 길었던 만큼 빠르게 마음을 놓기가 어려웠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찌할 새도 없이 눈물이 마구 흘러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치 죄를 지은 사람 처럼 발걸음을 돌려 

근처 덕수궁으로 가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펑펑 울었다. 




취준생들은 매일 기다린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기다림, 

왜 나만 매번 기다려야 하냐고 투정부릴 수 없는 명백한 을의 기다림, 

시작도 끝도 모르는 기다림, 

그리고 그 기다림이 너무도 당연해진 습관성 기다림. 

이러한 기다림의 무게들을 매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니 회사들이여,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기다림의 부피를 줄여줄 순 없는지. 

그것도 안된다면 기다림의 기간을 약속해줄 순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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