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에서 코로나를 만나다
한때 저는 실이 가장 안전하고 예측가능한 공간이라고 믿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울리는 종소리,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펼쳐지는 교과서,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수업. 하지만 교사가 되고 일주일 만에 그 믿음은 깨졌습니다. 같은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고, 배움의 결과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 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교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증가시켰습니다. 교직의 매력은 예측 가능하지만 가능하지 않은 그 변수들의 리듬을 타는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리듬이 사라졌습니다.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지구의 한쪽에서 시작된 변이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인간 세상 전체를 집어삼켰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의 구석으로 몰렸고, 북적이는 공간은 곧 금기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마스크 없이 거리를 걷는다는 건 목숨을 건 일탈이었습니다.
네 살 아이의 손을 잡고 인적 없는 놀이터에 나갈 때도 우리는 마스크를 써야 했습니다. ‘거리두기’라는 단어는 ‘살아남기’의 동의어. 손바닥만 한 마스크 한 장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사람 사이의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칠했습니다. 마스크 가격은 몇 달 만에 잡혔지만,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더더욱 잡히지 않았습니다.
불안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사망 소식, 백신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 “맞고 나면 이상이 생긴대”, “여성은 생리 불순이 생긴다.”, “심하면 죽는대” 같은 이야기가 바이러스처럼 공기 중에 떠돌았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바이러스 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도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학교도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우선 학생들을 교실 안에 모으는 것부터가 불가능했습니다. ‘교육이란 학생들을 한데 모아 지식을 전하는 것’이라는 교육에 대한 오래된 신념은 단박에 금이 갔습니다. 3년 만의 복직 후, 얼굴을 볼 것으로 기대한 학생들은 랜선 저 너머에서 키보드를 두드린 흔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전에 준비해 둔 거꾸로수업(Flipped Learning) 영상 덕분에 당분간은 수업에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교사가 미리 핵심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학생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수업 시간에 확장된 학습을 이어가는 방식. 코로나 상황에서 이 수업 모델은 작은 빛을 발했습니다.
이처럼 수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사의 일상은 변해 있었습니다.
우선 교사의 역할은 방역 요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교실에 있는 책상들을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비접촉 체온계를 마련해 두고,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투명 아크릴 가림판을 마련하고, 교실을 수시로 소독했습니다. 교실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만이 아닌,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감시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텅 빈 교실에서 혼잣말을 하며 수업 연습을 했습니다. 영상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학교는 학군지 노른자 학교의 속도를 보여주듯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그 어느 지역보다 빨리 구글 클래스룸을 도입했고,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도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그렇게 구글 클래스룸을 중심으로 하는 ‘과제 제시형 수업’은 시나브로 줌을 필두로 하는 ‘쌍방향 수업’으로 진화되었습니다. 교실에는 없는 아이들이 화면 속에는 있었습니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 얼굴을 살짝 비껴간 정수리, 더러는 마스크를 벗은 온전한 얼굴까지도요.
결국 우리는 텅 빈 교실에서도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업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상황을 현명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힘, 그리고 교사로서 함께 끝까지 버티는 힘이었습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