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사랑의 주변
똑같은 영화라고 해도 하나의 영화는 아니다.
어떤 영화를 보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은,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31,824명의 관객이 재개봉한 <냉정과 열정 사이>를 관람했다고 한다(2016년 4월 28일 기준). <냉정과 열정 사이 1>부터 <냉정과 열정 사이 31824>까지 이어지는 시리즈가 생긴 셈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들 중 일부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본다. 그러면 한 영화가 파생시킨 각기 다른 리뷰의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필자도 <냉정과 열정 사이>를 두 번 관람했다. 처음 <냉정과 열정 사이>를 봤던 때는 2003년 12월이었다. 수능을 치르고 한 달 정도 지났던 시점. 현실의 큰 고비를 넘긴 고3 남학생의 눈에 비친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와 아오이(진혜림)의 사랑 이야기는 무미건조했던 고3 생활을 보상해 주는 듯했다.
팍팍한 현실의 험지에 운명적 사랑의 비가 내려 푸근히 적셔 주었다.
음악적 소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 OST CD를 사서 듣고 또 들었다. 요시마타 료의 'History'를 들으면 아오이와 준세이가 나눈 사랑의 역사가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The Whole Nine Yards'는 나를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으로 차원 이동시키는 웜홀 같은 곡이었다. 그 밖에 다른 곡들도 감성 급속 충전에 손색이 없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영화 음악이 과잉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역대 최고 중 하나다.
수능 친 고3이 술 마실 돈으로 영화 OST CD를 샀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자의 나이만큼 필자가 감상한 영화들의 누적 러닝타임도 꾸준히 길어졌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내 인생 최고의 영화' 순위에서 점점 하락했다. 준세이와 아오이의 운명적 사랑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들다는 자각이 커졌기 때문일까. 사랑의 실패가 반복됐기 때문일까.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일까.
준세이와 아오이는 그대로 일 텐데, 왜 나는 변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13년 전 느꼈던 감흥을 되찾고자
극장을 찾았다.
다시 보아도 요시마타 료의 음악은 여전했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피렌체의 풍광, 그 가운데 두오모 성당의 자태도 변함없이 빛났다. 무엇보다 준세이와 아오이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왠지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도 아직 완전히 변하진 않았구나.
물론 크게 달라진 것도 있었다. 처음 봤을 때엔 아오이와 준세이의 운명적 사랑에 집중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운명적 사랑의 주변이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오이 곁을 지켜준 마빈(마이클 왕/왕민덕), 준세이만 바라본 메미(시노하라 료코).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한 아오이와 준세이를 옆에 두고 마빈과 메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마빈과 메미의 사랑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는 어떤 것일까?
극 중 준세이는 피렌체에서 유화 복원사 일을 배운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다시 보기는 마치 준세이가 치골리의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 같았다. 이 영화에 대한 예전의 기억을 토대로 지금의 새로운 해석을 더해 또 하나의 감상문을 쓰는 것. <냉정과 열정 사이 31825>가 이렇게 완성됐다.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