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에세이 13 :: 귤
어느덧 18개월이 된 아기. 아기를 기르면서 새삼 정리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음운 체계가 그것입니다. 정확하게는 한국어의 음운체계이지요. 3,4개월부터 시작된 아기의 옹알이. 그러한 음성들이 모음과 자음 같은 음운이 될 때도 그러했지만, 뜻을 가진 음으로 바뀌기 전에도 소리를 내는 데에는 순서가 있더라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기는 발음하기 쉬운 순서로 소리를 내되, 몇 가지 예외를 보여 주었어요.
자음보다는 '아, 오, 에~' 같은 모음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발음한 아기. 모음이 장애를 받지 않고 나오는 소리이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물론 '야' 같은 이중모음은 18개월인 지금도 여전히 잘 발음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아기가 가장 먼저 내는 소리는 단모음.
그런데 모음만 주구장창 말하는 것도 아기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모음에 얹혀서 /ㅁ,ㅂ/ 등의 자음 소리를 냈으니까요. 그렇게 아기가 가장 쉽게 냈던 자음은 [음]그리고 [므]. 여기에서 '엄마'나 '맘마, 무무(멍멍)'가 파생되었겠고요. '엄마'에 대당하는 외국어가 '마미(영어), 마망(불어), 마마(중국어, 일어), 마더(라틴어)' 등이라는 건 세계 아이들이 'ㅁ'(입술소리, 순음)를 가장 쉽게 여긴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네요. /ㅁ/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소리내는 '아빠, 빠빠' 같은 /ㅃ/음운도 입술소리였고요.
입술소리에 이어서 아기 입에서 많이 나오는 소리는 여린입천장소리(연구개음)이었어요. /ㄲ,ㅇ/이 들어가는 깍깍, 그응 같은 소리 말이에요. 그것은 '까까, 응까, 까끙' 등의 단어로 바뀌었지요. 다음으로 내는 소리는 잇소리(치음)과 센입천장소리(구개음)의 어딘가였습니다. 표기로는 구개음이지만 엄마 귀에는 잇소리에 가까운 '치즈[치-]' 등을 발음했거든요. 마지막으로 가장 발음이 늦었던 음운은 목구멍에서부터 소리를 끌어 올려야 하는 /ㅎ/, (목청소리)후음이었습니다.
정리해 보면 아기가 한국어 음운을 내는 순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음(단모음)→입술소리→여린입천장소리→잇소리→센입천장소리→목청소리→모음(이중모음)'
물론 단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런데 이러한 순서를 모조리 무시해버리고 발음을 하는 몇 가지의 단어가 있습니다. '귤'과 '자일리톨'이 그것이지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먹는 자일리톨과 오늘 아침에도 간식으로 두 개나 먹은 귤이요.
재료 : 귤
도구 : 귤
과정
1. 귤을 예쁘게 까서 아기 식판에 올려준다. (아.... 레시피라고 하기 너무 소박하네요 ㅎㅎ;;;)
아기가 귤 발음을 빨리 한 이유는 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자일리톨(음절수도 4개나 되는) 역시 아기가 먹는 좋아하는 먹거리이고요. 한편 우리 아기는 발음을 잘 못하지만 조부모의 손에서 길러지는 아기들이 잘 발음하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것이지요. 반면 우리 아기는 이런 단어들을 쓸 일이 없으니, 이 단어의 발음오 늦고 그에 수반되는 /ㅎ/음운을 늦게 발음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에 능숙하고 싶으면 그것을 좋아하고 자주 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