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라고스
비행 편을 구매한 것이 올해 4월, 그리곤 라고스 숙소를 5월에 덜컥 예약해버렸다. 한동안 후회를 했다. 이 나라의 기후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달랑 사진 하나만 보고선, 숙소를 예약했다.
천만다행이다. 라고스에 머무는 3일 동안, 아침에는 상쾌하고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한낮에는 수영장에 뛰어들 수 있을 만큼 따가운 햇살에 한 두 방울 땀이 흐르기도 했다.
선베드에 드러누워 슈퍼복을 마셨다. 포르투갈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맥주가 별로라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와인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올리브와 포도가 자라는 아름다운 “지중해성 기후”를 찬미했다.
10월 초의 포르투갈 날씨가 늘 이렇진 않단다. 예년 같으면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어, 기온이 내려가고 비가 잦아진다고 한다. 포르투갈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 그래서 수많은 유럽인들이 라고스를 찾아오는 성수기도 6월부터 9월까지라고 한다.
성수기 알가르브 지방은 숙소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포르투갈의 바다는 지중해보다는 대서양과 닿아 있고, 4계절 내내 비교적 물이 차가운 편이다. 그러나 이 시기만큼은 평균기온은 25도 안팎을 오가고, 바닷물도 덩달아 따뜻해진다. 라고스, 포르티망, 알부페이라, 파로와 같은 도시들에 유럽 전역의 여행객이 긴 바캉스를 즐기러 모여든다. 아직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다.
따뜻한 알가르브 해안에서는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많다. 줄지어선 기암과 괴석이 해변을 구역단위로 나누고, 이 구역을 아담한 프라이빗 백사장이 채운다. 해변에서는 태닝과 바다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은 물론이며, 스쿠버다이빙과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 유명한 것이 카약킹이다. 여행에 알가르브 일정을 기어이 넣은 것도 베나길 카약투어 때문이기도 했다. 항해왕자가 내려다보던 바다 위에서 머리 위로 쏟아지는 마법 같은 햇살을 맞으리, 기대했다. 15세기 항해왕자 엔리케가 서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하고자 기지와 학교를 세운 곳이 알가르브의 사그레스다. 세상의 끝이라는 멋진 시구로 유명한 호카 곶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사그레스의 이야기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베나길도 사그레스도 방문하지 못했다. 라고스 외 알가르브 이곳저곳을 둘러볼 시간까지는 욕심내지 않았다. 라고스 앞바다도 훌륭한 대안이었다. 이 바다 마을에서 낮을 여름처럼 보내고, 저녁을 가을처럼 맞았다. 절벽에 걸터앉아, 두어 시간 동안 노을만 바라보며 두 시간을 사치스럽게 보냈다.
라고스 어디서도 동양인이라고는 보지 못했는데, 이 낭떠러지 끝에서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사춘기 아이는 더 멋진 풍경에서 홀로 셀카를 남기러 어디론가 떠나고, 부부만이 남아 바다를 내다보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 둘도 맞이할 가을.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가을의 해를 사진에 담았다. 말을 걸고 사진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이 낭만을 깨고 싶지 않아 마음으로만 남겼다.
올해 라고스는 10월 초에도 늦여름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유럽을 강타한 폭염, Heat Wave 가 계절을 넘겨 이어진다. 예년 같으면, 젊은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은퇴를 한 여행객들이 남아 한산한 휴양지를 즐긴단다. 30년은 남았을 은퇴가 벌써 기다려진다.
이 마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더 많은데, 시간은 짧아 애타는 우리를 위해 숙소 호스트였던 리오나르도가 정성을 많이 들였다. 한국음악 팬인 여동생을 둔 라고스 청년 리오는 저녁 시간 담당자였다.
해가 지고 나면 호텔의 작은 바 테이블에 앉아, 얼마나 시간이 빠른지, 여행이 짧은지 리오에게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 리오는 맥주를 내어주며, 포르투갈의 역사와 라고스의 나날들을 이야기해 주며, 꼭 다시 오라고 달래주곤 했다.
카약킹 일정과 일몰 감상이 끝난 저녁, 리오가 남겨준 쪽지를 꺼냈다. 라고스 시내 중심가의 맛집, 멋진 바와 클럽이 빼곡히 적힌 소중한 쪽지였다. 리오가 가장 좋아한다는 클럽, Indigo를 들렀다. 클럽이라기엔 잔잔하고 소박한, 루프탑 펍이었다.
버킷리스트에 이비자를 담아 둔 뜨거운 20대 시절이 있었다. 이비자는 멀기도 너무 멀어, 서른을 먼저 와 버렸다. 적당히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청춘들이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그들만큼 즐겁지는 않았지만, 칵테일 한두 잔 정도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진 나이에 축배를 들었다.
슬슬 눈이 감겼다. 둠칫 거리는 연기도 더 이상 힘들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일어나자고 제안했다. 가벼워진 몸으로 돌아왔더니 아내에게 팔레스타인 청년 회계사 친구들이 생겨 있었다. 아내는 아직 젊고, 누가 봐도 생기가 넘치나 보다.
라고스를 떠난다. 여행이 중반을 넘어간다. 공항에 내리던 설렘과 뜨거움이 식어가지만, 괜찮다. 히트 웨이브의 잔열이 남은 여행의 후반도 여전히 따뜻하고 풍요로울 것만 같다. 결국엔 이비자를 가지 못한 채 식어버려 아쉬웠던 20대도, 괜찮다. 생기 발랄한 아내와 라고스를 즐길 수 있었던 30대로 달래 본다.
감사한 마음에 리오에게 한국에서 챙겨 온 컵라면을 건넸다. 자기가 먹지 않고, 여동생에게 선물했단다.
두고 온 마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