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loco Nov 21. 2021

13주 6일. 기쁨이 기쁨이기까지.

나의 보람과 우리의 기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2주일이 조금 넘었어. 아마도 너는 기쁨아, 너는 세상에 태어나면 게으른 사람 중에 가장 부지런한 아빠를 만나게 될 거야. 오늘도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쓰레기를 버리러 네 번이나 나갔고, 약속을 나가기 전에 분리수거도 했고 점심 저녁 두 번의 식사도 준비하고…. ‘어떻게 게으른 사람이 이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나라는, 아빠일 거야. 그게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는 우리 만나서 차차 알아가 보도록 하자.


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했지. 왜냐하면, 이번에도 엄청 좋은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거든. 지난 글에선 아기를 가질지 말지 고민했다고 하는 걸 써놓고선. 지난번에 투닥투다닥 키보드를 두드리고 화면에 올라가는 글자를 보며, 사실 조금 마음에 걸렸거든. 나중에, 아주 나중에 네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과연 얼마만큼 이해하게 될까. 그저 속상한 마음을 갖게 되진 않을까 하고. 다만, 조금의 바람이 있다면, 그게 나를 얼마나 이해해주길 바라- 가 아니라. 너도 그만큼의 누군가를 옆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게으른데 부지런한 나처럼.


우리에게 너는 기쁨이야. 지금 너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고민 중이거든. 고민을 하고 있긴 하는 걸까 하는 정도로만. 이것은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야. 아직 너의 성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거든. 물론, 지난번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생각보다 너무 빨리 알려주긴 하셨는데 (넌 딸이래!) 아직 바뀔 수도 있다고 그래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우린 중성적인 이름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래도. 6:4 정도의 비율로 성별의 느낌이 좀 들어가면 어떨까…. 절대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야. 정말로. 큰 틀에서 원칙은 세워두고 있어. 우리가 짓는다. 괜찮다면, 나와 보람의 성을 따온다.


그렇지만 아직까진, 기쁨이야. 나의 보람과 우리의 기쁨이지. 네가 세상에서 긴 호흡을 터뜨리기 전까지 불릴, 태명. 정말 기쁘고 소중한 이름. 그러나 우리는 나와 보람이는 이 태명을 빠르게 짓지 못했어.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의 확신이 들었을 때, 그리고 그게 단단한 마음이 되었을 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지었어. 게으르지 않았고 많이 조심스러웠어. 후보로는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무언가가 있었는데 너무 무시해버려서… 기억도 잘 안 나네. 그러다가 결심했지. 너는 우리의 기쁨이니까.


힘든 봄이었어.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던. 태어나 한 번도 감당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 생겨나던. 그중에 하나였어. 기대했던 만큼의 우리에게 소식이 찾아왔고, 그만큼 기뻐하기도 전에 잃어버렸거든. 6주. 누군가에겐 한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에겐 처음이었고 우리에겐 설렜던 시간이었고, 우리에겐, 우리에겐.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는 애착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지. 이름을 부르고 나서는 더욱더 소중해진다는 것도 알았지. 그리고 그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상실의 아픔을, 부둥켜 울고 울었던 몇 날 며칠의 밤을 보내게 되었어.


그래서, 였나봐. 여름에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나는 네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거든. 정말, 알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 확신이 없고 이유가 없다면,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나의 보람에게 확인을 해보라고 그랬거든. 그래서 너를, 만났지. 만나게 되었지. 그리고 그만큼 무서웠어. 정말 좋았고 정말 무서웠어. 우리는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똑같은 행복함과 똑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거야. 아니다. 나보단 나의 보람이 더욱더, 그랬을 거야. 얼마만큼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그리고 나는 떠올렸지. 부둥켜 울었던 어느 날의 다짐을.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지 않게 하겠다고. 내가 꼭 그러하겠다고 이야기했던 밤을.


무서웠어. 병원을 갈 때마다 서로 예민해져서 상대의 마음을 괜히 할퀴기도 했어. 너를 만나러 가는 가장 좋고, 행복하고, 즐거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아이를 잃은 뒤에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회복을 하는지. 몸과 마음이. 그다음이 어떠한지. 처음인데 처음이 아닌 경험이 되어버려서 더 혼란스럽고 더 걱정스럽고 그러한데. 좋지 않은 일이라 대부분은 쉬쉬하고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 잘못이 아닌데.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픈 사람만 있고 힘든 사람만 있고 나아지는 방법을 아무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어. 그저 둘이 부둥켜 일어나기만 하라는 듯이. 그래서 생각보다, 정말 많이 힘들었어. 기쁨이 네가, 우리에게 확신을 주기 전까지.


주저했어. 이름을 부르고 또 잃어버리게 될까봐. 그게 너무 무서웠어. 자꾸 만나지도 않은 너에게 사과부터 하게 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꽤나 겁쟁이거든. 무섭고 불편해서 바이킹도 롤러코스터도 잘 타지 않는 사람인데. 차라리 롤러코스터를(바이킹은 그래도 싫어.) 백 번은 더 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웠어. 그런데 어느 날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아니라, 너라면 얼마나 속상할까 라고. 아직 2센티미터도 되지 않을 너일 테지만. 무명씨라니. 아니었다면, 지난봄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구, 어떤 순간에도 가장 크게 이쁨을 받을, 기뻐할 존재였을 텐데. 텐데. 텐데. 그래, 그렇구나. 너는 우리에게 기쁨이었구나. 정말 말 그대로의 기쁨. 아주 소중한 기쁨.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지도 고민했어. 괜한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보람과 우리의 기쁨을 온전히 그리고 오롯이 함께, 느끼고 싶어. 그리고 이제 그때의 걱정보다 다음의 우리를, 보람과 기쁨과 함께 할 시간을 기다려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너가 딸이라니!) 처음엔 졸인 마음으로 가던 병원도 이제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고, 진료가 끝나고서도 따뜻한 저녁을 먹으면서 웃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게 되었어.


어떻게 불리게 될지 여전히, 모르지만 너는. 그래서 우리의 기쁨이야. 아주 소중한 기쁨.


고마워. 건강하게 만나자 우리.


정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