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차, 리스본
여행 전 이 나라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 온 거리가 호날두 사진으로 덮여 있고, 축구 중계가 있는 날엔 모든 운전자들이 클락션을 울려 댈 것이라는 예상. 매우 외향적인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곤 “안녕하세요”, “꼬레아”, “마이 프렌드” 하며 호객행위를 할 것이라는 상상. 모두 처참히 틀렸다.
일정 후반에 접어들며, 포르투갈이 매우 편해졌다. 일정 내내 앞으로 둘러매던 가방을 이제는 옆으로도 뒤로도 들기도 했다. 여행에서 긴장을 풀면 안 되지 싶다가도, 이런 친절한 사람들이 내 뒤통수를 칠 것 같진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모르겠다.
포르투의 식당이었다. ‘이번 주 남편이 포르투에 없어서, 손이 부족해서 느려요. 이해해주세요.'라고 입구에 붙은 쪽지 아래서 차례를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자리가 나고 주인아주머니가 바쁜 걸음으로 나왔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냐, 오늘 정말 감당이 안된다, 말하는 얼굴이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분명 영어를 주고받지만, 우리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 과하지 않은 제스처와 한숨마저 어쩜. 부담스럽지도 냉정하지도 않게, 딱 필요한 만큼만 친절했던 식사를 마치고 나는 많이 풀어졌다. 라고스의 리오까지 만난 이후엔 완전 무장해제되었다.
여행지에서는 보통 바짝 긴장을 한다. 철저히 가방을 앞으로 소지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지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피하고, 과도한 친절에는 불응해야 한다. 나만의 철칙을 오래 지켜왔다. 여행지가 어디가 되더라도, 공항부터 무장할 태도다.
그런데 이런 습관적 경계를 풀면 여행이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가끔은 이유 없는 친절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가 존재하기도 한다. 안전한 여행을 만드는 것은 긴장이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만드는 것은 여유다.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낯선 골목까지도 발 디뎌 보는 것은 그래서 여행 후반이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는 것이 늘 아쉽다. 대부분의 음식이 내 입맛에 꼭 맞고, 겉으로 보이는 거리보다 숨겨진 아름다운 골목들이 더 많으며, 이 사람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쯤이면 여행은 항상 끝이 난다.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을 머문다면, 여행을 한 게 아니라 살아본 게 될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산다. 이른바 토박이라고 불리는 백인만 해도 이베리아, 라틴, 켈트인, 게르만인으로 다양한데, 오랜 역사를 함께 한 아프리카계, 아랍계 인종도 한 비중을 차지한다. 옛 식민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넘어온 많은 이들도 포르투갈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지역에 따라서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서로가 북쪽의 집시, 남쪽의 무어인이라고 흉볼 만큼 지역색이 다르기도 하다. 이 호칭이 굳이 서로에게 흉이 되는 이유와 지역별 모호한 차이점까지 이해하기엔 이방인으로서의 내 지식이 부족하다. 그저 내게는 모두 친절한 포르투갈 인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Ola(안녕, 만남), Ciao(안녕, 작별), Obrigado (고마워) 외에 아무런 포르투갈어를 준비해 가지 못한 무례한 여행객이었다. 그러나 관광지에 위치한 대부분의 가게와 숙소에서 만난 종업원들이 무척이나 유창한 영어로 응대해 주었다.
여행이 부린 마법일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는, 만나는 관광객들마저 다정하다. 새로운 관광지를 찾고, 멋진 야경을 찾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여행의 이유가 있다. 살아가며 자꾸만 경계를 나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들. 나와 너. 동양인과 서양인. 남자와 여자. 그러나 나누는 일은 끝이 없고, 나누지 않는 순간에야 끝이 난다. 이 시기 이곳에 있는 관광객 모두가 ‘포르투갈이 좋다’라는 이유로 모여 있다. 대화를 나누기에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다.
리스본의 일정마저 끝나가던 저녁, 제프와 다이앤을 만났다. 여행 중 나만큼이나 마음이 많이 열린 아내가, 옆 테이블에서 와인을 즐기던 영국 윈저에서 온 노부부에게 말을 먼저 걸었다. 우리가 마셔본 와인인데, 나쁘지 않았다는 추천사 한 마디였다. 동양에서 온 낯선 젊은이가 반가웠던 다이앤이 이를 덥석 받아 와인 한 잔을 건네주었다. 잊지 못할 저녁 식사의 시작이었다.
한동안 근엄하게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제프도 내가 영국 축구리그의 꽤나 오랜 팬인 것을 알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고향인 버밍엄의 뒷골목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피키 블라 인더스를 내가 재밌게 보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이후로 제프는 핸드폰에 저장된 잔디밭과 텃밭이 달린 집과 손주와 자신의 일터를 보여주며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어주었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때론 둘둘 나뉘어, 또 때론 넷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동경했던 영국식 발음, 특이한 영국 사투리 표현들,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한국문화에 미친 영향,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우크라이나 전쟁, 해외에서의 커리어, 호주 퍼스에 위치한 제프의 와이너리, 남자와 여자의 차이, 늙음과 젊음, 세계여행, 25년 전 다이앤이 방문했던 한국과, 현재의 한국까지.
60대 영국인 부부를 만난 것이 포르투갈 여행의 백미가 될 줄은 아내도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8일 차, 여행이 끝나기 하루 전날 밤 우리는 포르투갈에 완전히 마음이 열려 있었고, 그 문으로 뜬금없이 영국이 들어왔다.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고, 그 언젠가 서로의 나라를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테이블에 오른 모든 음식과 와인을 제프가 계산했다.
여행의 마무리가 더없이 감사하고도 아름답다. 이번 여행이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윈저가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제프와 다이앤의 한국 여행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영국에 편지를 부쳤다.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호의만큼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한국에 온다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