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 라고스
부산에서 경부 고속도로를 올려, 달리다 보면 신기한 표지판을 만나곤 한다. 언젠가 유럽 고속도로와 잇겠다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맹랑한 표지판. 분명 이 대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니, 아시안 하이웨이도 언젠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 그런 날엔, 부산에서 달리고 달려 끝에 닿을 곳이 포르투갈이다.
북부 포르투에서 남부 휴양지 라고스로 향하는 적절한 교통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차를 빌리기로 했다. 비용은 조금 더 들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고속도로를 달려본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선택인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꽤나 설레는 일정이었다.
아베이로, 코스타 노바, 사그레스 등의 여행지를 들르기에도 렌터카가 좋은 대안이었다. 차를 빌리면 길어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법한 작은 교외 마을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반나절은 써야 했다. 포르투를 출발해서 아베이로와 코스타 노바를 거쳐 라고스로 향하기로 했다. 라고스 일정 중 짬이 난다면 사그레스까지 금방 들러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렌터카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 신경 쓸 부분이 많았는데, 구글맵 하나면 내비게이션은 충분했다. 다만 앱이 과속단속 구간까지도 알려주는지는 확인하지 못해, 차량을 인도받고도 맘 한편에 불안함은 있었다. 길 위에 떨어지는 시간이 안타까운 여행자라, 기회만 나면 액셀을 밟아댔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카메라 한 대 보지 못했는데, 혹시 국제우편으로 독촉장이 날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포르투갈에는 고속도로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나마도 거의 편도 2차선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의 운전문화가 큰 몫을 했다.
이 길에서는 실천되는 양심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이상적인 표어에 가까운 2차선 주행, 1차선 추월. 해외여행에서 운전이 처음도 아닌데, 새삼 이질적인 풍경이다. 가급적 필요할 때만 1차선을 이용해 앞 차를 추월하고, 2차선으로 돌아가 속도를 줄인다. 정속 주행하는 이에게도, 추월이 필요한 이에게도 안전하면서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부러운 문화가 이 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은 대체로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교통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포르투의 구시가지는 여느 유럽 대도시와는 다르게 무계획적으로 지어져 있어, 차로를 건너야 할 경우가 더욱 잦았다. 그때마다 거의 모든 차량이 우리를 배려하여, 확실하고 안전하게 정차를 해주었다. 클락션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정차한 차를 바라보며 보행자들은 엄지를 올려주고, 운전자들도 엄지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표준.
물론, 수도 리스본에서도 이런 표준을 기대하기는 조금 어렵다. 우버, 택시, 화물차 기사들의 운전이 험한 것은 시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바쁘고 마음이 급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대도시의 얼굴이 도로 위에 드러난다.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다. 보행자로서도, 운전자로서도 도로 위에서의 피로도가 적어진다.
운전석에서 굳은 어깨가 펴질 즈음, 내가 이번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고 느꼈다. 아내에게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꼭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던 아내도 풍경에 빠지고, 나도 홀로 생각에 잠겼다.
오래지 않아 첫 문장도 생각해 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마주하는 푸른 숲과 붉은 흙을 보면, 포르투갈 국기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만 같다". 사실관계가 다 틀려, 실제로 글에 담지는 못했다. 여행기간 내내 담아온 문장이라 초고에까지 올렸다가 결국엔 지웠다. 내가 틀렸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우길 수는 없었다.
또 살다 보면, 내가 맞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일들도 생긴다. 누군가에게 운전을 가르칠 일이 생기면, 편도 2차선 고속도로에서 2차로는 주행차로이고 1차로가 추월차로라는 얘기부터 한다. 실전에선 늘 무안해지는 가르침이다. 그래도, 이건 내가 맞다니까, 국제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