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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Oct 26. 2024

#11. 취준일기_여름

번쩍 눈을 뜬다. 머리맡에 둔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본다. 

일곱시 반.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생각한다는 핑계로 잠깐 다시 눈을 감는다. 

그래 수요일. 

어제 늦게 잠든 데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는 잘못된 수면 습관 때문에 

새날을 맞이한 순간부터 몸이 무겁다. 

졸음을 이불처럼 덮는다. 

다시 눈을 찡그려 시계를 본다. 일곱시 삼십이분. 

그래 삼분 뒤에 일어나야지.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오늘 컨셉은 쉼이다! '

그러려면 우선 옷은 편하고 가볍게.

운동화나 편한 플랫을 신고 시원하고 간편한 반바지와 긴팔 티를 입어야겠다. 

여름에도 실내는 추우니까. 

어차피 땀으로 씻겨나갈테니 선크림에 비비만 살짝 바르고-

오늘은 날이 덥다고 하니 노트북은 어쩐다…. 

다시 시계를 본다. 일곱시 삼십오분.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더 지체하면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 나를 깨울 거야. 

그 전에 일어나자.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아 노트북에 대해 마저 생각해보기로 한다. 


'역시! 두고 가야겠다.' 

취업에 성공하면 노트북부터 가벼운걸로 바꾸고 말리라. 

한 여름에 충전기에 마우스에 이 두꺼운 노트북은 집을 나선지 5분 만에 나를 지치게 만드니까. 


'오늘은 도서관이다!'

드디어 몸을 일으켜 재빨리 씻는다. 

아까 무슨 옷을 입을지 정해두길 잘했어. 

마치 굉장히 치밀한 사람이 된 것처럼 뿌듯해하며 착착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아. 덥다. 


걸어서 40분 거리의 최애 도서관을 가려했었는데, 

가만보자.. 오늘이 네번째 수요일이네.

오늘은 휴관이다. 아고 장해라. 이렇게 빨리 생각해내다니. 

도서관 앞에가서 알았으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자화자찬도 잠시 아침은 조금 쌀쌀하겠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햇살이 뜨겁게 얼굴에 내리쬐고 

땀이 후두둑 맺힌다. 


으- 너무너무 덥다. 도저히 걸을 날씨가 아냐. 


지난번 상암동에서 홍대까지 걷고 피부가 다 뒤집어진 걸 기억해낸 나는 

바로 계획을 수정해 버스를 타기로 한다. 

이른시간에 나왔을 때에는 노선이 긴 버스를 타곤 한다. 

동네에서 제일 노선이 긴 버스는 143과 301. 

143은 출근 시간에 너무 사람이 많으므로 패스. 

그러므로 종점에서 탈 수 있어 자리가 늘 여유로운 301번 버스 당첨!  

텅텅 빈 새 차로 눈앞에 나타난 301번에 땀이 흐르는 얼굴은 금새 상쾌해진다. 


그래 우선 가락동까지 쭉 가보자. 출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니 1시간 20분 정도. 


이어폰을 끼고 아침 뉴스를 확인한 다음 나는 잠이 든다. 

대체 왜 이렇게 아침잠이 많은 건지 회사 다닐 때는 어땠는지

(어떠긴 뭘 어때 지하철이고 버스고 서서도 참 잘잤던 과거의 나…) 

아직 한 달 밖에 안 지났는데 아득해진 출근길을 떠올리며 나는 꿀잠에 든다. 


무의식 중에 깜짝 놀라 눈을 뜨면 동호대교 한 가운데. 


안심 하고 다시 눈을 뜨면 무역센터. 

아직 한참 남았네-하며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빈다. 


괜히 혹시나 전 직장 사람들이 탔을까 주위를 살피다 

지친 표정으로 졸고 있거나, 

복잡한 버스에서 위태롭게 휴대폰을 보며 서있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는 출근 직전의 사람들을 응시한다. 

안쓰러움과 부러움과 초조함이 내게 남은 잠을 가져간다. 

먹고 산다는 건 대체 뭘까? 나는 결국 어떤 삶을 원하는 건가? 생각에 잠기려다 고개를 젓는다. 


분명 잠을 깼다고 생각했는데, 석촌호수를 분명 봤는데 가락시장역을 지나고 있다 

황급히 벨을 누르고 후다닥 내려 더운 공기를 다시 마주한다. 

첫 회사가 있던 이 곳. 언제 와도 익숙한 이 곳의 풍경을 좀 더 보려고 

몇 년 전 그때처럼 출근하듯 동네를 한바퀴 돈다. 

자주 가던 카페가 아직 있음에 괜히 안도하고, 

이제는 다른 곳으로 떠난 회사 앞에서 예전처럼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어떤 시절의 내가 이 곳에서 매일 매일 머물렀었다는 사실이 아득하다. 

예전처럼 근처 베이커리에서 아침을 먹을까 하다가 

버스카드 환승 시간인 30분이 지나기 전 도서관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오전에 이력서를 써 놓아야 오후에 마음이 편하고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다는 마음이 드니까. 


오늘은 4시간 동안 아주 빠른 컴퓨터를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결정.

다른 곳보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보니 갈 때마다 이용 방법이 조금씩 헷갈린다. 

회원카드를 꺼내고 가방에서 볼펜과 휴대폰만 꺼낸 뒤 가방을 사물함에 맡기고 디지털열람실로 간다. 


그래 오늘도 한번 외쳐본다. 파이팅!팅!팅……


미리 예약한 자리에 앉은 뒤 외장하드를 꽂고 먼저 오늘의 뉴스를 본다. 

뉴스 브리핑이 끝나면 30분이 훌쩍.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남은 시간을 보니 괜히 초조해진다. 

얼른 채용사이트에 접속해 숙달된 손놀림으로 

경력직 1-3년차, 서울, 연봉 0000이상, 날짜는 어제부터 오늘까지를 재빠르게 선택해 상세검색을 누른다. 

쫘르륵 뜨는 채용 공고들. 하루 사이에 또 꽤 공고가 쌓였다. 

리스트를 훑어본 뒤, 자세히 보고 싶은 공고들은 새창에 띄워두는데 그때! 앗 전화가 온다. 

어디지? 모르는 번혼데….02)로 시작하니까 받아야겠지?

이 곳은 전화를 받으려면 아예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전화가 끊길까 종종 걸음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 순간! 


‘반갑습니다 고객님~’ 


에잇! 

정말…. 신경질이 난다! 

괜히 혼자 씩씩대며 자리로 돌아와 마우스를 잡으려는데 다시 전화가 온다.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 얼른 다시 밖으로 나간다. 

옆 자리에 앉은 이용자분이 자꾸 왔다갔다하는 내게 시선을 던진다. 

시선을 느낀 나는 발끝을 세워 종종 걸음으로 얼른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여기 입사지원하신 000인데요~’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얼른 회사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내 지원내역을 뒤진다. 

분명 회사 이름을 말해주셨으나, 열람실 바깥은 시끄러웠고, 

전화 속 목소리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잘 듣지 못했다. 

네. 그러니까 한마디로 면접에 가겠다고 했으나 회사명을 모르네요…..? 

비슷한 발음을 되뇌어 보며 입사지원 내역을 확인한다. 


오! 찾았다! 다행이다. 

포털과 취업 사이트에 회사의 이름을 검색해보고, 

공고도 다시 읽어보고 

면접을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 면접을 가기로 결정했다. 


자.이제 정말 이력서를 써야해! 


오늘 써야할 채용 공고들을 띄우고 하나하나씩 작성해본다. 

이제는 너무 손에 익어 툭툭툭툭 클릭 몇 번에 다섯 군데에 입사지원을 완료했다. 

아 여기 온 또 다른 이유를 잊고 있었다 했는데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출력! 

그러다 갑자기 다시 (연예)뉴스를 확인하는 나의 알고리즘은 대체 무엇인가…


헉 어느새 시간이 20분 남았다. 

우선 얼른 최대한 빨리 이력서를 접수하고 아직 못한 곳은 리스트를 정리한다.                

그 와중에 오늘 점심은 런치 메뉴가 유명하다는 브런치 가게로 정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니 한창 붐비는 점심시간이 끝나는 때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 이런게 백수의 좋은 점이지. 

가성비 좋은 메뉴들을 사람이 붐비지 않는 시간에 웨이팅을 최소화하며 먹을 수 있다는 것. 

혼밥 자체는 아주 편하고 좋은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먹고 싶은 메뉴 중에 꼭 하나만 시켜야 한다는 것… 

식당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보니 먹고 싶은 메뉴가 5개…. 

고심끝에 골라 주문을 하고, 

열심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1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 여기 어디야?/

담에 같이 오쟈/ 

부럽부럽 / 

일 많아? 젤 졸릴 시간이니까 좀만 버텨!/ 

응 ㅠㅠ/ 

아 이번주에 시간 될 때 점심 먹으러와!/ 

오케! / 

금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밀린 SNS를 복습해본다. 


뻔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리고 많이 나아졌지만, 

SNS를 보면 어쩐지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왜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은데 

나는 또 이렇게 대체 몇 번째 방황을 반복 또 반복 하는건지. 

잠시 침울해지려던 순간 시럽이 잔뜩 올라간 팬케이크가 나왔다. 


그래 일단 먹고 생각해보자. 

이번주의 사치는 너로 정했다. 


어느새 오후2시다. 지하철역에 연결되어 있는 서점으로 향하다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백화점에서 회원들에게 준 쿠폰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백화점 지하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어플에 들어간다. 

오! 찾았다! 

공짜로 마시는 커피는 어쩐지 더 맛있다. 

커피를 마시며 절대 살 건 아니지만 마치 살 것 같은 마인드를 장착한 뒤 

백화점 2층부터 8층까지 죽 돌아본다. 

커피를 마신 뒤 원래 목적지였던 서점으로 향한다. 

백화점 지하에서 서점으로 가는 동안 가장 주의해야 할 건 

1+1이나, 1만원대에 귀여운 맨투맨이나 티셔츠를 파는 행사장이나 혹은

반짝반짝 빛을 내는 수많은 디저트들.


오늘은 절대 들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눈을 질끈 감고 서점으로 들어간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들어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중간 중간 서류 불합격, 면접 불합격 등의 문자를 확인했고, 

마음이 잠깐씩 덜컹 했으나 책을 계속 읽었다. 


아무래도 걸어야겠다. 

여기서 집까지 걸을 수는 없으니 3호선을 타고 안국역까지 간 뒤 거기서부터 걸어야지. 

퇴근 시간 직전이라 아직은 지하철에 자리가 좀 있었다. 

가는 동안 다음주에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한 회사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캡쳐해두고, 메일을 확인한다. 

발표를 기다리는 회사가 하나 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며칠째 그 연락을 기다리느라 자꾸만 잠을 설치고 마음이 흔들거렸다.

마음을 비우자고 되뇌며 안국역에서 내린다. 

살짝 누그러진 더위가 반갑다.


근처 회사에서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의 어깨를, 가방을 스치며, 내 오늘에 대해 생각해본다. 

읽고 싶었던 책과, 먹고 싶었던 브런치로 내가 좋아하는 걸 채웠고, 

취준의 본분인 입사지원도 놓지 않았으니 


또 내일은 좀 더 기운을 차려서

부질없게 느껴질지라도

오늘 하루 거른 한국사 시험 강의를 듣고, 

새로운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의 기회를 준 회사에 대해 공부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렇게 또 이 뜨겁고 종종 서럽지만 가끔 즐겁기도 한 나의 시간을 잘 붙들어야지. 

취준의 여름 하루가 또 이렇게 가고 오는 어느 여름밤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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