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란 무엇인가

1년에 한 글자

by 주홍은하수

1월 말이 되었습니다. 1년 간의 목표에 대한 MBO를 비롯해 각자의 방식으로 지표를 설정하거나, 이미 설정을 마무리하였겠지요. 조직에서 목표를 세웠다는 것은 곧 그것을 기준한 평가 작업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회사원인 저는 올해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서 실적을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좋은 실적 = 좋은 평가’ 당연하고 객관적인 평가방법 아니겠어요? 그런데 제가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바, 실제 현장에서의 평가작업은 그렇게 깔끔하고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복잡한 고민을 해야 하는 과정이었죠. 그 부분을 몇 가지 써보고자 합니다.




실적의 객관적 정량화의 불가능성


제가 팀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평가 시즌이 되어서 평가를 준다고 생각해봅시다. 저는 가장 단순하게 보았을 때 아래의 두 Task를 해야 합니다.

1) 각 팀원들이 수립한 목표에 대해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여부를 따져야 합니다.

2) (상대평가라면) 이후, 여러 팀원들을 서로 비교하여 순위를 매깁니다.


그리고 저는 1)의 Task부터 ‘목표의 난이도’라는 큰 난관에 부딪치고 맙니다. A 팀원이 올해 목표를 초과 달성해내었습니다. 이 팀원은 잘한 것일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목표를 교묘하게 낮춰 잡은 것일까요? B팀원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팀원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하필 올해 벌어진 우연한 이벤트 때문에 수많은 밤샘 작업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었을까요? 평가에 이런 것들까지 고려하는 것이 맞을까요?


곁에서 본 바, 많은 팀장님들이 평가를 할 때 정황 또는 외부요인을 고려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이치에 닿습니다. 문제는 외부요인을 어디까지 반영하여야 하는가이지요. 너무 외부요인을 많이 반영한다면, 팀원들은 실적보다 변명의 달인이 될 것입니다. 외부요인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직 문서상의 목표만으로 평가한다면 팀원들은 쉬운 목표를 어렵게 보이게 교묘히 다듬는 문장가가 될 것입니다.


결국 가운데 어디쯤 인가로 외부요인 개입 수준을 결정해야 되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고려해야 할 항목 및 각 항목에 대해 몇 점씩 점수를 주어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이게 가치판단의 영역이라 의견이 합치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길고 지루한 논쟁이 벌어질지 상상도 안되네요.


총 150점 만점
실적 100점
업무 난이도 추가 점수 -10점 ~ 10점
고생 많이함 추가 점수 -20점 ~ 20점
자원 투입량 추가 점수 -10점 ~ 20점

[앞으로 평가를 이렇게 한다 할 때 벌어질 일을 고민해보자]


길고 지루한 논쟁을 어떻게든 끝내고 실제 실행 단계에 들어간다 생각해봅시다. 이게 처음 우리가 생각하던 방식대로 작동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것은 가치판단의 영역입니다. 정량적인 수치로 만들었지만 점수를 어떻게 주든 그것은 전적으로 팀장의 마음이지요. 제가 나쁜 팀장이라면, 사실상 실적을 무력화하고 평가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수단을 하나 제공받은 셈입니다. 또는 제가 소심한 팀원이라면 나의 팀장이 실적과 무관히 자기와 친한 순서대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의심 거리를 하나 제공받은 셈이죠. 이 의심을 어떻게 무마해야 합니까.


추가 점수를 어떤 경우에 몇 점을 주면 되는지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공하면 되지 않겠냐고요? 음.. 그 가이드라인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등장할 것이고.. 그걸 메우기 위한 작업을 하고 또 하고.. 그러다 보면 복잡해진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평가하는 팀장이 등장할 것이고, 이걸 고발하는 팀원도 한 둘 나올 것이고.. 저는 여기서 도망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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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적이고 반박 불가한 완벽한 평가가 가능하다면 제가 이런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었겠습니까]
[저는 이 책의 저자 및 출판사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평가 게임


제가 알기로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상대평가 제도를 쓰는 것으로 압니다. 팀 내 A/B/C의 T.O가 지정되어 있고 이것을 분배하는 것이죠. 과거 GE의 경우 2:7:1의 비율로 A/B/C를 나누었다고 들었고, 국내 상대평가를 쓰는 다른 회사들도 아마 대동소이한 비율을 쓸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평가란 A와 C라고 하는 자원을 팀원 중 누구에게 주는가 하는 게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각 팀원들의 “1년 실적”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변수 중 하나에 불과하며, 사실 가장 중요한 변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현실적인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EX1) 정년을 2~3년 남긴 김 부장님이 있으십니다. 부장님은 너무나 훌륭하게도 정년이 얼마 안 남았음에도 팀과 회사에 애정이 남아있어 헌신적으로 업무를 보시고, 넓은 인맥으로 어려운 일도 잘 처리해주시지요. 평가 시즌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팀장이라면 이 분에게 A를 주시겠습니까?


EX2) 박 과장은 우리 팀에 온 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분명히 팀에 처음 왔던 당시에는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성과도 내던 사람이었습니다만, 불운한 사건으로 인한 업무 실패 이후 자신감을 많이 잃은 모습입니다. 올해도 남들 하는 정도로만 겨우 실적을 내었습니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다면 팀 내 에이스가 될 수 있는 포텐셜은 여전히 있습니다. 뚜렷하게 대단한 실적을 낸 팀원이 없는 올해, 당신이 팀장이라면 박 과장에게 무슨 평가를 주겠습니까?


EX1)은 평가가 과거가 아닌 미래 투자에 대한 관점으로 결정되는 상황입니다. 단순히 평가가 1년간의 실적을 바탕으로 한다면, 당연히 김 부장님한테 A를 주는 것이 논리 흐름상 당연하지요. 하지만 상대평가의 회사에서 A는 희소가치가 높은 자원이고, 그 자원을 부여받은 사람은 이후 승진, 교육 등 많은 인사적 논의에서 우선권을 가집니다. 그런 소중한 자원을 몇 년 내 퇴직이 확정된 분한테 소모할까요?


EX2)는 평가가 팀원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상황입니다. 개개인의 정량적인 평가가 어렵고 이로 인해 팀원 간 비교 평가도 명료하게 나오기 힘들다면, 평가는 실적에 근거한 프로세스가 아닌 평가로 인한 효과의 크기에 근거하게 되기 쉽습니다. 박 과장에게 A를 주면 어떻게 될까? 또는 윤 차장에게 A를 주면 어떻게 될까? 등등을 따져보고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사람에게 A를 주는 것이죠. 팀원들의 실적 점수 평가 결과 줄 수 있는 A는 하나뿐인데 상위권 그룹 간 미미한 차이밖에 없는 경우이거나, 작용한 외부요인이 너무 많아 이들을 다 고려하여 점수화하는 것이 인지적으로 피곤할 때 많은 팀장님들이 이러한 평가 방식을 사용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실적 점수를 매기는 과정이 단순한 요식행위 혹은 기결정 된 평가 결과에 끼워 맞추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건 글 맨 처음에도 제시되어있던 ‘좋은 실적 = 좋은 평가’라고 하는 우리의 믿음과는 이미 몇 광년쯤 멀리 떨어져 버린 내용이지요.


위 예시에는 ‘A’와 관련 있는 경우만 있습니다만, 현실에는 ‘C’도 있습니다. 엄정한 상대평가의 규칙에 의해 팀원 중 누군가는 C를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죠. 여기는 여기만의 드라마가 또 있습니다만.. 여기에 굳이 그 이야기까지 적지는 않겠습니다.


1년에 단 한 글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실적을 완벽히 정량화시켜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2. 실적만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로, ‘좋은 실적 = 좋은 평가’라는 명제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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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이야기는 실적과 평가가 별개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적을 X축으로 놓고 평가를 Y축으로 놓았을 때, R Square가 어떻게 해도 1.00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실적이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가변적이고 명료하지 않은데 반하여, 평가가 각 직장인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확실합니다. 다음 연도의 기본급 상승률, 다음 연도의 성과급 지급 수준이 기본적일 것이며, 교육, 승진, 직책 선임, 핵심인재 선정 등등에 있어서 필수적일 뿐 아니라 1차적인 허들로 작동합니다. 이렇게 제도가 디자인되어있는 것은 ‘좋은 인재에게 좋은 기회를 부여하며, 좋은 인재란 곧 평가 점수가 높은 인재다’라는 사항을 대전제로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앞서서 보았지요.


평가 점수와 실력이 일치하지 않음은 사실 많은 연구에서 지적되는 사항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상대평가가 문제니 절대평가로 바꾸자! 1년에 한 번 밖에 하지 않음이 문제이니 여러 번에 나누어 하자! MBO가 뭐냐, OKR로 바꾸자! 팀장 홀로 평가하게 하지 말고 팀원 여럿이서 다면적인 평가를 하게 하자! 점수 매기기가 아니라 개개인의 역량 향상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만들자!


각각의 장단점과 가치에 대해서는 여러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그것에 대해 일일이 분석하여 적용 가능성을 재보는 재주는 저에게 없으니까요.


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람 하나에 A/B/C 하나만 주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의미 부여하는 것은 너무 박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1년 동안 조직을 위해 기여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최소 5개에서 10개 항목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중에는 등급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주관식도 필요할 겁니다. 해온 일의 개요와 실행 전반에 걸쳐 남겨둘 만한 코멘트나 상세 사항 등등이 적혀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HR적으로 유용할 겁니다. 이 자료가 당사자에게 공유된다면, 개인의 피드백으로도 요긴할 겁니다. 예를 들어 진급 심사를 한다고 할 때에도, 팀 이동을 한다 할 때에도 창백한 ABC와 점수보다는 보다 생동감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겁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저는 이게 1년간 같이 업무를 수행해 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의 표현이자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카우팅 리포트 수준은 바라지도 않고, 최소한 제품의 QA검사 Spec만큼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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