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와 산책을 다니기 전에는 개엄마 개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개는 어디까지나 개일뿐이라고 생각했다. 개한테 선글라스를 끼우고,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는 것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복더위에 강아지를 안고 산책하는 개엄마,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여행하는 개아빠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당시 내 마음을 표현하자면 이 문장이 딱이다.
"가지가지한다."
별이와 함께 길을 나섰던 첫 산책 날. 창고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두툼한 목줄이 있길래 장갑을 끼고 별이 목에 걸었다.(장갑 없이 별이를 만지기 힘들 때였다) 별이는 산책용 목줄을 차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계단을 오르내려 본 적도 없었다. 뒷산으로 올라가려면 작은 계단을 몇 개 올라야 하는데 별이는 계단 앞에서 주저주저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구조물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매어 놓기만 했던 지난 몇 개월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앞장섰고, 목줄을 힘껏 잡아당기면서 별이를 끌고 올라갔다. 갈 곳을 모른 채 파드닥거리며 허공을 휘젓던 별이의 뒷발이 눈에 선하다.
산에서 별이는 미친 듯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겠다는 다짐을 한 것처럼 코를 땅바닥에 박고 전진했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나를 좌우로 흔들어대는데 그 힘을 버티느라 무릎이 아파왔다. 다행히 몇 년 전 열심히 시청했던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강아지들은 걷고 싶어서 산책하는 게 아니라 냄새 맡고 싶어서 산책하는 거래."라고 했던 장면이 인상 깊어서 기억하고 있던 터라 별이에게 끌려가면서도 '얼마나 냄새를 맡고 싶었을까' 안쓰러워 한참을 뒤따라갔다. 그렇게 우리의 첫 산책은 별이의 '코 박고 전진하기'와 나의 '무릎 통증'으로 마무리됐다.
집에 와서 '강아지 목줄'부터 검색했다. 15kg에 가까운 중형견이 끄는 힘은 생각보다 강했고, 별이가 잡아당기고 내가 버틸 때 동그란 목줄에만 온 힘이 쏠려 별이가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새로운 목줄이 필요했다. 검색을 하자마자 '강아지 가슴줄'이라는 것이 보였다. 와우! 이런 것이 있다니! 이것은 '하네스'라고도 불렸다. 다음날 총알 배송된 하네스를 차고 두 번째 산책길에 나섰다.
처음 하네스를 채울 때는 별이도 나도 처음이라 한참을 헤맸다. 아무리 일어서라고 외쳐도 앉아만 있어서 배를 한껏 들어 올려 버클을 채워야 했다. 지금은 "일어서!"라고 하지 않아도 목줄을 채우려고 하면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모든 행동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이고. 정말 아기 키우는 거랑 똑~같다. 기저귀 채울 때 아이가 엉덩이만 살짝 들어줘도 얼마나 편했던가! 별이가 목줄 채울 때 앉았다 일어섰다 할 때면 아이 옷 입힐 때 "팔 쭉~"하면 팔을 쑥 집어넣어 주던 그 순간처럼 뿌듯하다.
사람은 세상을 눈으로 보지만 강아지는 코로 본다고 한다. 개의 후각이 사람보다 1000배에서 1억 배 정도 뛰어나다고 하니 말 다했다. 누가 냄새를 잘 맡으면 "개코네~"하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개들이 시골에서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지내고 있다. 얼마나 세상을 보고 싶을까. 다른 냄새를 맡고 싶을까.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가 어디서 오는 건지 얼마나 궁금할까. 별이랑 산책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난 다른 개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어가겠다.
이제는 개엄마 개아빠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지 않는다. 삼복더위에 강아지를 안고 외출한 개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이따 산책할 시간이 안되나 보다. 강아지 발바닥 뜨거울까 봐 안고 나오셨구나.' 개를 태우고 여행길에 나서는 개아빠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 별이도 차 한 번 태워주고 싶다. 개들이 차 타는 거 정말 좋아한다는데.' 초보 개엄마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언제부터 산책 물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검색해보니 있다! 오늘은 찜해두고 결제를 미뤘던 휴대용 산책 물병을 주문했다. 별이가 진짜 좋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