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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seng Oct 19. 2022

덕분에 포르투갈 두 병 더 데려갑니다.

2일차, 포르투

이런 데서는 결코 취하지 않는다며 들이부을 때가 있다. 그중 으뜸가는 기억은 역시, 지리산 중턱에 있는 대학 선배의 고향집에서였다. 안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선한 공기와 푸른 경치와 잔잔한 계곡 소리가 너무 좋아서 취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많은 취한 날들 중에서도, 취하지 못했던 기억들은 각별하다.


셀라르두필라르 전망대, 포르투. 2022/10/03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 단 하루도 취하지 못했다. 이 착한 가격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과 이렇게도 훌륭한 와인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이른 점심부터 가볍게 시작하여 저녁엔 제법 묵직하게 와인을 즐겼지만 만취한 밤은 하루도 없었다. 살짝 붉어진 얼굴로 아내의 손을 잡고 매일 저녁을 거리로 나서, 대서양과 지중해에서부터 불어왔을 기분 좋은 바람을 맞았다.


동루이스 다리 야경, 포르투. 2022/10/03


포르투갈의 와인은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귀국 후 여러 마트를 헤집고 다녀도, 포르투갈 와인을 위한 별도의 코너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인접한 와인 명가의 와인들이 공급량과 인지도 면에서 국내 시장을 압도한다. 하지만, 포르투갈 역시도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생산을 해 온 전통적인 와인 산지이며, 지금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다.


도우루 와인, 포르투. 2022/10/02


특히, 도우루 지역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포트와인은 디저트와인의 대표 격으로 여겨진다. 포트와인은 이른바 주정강화라고 하는 주조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와인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하여, 대개의 와인보다 5도 이상 높은 도수의 와인으로 완성된다.


그라함스 와인 저장고, 포르투. 2022/10/03


중세 이후 영국은 프랑스와의 갈등이 발생하자, 와인 산지의 대안으로 포르투를 찾아왔다고 한다. 도우루 밸리의 레드 와인도 강을 따라 내려와, 포르투를 거쳐 런던으로 전해졌다. 이 운송과정에서 상품에 피치 못할 산패가 발생하는데, 브랜디를 섞어 변질을 막았다고 한다. 해상왕국 영국이 주류사에 남긴 것이 IPA 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와이너리 투어, 포르투. 2022/10/03


생산연도, 저장 방식, 포도의 품종에 따라 포트의 종류는 빈티지, 루비, 타우니, 화이트 등으로 나뉜다. 따라서 기존의 와인과 포르투갈 와인은 라벨을 읽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와인상식] 포르투갈 와인 라벨 읽기, wine21.com, 2020/05/15 


포트와인 테이스팅, 포르투. 2022/10/03


20도에 육박하는 포트와인은 디저트 와인이나, 나이트 캡으로도 딱이다. 흔히 먹던 와인보다 단맛이 강하지만, 높은 도수에서 비롯된 묵직함으로 밸런스를 잡는다. 달달한 맛으로 유명한 아이스와인보다는 외려 위스키를 떠올리는 것이 낫다. 저녁 식사 후, 한두 잔씩 홀짝이다 보면 이내 몸이 노곤해진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포르투. 2022/10/03


도우루 와인이 영국으로 먼 뱃길을 떠나기 전 들르는 곳이 있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우리 말로 치면 이름이 '가이아 신촌' 쯤 되는 마을이다. 포르투 도심과는 동 루이스 다리로 이어져 있다. 다리 상부로는 현대식 트램과 함께 행인이 지나다닐 수 있고, 하부로는 행인과 이륜차들이 다닌다.


가이아 쪽 동 루이스 다리, 포르투. 2022/10/03


상부는 포르투에서 가장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는 모로 정원과 전망대로 이어지고, 하부를 통하면 마을로 직행할 수 있다. 며칠을 포르투 도심을 관광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도, 저녁이 되면 늘 이 다리 곁에서 해넘이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모로 정원 피크닉, 포르투. 2022/10/03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는 많은 수의 와인 저장고가 있다. 포르투 도심에서 이 마을을 건너다 보면, 아기자기 한 마을 사이로, 지붕에 흰색 글씨로 이름이 크게 새겨진 건물들이 보인다. Graham’s, Sandeman, Taylors. 와이너리를 소유한 가문명이나 기업명이 새겨진 이 건물들 모두가 와인 저장고다.


킥보드 타고 올라갈 수 있었구나.., 포르투. 2022/10/03


대부분의 와인 저장고에서 와이너리 투어와 테이스팅 투어를 제공한다. 도우루 지역 와인에 대한 역사와 생산공정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는 충분히 돈 값하는 경험이다. 와이너리 투어 티켓에는 테이스팅 비용도 포함되어 있어 귀로 와인을 듣고, 입으로 맛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아는 만큼 맛있다.


레스토랑 vinum, 포르투. 2022/10/03


마을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시밍턴 가문의 Graham’s 포트 와인 저장고를 방문할 수 있다. 이 가문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60년 기념행사에도 사용되었다는 포트 와인 외에도 Dow’s, Quinta do Vesuvio 등의 와인을 생산한다. 저장고에는 포르투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어, 와인과 함께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굴국에서 왔지만 오이스터는 다르다구, 포르투. 2022/10/03


포르투갈에서는 매일 마시되, 취해서는 안된다. 평생 그리워 할 햇살과 바람, 경치와 음식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점심부터 취할 것 같으면, 상그리아로 리프레싱하는 것도 괜찮다. 레드 와인이 버겁다면, 화이트 와인도 좋다. 낮에는 한가한 거리에서, 저녁 무렵엔 벅찬 일몰을 앞에 두고, 밤에는 유쾌한 옆자리 여행객들과 함께. 놓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첫 점심식사의 화이트와인, 포르투. 2022/10/01.


여행 막바지에 리스본에서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4병 골라왔다. 포르투갈이 그리울 때 마다 아내와 한 병씩 꺼내기로 했는데, 벌써 두병을 꺼냈다. 리스본 한복판에서 면세 주류 한도가 인당 2병으로 풀렸다고 알려주신, 생면부지의 신혼부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인생 최고로 유익한 오지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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