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잘 지내고 있니?
선생님들에게는 1년 중에 가장 더디게 가는 달이 3월인데 너희는 좀 어떠니? 선택 과목이 많아서 교실을 이리저리 바꿔 다니느라 정신이 없지?
여기 노르웨이 고등학교도 교과 선택제라서 졸업 학점을 채우는 방식인데, 한국이랑은 좀 달라. 대학처럼 9시에 첫 수업이 있으면 9시에 등교를 하고, 10시에 첫 수업이 있으면 10시에 학교를 가는 식이야. 대신 출결이나 학점 관리는 엄격해서 한국 학생들보다 책임감과 성실성이 훨씬 더 요구되는 거 같아.
노르웨이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의 고등학생들의 일과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
“하루에 7과목이요? “
“학교 끝나고 또 학원을 간다고요?"
한국 고등학교도 요즘에는 진짜 원하는 아이들만 보충 수업을 하고 야간자율학습(야자)도 하고 싶은 아이들만 하지. 그래도 결국 하교 후 너희가 가는 곳은 학원이나 스터디 카페잖아. 선생님은 학교 끝나고 운동하러 다니는 아이들이 참 좋아 보이더라. 하루 종일 네모난 교실 안에 있었는데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도 챙기면 좋잖아.
공부하고 운동하는 애들 빼면? 자유로운 영혼들!! 우리 반에도 방과 후에 시내를 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이 꽤 있었지. 지역 상권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해. 오늘은 어디 갔니? 피시방? 노래방 아니면 커피숍?
사실은.
며칠 전에 태권브이의 자퇴 소식을 들었어.(가명을 지을까 하다가 방금 막 만든 닉네임이야. 교실에서 발차기를 영상을 찍어서 보여줬던 게 생각나서....) 마지막 우리 종례 시간에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학교 밖의 새 출발을 응원하면서 박수를 쳐줬었는데…. 일반계고 고3 학생들이 가는 대학 위탁 교육이라는 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사실 힘든 과정이라서 걱정은 했지만 갑작스레 자퇴 소식을 들어서 마음이 무거웠어. 아주 빠른 결정을 내린 건 태권브이답다!
"선생님, 그냥 저 자퇴할래요."
작년에 태권브이가 이 말을 자주 했었지. 이 말은 누군가에게는 "학교 밖에서 알아서 잘 살게요"라는 의미이고 누군가에게는 "저 제 인생이 걱정되거든요. 도와주세요."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코로나 시국에 공부에 깊은 뜻이 있는 아이들은 시간 낭비하지 않고, 수능에 집중하겠다는 마음으로 자퇴를 선택하기도 했잖아. 한편으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고등학교 검정고시 후다닥 합격하고 수능 공부에만 매진하면 되니까.
하지만 "저 제 인생이 걱정되거든요. 도와주세요."라는 마음이 1%라도 있는 아이들이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라고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그 아이를 최대한 학교에 붙잡아 두고 싶어.
"자퇴? 해도 괜찮아. 하지만 준비를 하고 나가. 지금은 아니야."
"선생님, 그냥 저 자퇴할래요."
"그래, 자퇴하고 뭐 할 건지 이야기해 봐. 뭘 정해야 자퇴를 하지."
선생님이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 대해서 말했었나? 열두 반이 입학해서 2학년은 열 한 반, 3학년은 열반. 매년 한 반 정도의 아이들이 자퇴를 했어. 학교에서는 학칙에 따라 불량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도 그때는 학교를 잘 다니는 성실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공부 안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자퇴는 하는 것 맞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하지만
'그 아이가 자퇴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 걱정해 준 적 어른이 주변에 있었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준비를 시켜주는 어른이, 사회제도가 있었나?'
'나는 담임으로서 자퇴서를 받으면서 그 아이의 미래,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의 삶을 걱정을 했던가?'
'학부모님도 자포자기해서 자퇴서에 서명을 해주신 건 아닐까?'
'"자퇴할게요"가 "도와주세요."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교무실 문을 열고 '선생님, 배고파요' 아니면 '선생님, 배 아파요.'를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하던 태권브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그 말이 “선생님 저를 좀 챙겨주시겠어요? 걱정해 주시겠어요?”로 들렸어. 교무실에 나타나지 않으면 기다려지기도 했어.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도 “오늘은 태권브이가 안 오네요!”라고 하셨으니까.
태권브이가 이 편지를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짧게 이야기할게.
"선생님이 작년 일 년 동안 너를 학교에 붙잡고 있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에 너를 걱정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고, 너를 응원하는 같은 반 친구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어서였어. 그러니 방황은 짧게 정신은 되도록 빨리 차리자. 친구 따라 나쁜 짓은 하면 안 된다. 때로는 친구와 거리를 두고 네 인생을 챙겨야 할 때도 있어.
너에게 주어진 학교 밖의 시간이 어떻게 채워져 가고 있는지 가끔 알려줄래? 카톡이니까 시차는 고려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은 앞으로도 계속 너를 걱정하는 어른이 되어줄게."
그리고 태권브이를 포함한, 방과 후 시내를 방랑하는 방랑자들 보아라.
"너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니?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을 너희의 인생이야! 환경이나 과거에 대한 핑계를 댈 필요는 없어. 지금부터 네가 바꾸면 되니까."
어제 같은 오늘이 아쉽다면, 오늘부터 다르게 살아보자.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잘 살아보자. 선생님도 지구 반대편에서 그렇게 살아볼게.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