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식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문학은 사리 분별을 넘어설 정도로 타인의 의견에 신경 쓴 사람들이
파멸한 잔해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 <자기만의 방>, p98
“(글쓰기를, 삶을) 시작하려면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p19
“우리는 아직 낙원을 되찾지 못한 이들이며, 우리가 아직 낙원을 되찾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악덕, 즉 게으름과 조바심을 앓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으며, 게으름과 조바심으로 인한 서두름 탓에 제자리에 멈추고 맙니다.”
“글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글쓰기에 헌신한다는 건 파는 일, 파헤치는 일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하고, 여기에는 오랜 수습 기간이 수반됩니다.”
“글쓰기의 첫 번째 순간은 망자의 학교이고, 두 번째 순간은 꿈의 학교입니다. 가장 심화된 순간이면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세번째 순간은 뿌리의 학교입니다.” p18
“누가 나를 죽이는가? 나는 어느 살인자에게 나를 내맡기고 있는가?’ 모든 위대한 글은 이 질문에 사로잡힌 포로입니다.” p32
“사랑과 도끼는 불가분의 관계이죠.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만이 우리를 죽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입니다. 이런 것을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꿈만이 이런 것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p164
"이것이 글쓰기의 정체입니다. 시작하기죠. 행동과 인내와 관련이 있습니다. 꼭 목적지에 닿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글쓰기는 도착하기가 아니니까요. 대체로는 도착하지 않기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걸어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도착하지 않아야 할까요, 얼마나 멀리 방랑하며 신발을 닳게 하고 즐거워해야 할까요? 우리는 밤만큼 멀리 걸어야 합니다. 각자의 밤만큼 멀리요. 자아를 뚫고 어둠을 향해 걸어야 합니다. p116”
“모두가 읽기를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지는 않지만, 글쓰기와 유사한 읽기 방식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세계를 삭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책으로 세계를 소멸시킵니다. 여러분은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펼친 책을 집지만, 그 책이 단절의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책의 문을 열자마자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는 이 세계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립니다. 읽기는 백주의 도피이고, 타인에 대한 거부입니다. 대체로 읽기는 고독한 행위이며, 그 점에서는 글쓰기와 똑같습니다. 우리는 늘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더는 읽지 않기 때문이죠. 어릴 때는 자주 읽었고, 읽기가 얼마나 격렬할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p41
"생각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건 애쓸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기는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려 애쓰는 일이고, 글쓰기는 쓰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을 쓰는 일입니다.” p74
“글을 쓰도록 우리를 강제하는 것이 ‘고백 성향’, 고백 욕망, 고백의 맛을 맛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고백하고 싶은 욕구와 그 불가능성 둘 다죠. 대체로는 우리가 고백하는 순간 속죄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고백, 그리고 건망증이라는 함정이죠. 고백은 최악의 것입니다. 고백은 자신이 시인한 것을 부인합니다.” p86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생의 모두를 속였다고 말하는 시간이 언제쯤 올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조금이라도 듣기 위해 망자의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우리를 해치는 책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카프카가 <가사 상태에 관하여>라고 제목 붙인 구절에서 묘사한 상황에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쪽으로 가는 경험을, 시나이산의 모세를, 분명히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 글쓰기는 고백할 수 없는 것을 고백하는 데 성공할지도 모르는, 정밀하고 까다롭고 위험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저의 욕망입니다.
(...) 제가 거짓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클라리시가 꿈꾸듯이 죽음과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 위해, 저는 다른 학교, 제일 가까운 학교, 망자의 학교와 제일 비슷한 학교로 갑니다. 바로 꿈의 학교입니다.” pp99-100
“우리가 꿈꿀 때 익숙해지는 것이 ‘비밀의 느낌’이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꿈꾸는 것을 즐기는 동시에 두려워하게 됩니다. 꿈에 들렸을 때, 꿈의 주민일 때, 여러분은 그 비밀의 느낌, 그 일종의 박동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한번도 얘기되지 않은 어떤 것, 그 누구에 의해서도 얘기되지 않을 어떤 것, 그리고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소유합니다. 여러분을 꿈꾸고 또 쓰게 만드는 것은 비밀을 알 가능성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고동치는 비밀의 존재감, 비밀의 느낌 말입니다.” p151
“꿈은 어딘가 먼 곳에 숨은 보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글쓰기가 그 보물을 얻으러 가는 수단이라는 걸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이미 알다시피 보물은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p156
“우리는 우리 자신에 맞서, 정신적, 감정적, 전기적 클리셰의 축적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글쓰기의 일반적 추세는 거대한 클리셰의 결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묘한 적들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전투입니다.” 208
“독서는 사악하다고 일컬어지는 모든 종류의 기쁨에 대한 놀라운 은유입니다.” 209
“등가물 선상에 이런 것들이 있게 됩니다. 유대인, 여성, 흑인, 새, 시인, 등등, 이들 모두가 배제되고 추방되었습니다. 추방은 곤란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상황이기도 합니다. 추방의 경험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게 견딜 수 있습니다. 어떤 추방자는 분노로 죽고, 어떤 추방자는 추방을 하나의 나라로 바꿉니다.” 210
“몰두하는 저자는 반드시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경계를, 자신의 월경越境을, 자신의 변화를 질문하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성인지만이 아니라 어느 성으로인지, 다른 하나와 어떤 관계에서인지, 어떤 다른 하나인지, 다른 하나의 성은 무엇인지도 궁금해하게 됩니다.”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