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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Jul 13. 2022

시골개, 짧은 목줄 밖의 세상

  별이랑 산책하기 시작하면서 별이가 냄새 맡기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지 배변하기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지 하나씩 알아갔다. 매일 들러 냄새를 맡는 곳이 생기고, 자주 볼일을 보는 곳도 생겼다. 유난히 냄새를 심각하게 맡는 곳은 다른 개들이 다녀간 곳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봇대나 건물 벽, 도로의 연석, 바위, 벤치 같은 곳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개들이 자신의 냄새를 퍼뜨리는 이유는 집으로 돌아올 정보를 수집하고 탐색하는 일이라고 한다. 다른 개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리고, 냄새를 맡으면서 자신도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돌아다니지 않는 개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진돗개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야외 배변이 본능이라 따로 배변 훈련을 시킬 필요가 없고, 자신의 집 주변에 볼일을 보는 것에 굉장히 스트레스받는다고 한다. 정말로 별이는 나랑 산책을 안 나가는 날에는 배변을 참고 볼일을 안 보는 것이다! 묶여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집 주변에 배변을 했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받았을까?

     

   안절부절못하고 부산스러운 사람들 보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왜 그러냐?'는 말을 한다. 그 말은 정말이었다. 큰일을 보기 전 별이의 행동은 유난히 크고 특별해서 뭘 하려는 건지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먼저 예정지의 냄새를 충분히 맡고 주변을 살핀 후 뱅글뱅글 세 바퀴 정도 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면 다시 한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진짜 볼일을 봐야겠다 마음을 먹으면 두 다리 간격을 조금씩 좁히면서 천천히 몸을 동그랗게 만다. 또 별이는 산책을 나선 초반에 큰일을 2회에 나누어 본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배변 패턴을 파악한 후로는 집 근처에서 배변을 모두 끝내고 길로 나선다. 속을 비우고 신나게 뛰고 걷는 별이를 보면 내 속이 다 시원하다. 내 똥은 안 더러워도 남의 똥은 더러운 법이다. 내 개 똥은 안 더러운데 남의 개 똥은 더럽다. 참 희한하다.




  시골에서는 한집 건너 한집 개를 키운다. 대부분의 개들은 목줄에 묶여있다. 그래도 그중에는 담이나 울타리로 집이 막혀있거나 견사가 있는 집도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개들이 목줄을 안 할 수 있어서 더 좋다. (나도 꼭 별이에게 널찍한 견사를 지어주고 싶다) 산책을 다니기 전에는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개들이 살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남의 집 개가 짖나 보다’ 이러고 말았다. 하지만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짧은 목줄에 묶인 개들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주인이 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똥을 치우고, 밥을 챙기고 물을 갈아주는 일을 사랑 없이 할 수 있을까. 어느 날은 변변한 개집도 없이 밭에 묶여있는 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곧 여름이라 그늘이 없어서 걱정됐던 개가 있었다. 다음 주에 가보니 주인분이 다녀가셨는지 엄청나게 큰 우산을 개가 묶인 곳 위에 설치해준 것을 보았다. 모든 행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겨울에는 마을 입구 공터에서 누가 키우는 건지 긴 목줄에 매어 있는 개가 생겼다. 날씨가 추워져서 안쓰러워 보였는데 퇴근길에 보니 누군가 담요를 여러 장 갖다 놓았다.


  가끔 시골 어르신 중에 지나가는 개들을 보면 “아이고, 무서워라.” 내지는 "개팔자가 상팔자"라거나 "개똥을 안 치워서 죽겠다는" 등 고까운 시선으로 수틀린 잔소리를 한마디씩 던지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훨씬 많은 어르신들이 "고놈 참 잘생겼네!" 하시거나 "산책 나왔냐~"인사해주신다. 특히 개엄마 개아빠 동지들을 만나 "안녕하세요." 정답게 나누는 인사가 참 좋다.


  시골주변이 산이거나 개울이거나 논밭이다. 온통 자연이다. 시골개들은 도시개들보다 더 행복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 산책할 수만 있다면. 나도 이렇게 마음먹고, 책을 읽고, 검색해보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그저 밥만 배부르게 먹여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지.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아주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개엄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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