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르쳐준 ‘이겨야만 한다는 강박’
학부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애들이 학교 끝나고 못 놀게 해 주세요.”
여기서 말하는 ‘못 놀게’의 장소는 PC방도 친구 집도 아닌 운동장입니다. 요청의 근거는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를 쓴 채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아이들이 숨을 쉬는 게 답답하기 때문이고, 그 결과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마스크를 벗게 되어 감염의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공부를 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두 번 정도는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까 운동장에서 놀지 말로 집에 가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에너지 넘치는 10대 남학생들을 뛰지 못하게 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다행인 건 공식적으로 아이들의 에너지를 분출할 창구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학교 농구 대회.
그런데 시작 전부터 아이들의 풀이 많이 꺾여있었습니다.
“왜들 그래? 아직 예선전도 안 치렀잖아?”
“쌤, 우리 반 애들 농구 못 해요.”
“해보지도 않고 그게 무슨 말?”
“애들 좀 보세요. 다들 키도 작고, 잘하는 애도 하나도 없고... 어차피 질 거예요.”
“일단 해보자!”
시작 휘슬이 울렸습니다.
“자자 파이팅! 져도 괜찮으니까 최선을 다해보자!”
행운의 여신이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1승을 따냈습니다. 학교가 끝난 후 학원에 가기 전까지 운동장에서 신나게 공을 찬 그 아이들의 공이 컸습다.
다음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자자! 아까처럼만 하자! 져도 괜찮으니까 파이팅!!”
파이팅을 외치는 나의 뒤에 한 여학생이 슬며시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지면 안 되잖아요? 이왕 경기하는 건데.”
“응. 그건 긴장을 풀라고 하는 말이었어. 너무 이기려고만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래도 져도 괜찮다는 건 좀 그래요.”
결국 우리 반은 두 번째 경기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라고 축 처진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여학생의 그 말을 들은 후, 내 안에서 울린 생각의 종소리는 좀처럼 멎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접하게 하는 일, 지는 법을 가르치는 일, 그것도 어쩌면 어른들의 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은 경기에서조차 지면 안 되는 걸까요?
늘 이겨야만 하는 걸까요?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이기는 연습’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