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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seng Oct 30. 2022

포르투갈에선 뭘 가져와야 잘 가져왔다고 소문이 날까

9일 차, 리스본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상, 성남. 2022/10/30


결국엔 끝나는 것이 여행이다. 비행 일정을 포함한 10일 남짓한 짧은 여행에도,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부모님을 따라나선 첫 해외여행은 4박 5일조차 길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10일도 찰나다.


3일까진 괜찮대요.  같이 한국으로 가요. 나타, 리스본. 2022/10/08



여행을 추천하는 좋은 방법은 선물을 하는 것이다. 여행을 추억하는 좋은 방법도 기념품을 남겨오는 것이다. 이동 중 짐을 줄이려면 마지막 일정에 선물과 기념품을 몰아 사는 것이 좋다. 하지만 여행 중엔 선물 사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많고, 결국 마지막에 쫓기듯 선물을 사게 마련이다. 라고스 일정을 끝내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 기념품을 무엇을 사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Encaixado 골목, 포르투. 2022/10/02


포르투갈의 거리가 화려하지는 않다. 북적거릴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분하다. 옅은 빛 벽에 붉은 지붕, 회갈색의 길, 심플한 네온사인. 서울에 비하면 한참 톤 다운된 분위기다. 이 도시들을 생기 있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거리를 채우는 사람들이다.


기념품 가게, 리스본. 2022/10/09


그런데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온갖 상품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눈에 띄길 기다린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진열된 상품들의 디자인을 두고 감탄을 하다, 아내에게 물었다. 포르투갈의 디자인 역량이 국제적으로 유명하지 않을까, 아마도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찬란한 결과물이 아닐까, 혹은 낯섦이 이방인에게 주는 일종의 착시 같은 것일까. 찾아주기 전까지는, 속내를 알아봐 주기 전까지는 굳이 내어 자랑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의 미덕일까.


Mundo Fantástico da Sardinha Portuguesa, 포르투. 2022/10/03 


포르투에서 방문했던 한 기념품 가게는 놀이공원 테마로 꾸며져 있다. 각종 생선 통조림을 취급하는 곳이다. 다채로운 색감의 통조림들이 오와 열을 맞춰 진열되어 있다. 생산연도가 찍힌 통조림은, 탄생연도가 같은 고객의 선택을 기다린다. 과한 호객행위나 구매 요구는 없다. 그저 이 공원을 즐길 수 있도록 적절히 필요한 안내를 할 뿐이다.


정어리 통조림, 포르투. 2022/10/03


예쁜 치약과 핸드크림은 이미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쿠토다. 포르투갈의 국민치약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제품에 비해서 포장이 압도적으로 눈을 끈다. 정어리 통조림과 쿠토 치약을 함께 진열해 둔 가게들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내 눈에는 이곳이 팝아트 박물관이다.


볼량마켓 통조림가게, 포르투. 2022/10/01


이 나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아줄레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견해를 보태곤 한다. 광택을 낸 돌멩이란 뜻의 아랍어 Zellij에서 Azulejo라는 어휘가 유래되었다. 이 나라를 지배했던 무어인이 직접 이 땅에 남긴 유산은 아니고, 무어인이 떠난 이후 즉위한 마누엘 1세가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하고 이끈 유행이다.


아줄레주 플래터, 성남. 2022/10/30


흔한 기념품인 도마, 플래터에도 아줄레주가 담기면 눈길을 끈다. 도우루 강변에는 도기, 손수건, 열쇠고리 등의 기념품을 파는 벼룩시장이 매일 열린다. 정어리가 주렁주렁 묶인 모양의 냄비받침과 아줄레주가 박힌 플래터를 골랐다. 영어가 어려운 아저씨가 플래터는 치즈를 올리는 용도로 쓰라고,  눈으로 손으로 열심히도 설명해 주었다.


곳간이 풍성, 성남. 2022/10/10


가장 시간과 공을 들인 것은 역시 와인이다. 리스본 파스타집을 처음 방문했던 날, 빈센트의 와인 리스트를 칭찬 한마디로 얻어왔다. 그가 손님들에게 선보이려고 몇 년간 고민하고 정성을 들였을 리스트였다. 2016년, 17년, 19년 포도 작황이 좋으니 라벨을 잘 살펴보라는 비밀 팁도 얻었다.


빈센트에게 선물한 꽃, 리스본. 2022/10/08


빈센트가 건네준 것은 또 있었다. 그가 집에서 요리를 할 때 쓰려고 샀다는 올리브 오일이다. 와인을 사고 나서는 좋은 올리브 오일을 사고 싶은데, 어떤 올리브유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대답 대신 건네 준 올리브 오일이었다. 아마 시장에서 팔지 않을 거라고, 집에서 가져다줄 테니 귀국 전에 반드시 가게에 한번 더 들러달라고 했다. 시장에서 꽃 한 송이를 사서 그에게 쓴 편지와 함께 건네주고, 올리브유를 받아왔다. 포르투갈이 그리워 견디지 못할 어느 날, 꺼내 써야겠다.



포르투갈에서 사 온 기념품들, 성남. 2022/10/30


그 멀리까지 가서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만 그렇게 오래가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각 도시에서 하루씩을 덜 머물더라도, 바르셀로나나 그라나다는 가야 하지 않을까 망설이기도 했다. 장고 끝에 호수를 뒀다. 짧기만 했던 일정에서 그 어떤 하루도 그 어떤 경험과 만남도 빠뜨릴 순 없을 것 같다.


빈센트의 올리브 오일, 성남. 2022/10/30


우리는 무엇을 남겨왔을까. 정어리 모양의 냄비 받침에는 해물밥을 올리겠다. 아줄레주 플레터에 치즈를 올려 도우루 포트를 즐기겠다. TV에는 포르투갈을 띄우고 둘이서 밤늦게까지 추억을 이야기하겠다. 이 여행 끝에 생긴 도우루 와인 라벨을 고를 수 있는 눈, 영국을 여행하게 된다면 꼭 알릴 제프와 다이앤의 연락처, 빈센트가 소중히 챙겨준 비법 올리브 오일까지. 나는 굳이 내어 보이고 자랑하겠다.


포르투갈 한 상 차림@우리집, 성남.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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