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하루 걸러 비가 오다 말다 어제는 흐렸고 오늘은 내일 내릴 비를 예고하는 양 대기가 축축하다. 기분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 참지 못해 찾아본 소설의 결말 때문인지도. 밀리의 서재에서 <리틀 라이프>를 읽기 시작했다.
밀리의 서재는 집안일을 하거나 이동시 이용하는데, 대부분 tts로 듣고 있다. 특히 수면 유도 배경음으로는 tts 특유의 기계적인 톤과 단조로운 리듬 탓에 전문 성우의 목소리보다 효과가 더 좋다...
설거지를 하기 직전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 대충 랭킹과 서점 베스트 목록을 훑었다. 현재 밀리 랭킹 3위, 7월 서점 3사 종합 1위. 표지 전면에 꽉 찬 얼굴부터 눈에 들어온다. "생의 지옥을 마주한 소설"(설거지하면서 읽기엔 좀...) "2015 부커상 최고 화제작"(역주행인가...) 일단 아무거나, 하는 심정으로 줄거리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오디오북을 재생시켰는데,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도중에 끊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부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옷 정리까지 했다. 세탁실에서 분류하여 모아둔 재활용쓰레기를 현관으로 옮겨놓다 우뚝 멈춰섰다. 주드가 고통으로 발작하다 기절한 장면에서였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은 뒤 재생을 멈췄다.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줄거리를 서칭하고 결말까지 확인했다. 리뷰마다 울고 있다. 왜 시작했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 가장 큰 혹평은 고통포르노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었다. 글쎄, 그걸 알려면 읽고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이거 가장 기피하는 류인데, 왜 하필 이렇게 잘 쓰였냐, 한탄했다. 일단 분리수거를 끝낼 때까지만 읽어보기로 했다.
그러곤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철없는 젊은 예술가 친구' 포지션인 제이비는 평생 천착해야할 주제와 대상, 고유한 표현방식을 찾지 못해 방황 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눈 내리는 거리를 걸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낡은 카메라로 찍는다. 주인공인 주드는 다리가 불편하여 천천히 걷고, 다른 두 친구 윌럼과 맬컴은 그의 양쪽에서 그가 미끄러지면 잡을 수 있도록, 하지만 그가 넘어질까 신경쓴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에서 그의 속도에 맞춰 걷는다. 이 장면을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제이비는 자신들이 상의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주드와 걸어왔다고 깨닫는다. 그날 밤 파티에서도, 아직은 어떤 뚜렷한 목적 없이, 그들의 뒤를 쫓아다닌다는 의식 없이, 제이비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다.
"어느 순간, 문득 보니 세 사람만 창가에 모여 있었다. 주드가 뭐라고 말하자 나머지 둘이 그 말을 들으려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더니, 다음 순간 셋 다 몸을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동경심과 희미한 질투심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벅찬 승리감을 경험했다. 두 장면을 다 찍었기 때문이다. 오늘밤 난 카메라야, 그는 혼자 말했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제이비가 되는 거야. p121"
낡은 카메라와 서툰 초점이 빚어낸 사진들은 "위스키가 가득 담긴 컵을 통해 찍기라도 한 것처럼 따뜻하고 풍부하고 부드럽게" 보인다. 제이비는 사진 속 친구들을 연필로 스케치하고 빳빳한 마분지에 수채 물감으로 그려본다. 그러곤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옮겨 본 뒤 마침내 포토리얼리즘 기법에 정착한다. 자신의 그림 속에서 "그는 친구들을 다르게 보게 됐다. 그저 자기 인생의 부속물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들을 살아가는 별개의 인물로 보게 됐다.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도 가끔은 친구들을 생전 처음 보는 것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는 특히 주드의 그림을 아꼈다. 주드는 "가장 흥미로운 얼굴과 독특한 색깔을 가진, 셋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의 홍채에 어울리는 오묘한 녹색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머리카락 색이 마음에 들 때까지, 제이비는 색을 실험하고 거듭 그린다. 마침내 절대적 확신에 도달한다. 이건 대단한 그림이 될 거라고.
영혼없이 분리수거를 마저 끝낸 뒤 책상 앞에 앉았다. 기계음으로 들어도 선명하게 펼쳐지는 장면들을, 이번에는 눈으로 활자 더듬듯 느리게 읽고 싶었다.
배려깊고 다정한 친구들, 그런 그들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는 고통, 제이비의 그림 속에서 슬며시 윤곽을 드러내는 과거의 주드. 그건 주드가 대학시절에 찍힌 사진을 옮긴 그림이었다. 카메라의 시선을 약간 등지고 서 있는, 손등의 별모양 흉터가 드러나도록 왼쪽 팔을 가슴에 올리고 오른 손에는 불도 안 붙인 담배를 열의 없이 든 채로, 큰 사이즈의 파란 줄무늬 흰 긴팔 티 차림에 턱 선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하고서. 그는 그 긴 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을 숨기곤 했다. 경계심 가득한 표정과 너무 연약하고 취약하고 너무 '어려' 보이는 얼굴에는 주드로서는 숨기고 싶었을 터이나 고통과 자기혐오에서 비롯되었을 온갖 것이, 제이비 같은 부류는 생각조차 못할 것들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나는 고통의 정체를 알아버렸지. 쓸데없이 손가락을 놀려 결말까지 알아버렸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이, 아무리 종이인간의 삶이라도, 몇 개의 사실들로 납작하게 요약될 수 있나. 고통은 그렇게 축약될 수 없다. 게다가 어떤 삶에도 고통만 있을 수는 없어. 주드에게 가족같은 친구들이 주어진 것처럼 말이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의 고백처럼 어느 누구의 삶에도 그렇게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테니까.
더 읽고 싶고 이만 멈추고 싶다. 아직은 주드의 지옥에 들어서기 전이니까 여기서 그만. 숱하게 망설이며 읽을지 모를, 그런 소설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