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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Oct 02. 2023

책을 비우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육아가 아니라 독자로 키우는 법

한창 책이 많던 시절, 책장이 감당이 되지 않아서

언니네에게서 받아온 전집과 책들, 북패드 포인트로 산 전집들, 저렴하게 중고로 샀던 책들.

아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책들을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저학년이 있는 가까운 이웃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당근에 올려 판매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매일 '이 책 읽냐? 안 읽으면 팔게.' 물어봤습니다.


 아이들은 환영하며 이것도 팔아버려 저것도 팔아버려 하며 전집을 가리킵니다.

 엄마의 속은 모른 채 말입니다. 


 많은 전집을 팔았고, 물려주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한 무더기 남았습니다. 전집을 너무 많이 물려주기도 미안했고(그 집에서도 애물단지 될까 봐), 어떤 전집은 당근으로도 잘 안 팔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갈수록 책이 줄자 아이들이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빡빡한 책장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아이들이 엄마가 팔려고 꺼내놓은 전집에 혹은 아직 남아있는 책에 눈길을 줍니다. 

 책장이 비자 아이들이 책을 사달라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 책은 시리즈로 나오는 데 그다음권을 사달라고 하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또래 다른 아이들이 내놓은 책을 사 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책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싫어했을 뿐이죠. 


 아이들은 서점에 가서 읽을 책 둘러보는 것도 좋아하고, 엄마와 도서관에 가면 으레 자기가 대출할 책도 가져옵니다. 자기의 책 취향이 어떤 건지도 알고요. 

 '엄마, 도서관 가면 나 추리 소설 빌려다 줘. 무슨무슨 탐정단 같은 거.'

 '엄마, 나는 예전엔 소공녀, 하이디 이런 책 너무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다른 것도 재밌더라.'

엄마가 책 읽으란 소리를 줄이자, 아이들 입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탐구할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가 내미는 책 말고, 자기가 고른 책을 읽을 권리가 있죠. 


얼마 전에 두 딸애 방을 바꿨습니다. 큰 방 쓰던 큰 애가 작은방으로 바꿔달라고 해서 얼른 바꿔주었지요.

이제 5학년인 큰 애는 자기가 고른 침대를 놓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물건을 옮기게 되었는데, 작은 애는 자기 방에 있던 책에 관심이 없습니다. 거의 읽었거나 엄마가 꽂아놔서 그냥 있던 책이지요. 하지만 큰 애는 동생더러 빨리 책을 다 가져가라고 합니다. 자기 책 갖고 와야 한다고요. 

 큰 애의 책장에도 전집이 있고, 읽는 것 같지 않아 보여서 관심이 없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자기 책이라고 인지하는 것 자체가 다릅니다. 아이가 읽던 안 읽던 그 책은 그 아이의 책입니다. 

내가 읽을 책이라고 인지하느냐와 그냥 있는 책이라고 인지하느냐는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죠.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큰 애 방의 전집을 살 때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골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전집을 택하거나 예쁜 표지 시리즈도 골랐죠. 엄마가 추천한 것들도 있었지만, 아이는 자기가 골랐기 때문에 그 책들에 관심도가 0이 아니었고 '자기가 필요하거나 흥미가 당기면 읽을 책'으로 구분하고 있던 겁니다.



책에 관해서만큼은 아이에게 자유를 주어야겠습니다.


책을 고를 자유

책을 읽지 않고 그냥 둘 자유

헐렁한 책장을 자기가 원하는 책으로 채워 넣을 자유


책육아를 포기하니 아이들은 육아 대상에서 벗어나 독자로 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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