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신트라&리스본
신트라 여행은 산을 오르고, 내려와 언덕을 걷는 연속이다. 편한 신발과 옷은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별도의 교통편이 달린 데이투어를 신청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신트라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포르투갈의 경주라고 할 수 있을까. 일부러 구획을 한 듯이 포르투갈의 유명 관광지를 산 하나에 모아두었다.
다만, 경주의 유적이 오롯이 신라만의 것이라면 신트라의 유적은 한 나라의 것만은 아니다. 이 땅 끝 마을을 사랑했던 로마인, 아랍인, 포르투갈인, 그리고 유럽인들의 것이다.
포르투갈이 세계사에 그 이름을 남긴 것은 로마시기부터 시작된다. 로마 변방의 작은 식민지였던 이 땅에 대해선, 그리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 것 같지는 않다. 8세기경 아프리카에서 진주한 이슬람계 무어인들의 정복을 받았고, 12세기에는 레콩키스타를 통해 기독교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았으며, 15세기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는 것이 이 나라의 간추린 이야기다.
신트라에는 이 모든 역사가 남겨져 있다. 특히 페냐성이 그렇다. 카톨릭 예배당이 있었던 자리에 수도원이 들어서고, 19세기 포르투갈 왕가는 여름 별장용 궁전으로 건물을 개조했다. 왕가는 인근에 있는 무어인의 성까지 영지로 매입하여 사용하는데, 이 성은 12세기 레콩키스타에 맞선 무어인들의 거점이었다.
성을 개조하는 작업은 루드비히라는 독일인에게 맡겼다. 그의 손에서 페냐성은 포르투갈 근대 초기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양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페르디난드 왕은 이 작업에 로마식 아치와 이슬람 스타일을 혼합할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방식을 두고 절충주의라고도 하는 것 같다. 이 복잡한 이야기와 성의 모습을 두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이들도 있고, 난잡함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긴 줄로 인해서, 아침 일찍 방문해도 페냐성을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신트라 역에서 내리는 거의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페냐성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우겨넣는다. 대신 헤갈레이아 별장을 먼저 보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20세기 지어진 이 별장은 미로와도 같은 정원과 우물로 더 유명하다. 100여년전 브라질의 백만장자가 지은 여름별장이 많은 주인들을 거쳐, 현재는 많은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별도의 요금을 지불하면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는데, 아내는 사양하고 내게 가이드를 맡기곤 한다. 세계테마기행에서 주워듣고 위키에서 몇 줄 읽은 단편적인 감상 정도를 전해주는게 다여도, 그게 낫단다. 포르투갈에 대한 해박한 지식가가 된 마냥 나는 살짝 우쭐거리고, 아내는 그런 나를 치켜세워준다. 나는 그 보답으로 최선을 다해서 아내의 미소를 사진으로 남긴다. 이런 패턴이 우리가 역사 관광지에서 즐기는 일종의 유희다.
신트라는 페냐성, 무어인의 성, 헤갈레이아 별장 외에도 호카곶, 카스카이스까지 포함하고 있는 역사집약적 관광지구다. 심지어는 최근에도 새로운 유적지가 관광지로 새로 단장을 해 문을 열기도 한다. 역사와 유적을 사랑하는 관광객은 우리의 유희 정도로는 부족해 인근에 숙소를 잡고 이 마을을 정독하는 것 같다. 신트라 산을 두 어번 탄 것으로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른 여행객보다는 이른 시간에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풍경은 대체로 평지다. 조금 높다해봐야 언덕 수준이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들이 본토 밖 섬에 위치한다. 지도에서 찾아보면, 높다할 만한 곳이 도우루 와인이 생산되는 북부 지방 고원이 전부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지나다 만나는 많은 도시와 마을들은 야트막한 산과 언덕을 중심으로 자리했다. 아마도 로마시대, 봉건시대를 거쳐 영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성이 생기고, 성 주위로 시장과 마을이 생겼기 때문일 테다.
리스본 역시도 언덕에 위치해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성이 위치하고, 성 주위로 성당과 수도원이, 가장 낮은 곳에는 시장이 위치한다. 이 도시에서 유명한 성이나 수도원에 방문하려면, 일정을 늦은 오후 무렵으로 잡는 것이 좋다. 가장 멋진 전망대와, 야경포인트는 반드시 그 옆에 자리하기 마련이다. 언덕을 굳이 두 번씩 오를 필요는 없다.
언덕이 많으니만큼,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전망대도 여럿 있다. 알파마 지구에서 테호강변 너머로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의 이름은 포르타스 두 솔이다. 리스본 구도심을 넓게 내려다볼 수 있는 산타루치아 전망대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조르주 성, 세뇨라 두 몬테 등의 뷰포인트도 이름이 나 있다.
그 어디서든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는 것이 꼭 내 고향 부산 같다. 부산이 성장한 배경은 우리의 여느 대도시와는 다르다. 애초에 강과 평야를 기반으로 사람이 모여든 서울, 대구, 대전과는 달리 전쟁 난민들이 모여들며 산으로 산으로 올려 쌓인 부산이다. 리스본 항구를 따라 킥보드를 타고 달리다보면, 좁은 평지에는 큰 창고를 지어두고 절벽에는 집들을 지은 것이 꼭 부산 부둣가 풍경과도 같다.
우리는 넓은 땅이 드물어 언덕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이들은 애초에 언덕으로부터 시작한 정도가 다를까. 습기섞인 공기와 조금 신경질적인 운전습관도 닮았다. 이제는 고향에 내려가도 포르투갈이 그리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