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애 아빠는 어디 있어요?

출산과 이사를 동시에!

by 달빛시

“이럴 줄 알았으면, 첫 아이 때처럼 그냥 수술할 걸 그랬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길 3일째. 옆 침대의 산모는 하루 만에 순산했는데, 나는 왜 아무런 소식이 없을까. 건너편 침대의 산모는 결국 수술을 했다는데, 나도 모든 그렇게 되면 어쩌나. 자궁 경부 입구에 물주머니를 찬 채,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첫째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은 나는 이로 인한 후유증이 컸다. 수술 후 출혈이 너무 많아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원치 않는 수술로 아이를 낳았기에 산후 우울증까지 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둘째를 낳는다면 자연 분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러다가 정말 기적처럼 둘째가 찾아왔다.


아기를 품고 집 근처 대형 산부인과에 문의를 했다.


“쉽진 않겠지만.... 해 봅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치의 선생님은 자연분만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전국에서 '브이백 잘 하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브이백(VBAC)이란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은 후, 다음 아이를 자연 분만하고 싶은 산모들이 도전하는 출산 방법 중 하나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친척 어르신조차 ‘너무 위험할 텐데’라고 걱정하셨기에 조금 흔들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브이백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새로운 주치의 선생님과 출산 날짜를 계획했다. 하지만 조금 걱정되는 게 있었다. 이삿날과 출산일이 가깝다는 것이었다. 출산 예정일 이틀 후가 이삿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사가.


‘아기 낳고 이틀 후에 이사 하면 되겠네.’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병원에 들어갔다. 문제는 입원은 했지만 아기가 도통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첫날 열린 2cm의 자궁문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열릴 낌새 없었다. 결국 수간호사님의 입에서 최후통첩이 떨어졌다.


‘터뜨립시다.’


양수가 터지자 극한의 고통이 밀려왔다. 제왕절개는 한 번의 커다란 따끔함을 참으면 분만이 끝나지만, 자연분만은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긴 아픔을 견뎌야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라고 되뇌면서 자궁문이 열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라마즈 호흡을 내뱉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외친다.


“이제 거의 다 나왔어요. 탯줄 잘라야 하는데 애기 아빠는 지금 어디 있어요?”


“네네, 후으읍후으읍, 지금, 이사, 이사하러요!”


“네? 좀 전까지 여기 계셨잖아요?”


“아! 전화하러요! 후으읍후읍, 복, 복도예요, 거기에서 전화로 이사하고 있을 거예요!! 으아아아!!”


경력 많아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도 이런 사람은 처음이라는 듯 복도로 바람처럼 나갔다. 곧 신랑이 들어왔고, 이내 내 고막에 얇은 종이를 덧댄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응애애애 응애애애애”


25일 후. 생후 25일 차인 아기를 포함하여 4명이 된 우리 가족은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25일 전에 이사해둔 그 ‘새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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