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
따르르르르릉
흘깃, 곁눈질로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다. 02로 시작하는 등록되지 않은 번호.
나 : 뭐야 스팸인가?
무시하고 계속 운전에 집중한다.
따르르르르르르릉
또다시 걸려오는 전화.
나 : 스팸치고는 집요하네..
다시 무시하고 계속 운전하면서 생각한다.
은행이나 보험사나 뭐 어디 전화올때가 있나? 뭐 급한거면 문자 남기겠지
사실 이 날 나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평일에는 회사 - 집 을 반복하고, 주말에도 특근을 하고
가끔 너무 피곤한 주말에는 잠만 잤다.
그런 삶을 몇 년 식 살다 보니, 갑자기 이천에서 막 지은 쌀밥이 먹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생긴, 하고싶음/먹고싶음/갖고싶음 의 욕구 였다.
오랜 타지에서의 자취생활. 이제는 내가 해먹는 밥도, 사먹는 것도, 그리고 매일 똑같은 회사 밥도 모두 다 싫었다.
집에서 목적지까지는 대략 60km.. 편도 한시간 반 거리.. 하... 그래 뭐, 까짓것 가자! 해서
큰 마음 먹고 이천에 온 다음, 배부르게 밑반찬까지 싹싹 긁어 먹은 후 집으로 가던 길이였다.
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세번째, 똑같은 번호. 이 정도면 스팸은 아니겠는데...?
결국 블루투스로 연결된 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나 : 누구세요?
?? : ....누나야..
나 : 뭐꼬 현수가? 니 폰은 우짜고?
동생 : (울먹이며) 내 지금 서울역이다..
나 : 뭐? 서울역은 와? 거는 왜 갔는데?
동생 : (계속 울먹으며) 내 너무 무섭다..
나 : 뭔데? 무슨일인데? 거긴 와갔냐니까? 돈 잃아뿟나?
동생 :(계속 울먹이며) 무섭다 누나야... 무섭다.. 우짜노..
나의 하나뿐인 동생.
키 185에 아주 건장한 체격을 가진데다가, 육군 병장 전역한 이십대 후반의 남동생이
갑자기 울면서 무섭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나 : 잠시만 누나 운전중이라서 좀따 다시 전화할께 괜찮제?
동생 : (코를 훌쩍이며) 응응
어디든 차를 세울곳이 필요했다.
남동생이 우는 장면은, 정말 어릴때나 보고 못 봤는데..
다 큰 성인이 무섭다고 전화 올 정도면 무슨 일인건가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걸 떠나서 서울역에는 왜 온거지? 그럼 나도 바로 거기로 가야하나?
머리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우선을 차를 세웠다.
동생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린 다음, 내가 자취하는 곳 주소를 다시 알려주고 오라고 했다.
차비가 없을까봐 입금을 해주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과속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이 시점에서, 내가 동생을 정신병원에 보낼 수 있었으면
많은 것이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