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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 Mar 28. 2019

오랜만에

지금, 오랜만에 여유로운 오후 네다섯 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3월에 이런저런 이유로 오버 근무를 몇 번 했더니 말일이 다 되어서는 이렇게 오프를 즐기게 되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버스를 타고 오다 보면 개발되지 않은 용인 구시가의 곳곳을 지나게 된다.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때의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들이 아직 남아있다.

낡아 벗겨진 페인트 칠과 초성 몇 개만 남은 간판 글자, 꼭 철학관 하나가 같이 있는 어느 낡은 빌라.


그런 것들을 지나오다 집 근처 새로 생긴 영화관을 찾았다.

새 건물의 공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커다란 빌딩은 아직 영화관과 커피숍 외엔 텅 비어있다.

팀 버튼 감독의 신작 '덤보'가 보고 싶었지만 도착하기 5분 전에 상영을 시작해버렸고

다음 회차까지는 3시간이나 넘게 텀이 생겨버린 탓에

극장을 나와 지난 겨울 안식 휴가 때 시간을 보낸 카페에 와있다.


창가엔 여전히 화분들이 빼곡히 쌓여 있고, 겨울과 달라진 분홍과 노랑의 꽃잎들이 계절을 실감하게 한다.

아인슈패너를 한잔 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공부하는 남학생의 대각선 뒤로 앉아있다.

조금 더 불편하고 좁은 자리지만 막상 앉아보니 화분의 창가가 정면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일한 팀을 옮겼고, 덕분에 조금씩 더 불편한 일상들을 지내는 중이다.

3월 마지막 한 주의 껍데기 같던 평일의 시간들이 지났다.

내일은 쉴 참이고, 모레는 주말이니 꽤 연휴 같은 시간의 머리에 서있다.


깊은 마음보다는 순간의 감상들만 남기는 나날이다.

무엇으로부터 피하려는지, 외면해버리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스쳐가는 것들로만 채워지는 이 시간들이 어느새 조금 무거워졌을 뿐이다.


마음에 간직한 것이 많았던 그때의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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