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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27. 2023

오늘을 산다

며칠째 아니 몇 주째 기분이 영 좋질 않았다.

우울하고 힘이 들었다.

우울하고 의욕이 없는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도피하고 싶었다.     


게임에 빠져 하루에 5시간 이상씩 게임을 했다.     

빨래를 미루고 청소를 미뤘다.

하루에 한 끼 먹는 게 귀찮았다. 아이들 때문에 밥을 차리거나 배달을 시켜도 막상 많이 먹지는 못했다.     

뭔가 미친 듯이 먹고 싶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 우울증이 온 건가 생각도 했다. 생리 전증후군이 좀 심하게 왔나 보다 느꼈다.

목 디스크로 몸이 찌뿌둥해서 기운도 가라앉나 싶었다.     


남편과 한바탕 싸움을 하고 눈물 콧물 쏟았다. 

연례행사처럼 그렇게 서운함도 우울함도 털어내 버리면 좋아질 줄 알았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당연히 괜찮아 지려니 생각했다.      

청소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베란다 누워 햇볕도 쬐었다.     

아이들에게 잠시 뺏겼던 베란다의 이 햇볕 지점을 다시 찾아오고자 전용 안락의자도 주문했다. 

미뤄둔 독서도 하고 예능을 보며 신나게 웃었다.     

한참을 손뼉 치며 소리 내 웃고 난 뒤 멍하니 광고를 보는 데 또 우울감이 찾아온다.


이 불안감은 무엇 때문일까. 이 슬픔은 왜 오는 걸까.

내 인생은 괜찮게 흘러가는데, 이 시기에 왜 힘든 걸까.     

문득 공기청정기 광고를 보다가 잠든 아기를 내려놓는 장면을 보고 눈물이 흐른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냈기 때문에 슬픈 거다.     

이제 다시 올지 모를 그 순간들을 떠나보내지 못해서 힘들다.     

이제는 마냥 아기가 아닐 내 아이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세상 전부로 받아 주었던 아이들에게 이제 나의 민낯을 보여줄 차례라서 두렵다. 그게 자신이 없어서 슬픈 것이다.     

그저 자라는 것을 보며 감탄을 쏟아낼 세월은 지나가 버렸다

그저 이렇게 자라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고 예뻐할 시기는 지나버렸다.

‘어쩌면 이런 것을 갖고 태어났을까?’ 싶던 신비로운 시간은 지나고 그간 내가 쏟은 씨앗의 결과만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내가 쏟은 건 결코 아름다운 것만 있지는 않았다.     

아직 겪지 않아 모른다. 아직도 행복한 시간은 많이 남아있을 거다.

아이들이 한살이든, 열 살이든 스무 살이든 동일한 감사를 계속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지나간 세월을 슬퍼하고 있다. 소중한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지 못해서, 다시 못 올 아름다운 그림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껴서, 그래서 지금의 소중한 순간을 또 배경처럼 흐릿하게 지내버리고 있다.     


혹은 이도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눈앞이 뿌연 이유가. 

무엇을 앞두고 불안해하는가. 무엇을 보내고 슬퍼하는가. 한참을 더 생각한다.    

아프고, 우울하고, 슬플만한 합당한 이유를 찾아본다.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든 모르든, 답은 하나겠지.     


그냥 오늘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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