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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31. 2023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

2022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연수 작가의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렇다.


난방도 되지 않는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서 그는 밤을 꼬박 지새운 적이 있었다. 그의 수면을 방해하는 추위와 어둠과 자꾸만 그를 습격해오는 나쁜 기억들을 떨치려 그는 좋은 생각에만 매달린다. "아침 같은 것. 아침이 되어 떠오르는 태양 같은 것. 그리고 마침내 그 밤의 어둠이 모두 물러가는 일 같은 것." 그렇게 괴로운 불면의 밤을 보낸 뒤 산 너머에서 마침내 해가 떠오르고, 새벽빛에 건물의 측면이 따뜻한 색으로 물드는 것을 그는 바라본다. "어두운 새벽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맞이한 아침의 평범한 빛", 몇 시간 전의 어둠 속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찾아온 빛이다. 그는 말한다.


"그러니 과거에서 희망을 찾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우리의 미래에 있었다. 방금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고 쓴 것처럼, 이미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그의 작가노트에서 발견한 것으로 <2022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다.


당시에는 올초 내가 보낸 불면의 밤들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바로 며칠 뒤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며 그가 말한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을 다시금 떠올릴줄은 그때는 몰랐다. 멍석에 둘둘 말려 매타작을 당한다면 이런 통증이지 않을까, 끙끙 앓다가 새벽빛이 아니라 새소리에 날이 바뀌었음을 알았는데, 그때마다 생각했다. 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새소리가 소음이 아니라 지저귐으로 들릴 즈음이면 대충 끝날 테지. 결국 끝이 있는 괴로움이어서 견딜 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제법 명랑한 음조의 새 소리를 들었을 때,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선선한 새벽 기운에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며, 드디어 끝나감을 알았다.


온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고 일상을 가까스로 회복하고 보니 어느새 가을로 넘어와 버렸나. 오늘은 구월 두번째 날이다. (아니 벌써 구월이라니, 어쩐지 억울하네...) 물속에서 걷는 양 몸이 여전히 무겁게만 느껴지지만, 지난주 내 희망은 아직 맞이하지 않은 오늘에 있었고, 이제 내가 바라던 오늘에 무사히 도달하여 안도하고 있다.


책은 편혜영 작가의 "뼈처럼 말라버린 포도알" 같은 죽음으로 시작하여 백수린 작가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끝난다. 다섯편의 고단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갑고 괴로운 밤을 가로질렀는데, 마지막 이야기가 마치 위로해주듯 환한 새벽빛을 선사해준 것만 같았다. 이제껏 읽었던 백수린 작가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좋았다.


1. 편혜영, <포도밭 묘지> 

"아무도 죽지 마." 34


2. 김연수, <진주의 결말>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든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57


3. 김애란, <홈파티>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122


4. 정한아, <일시적인 일탈>


 "아무리 고쳐써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다고. 그 작품들은 결정적인 뭔가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여백이다. 여백이 없다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161


5. 문지혁,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언젠가 한국에서 온 친구가 말해줬어. 한국어로 내 이름은 아프다는 뜻이라고. 맞아?”
(...) “음, 한국어로 네 이름은 모음의 시작이야.”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지극히 한국어 강사다운 대답을 했다.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한국어에는 모임이 이렇게 열 갠데 그 첫 두 글자와 발음이 같거든. 한국인들이 사는 동안 한 번은 외우는 이름이지. 아무도 그걸 아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러자 아야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리가토.” 196


6.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213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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