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새벽 기도를 다녀오시고 늘 바로, 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혼자서 점심 준비를 하시기 시작했다.
뚱뚱한 무 껍질을 까 씻어 모아놓고, 그날 무칠 나물들을 다듬으시고 양파를 까고 자르고,
고기는 핏물을 빼도록 차가운 물에 담가 놓고 그릇들을 모두 모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셨다.
할머니가 음식을 하시던 곳은 '레미콘 공장 안의 식당'이었다.
주말은 한가했지만 주중엔 매일 하루에 오십 명, 많을 땐 7-80명의 레미콘 트럭을 모는 트럭기사들과 회사 안의 직원들이 끊이지 않고 밥을 먹으러 왔다.
아주 특별하고 아주 팬시 한 것은 없었지만 할머니는 반찬 하나 어디서 사 와 내어 놓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뻔하게 반복하여 똑같은 음식을 내놓는 일도 없었다.
기사식당 일은 그랬다.
많은 사람을 먹여야 하는 일이었고 김치 빼곤 매일 다른 메뉴를 내놓아야 했다.
고모가 매일 와 할머니 일을 도왔지만 다른 도우미 아줌마조차 없이, 특별하게 쉬는 날 없이 요리를 하고 식기 세척기도 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설거지를 하셔야 했던 할머니를 통해 본 요리는 '노동, 그 자체'였다.
우리 집엔 정말 많은 주방용품들이 있다.
큰 믹서기, 작은 믹서기, 푸드 프로세서, 압력솥, 토스터 오븐, 작은 오븐, Slow Cooker, Grilled Pan, 바비큐, 밥 솥, 대류 오븐, Cast Iron Pan, Pots, 야채 슬라이스기, 핸드 믹서기, 믹서기...
(You name it, I have it! )
요리를 할 때 종종 할머니를 생각하곤 한다.
이런 크고 좋은 푸드 프로세서가 있었다면 손에 굳은살이 박일만큼 칼질하지 않으셔도 됐었을 텐데.
이런 거 하나 있었으면 쉽게 요리하실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좀 더 편하고 쉬울 수 있었을 텐데...
(첩첩후회)
지구가 살아온, 존재해 온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할 때
내가 태어난 1980년대와 지금,
우리에겐 영원 같던 삼십 년이지만 아마 지구에게는 눈 한번 깜빡 밖에 안 했을 시간일 텐데
우리는, 사람들은
삼십 년 만에 참, 엄청나게도 변했다.
작년에 개봉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받고 극본상의 후보에 오른 Ex- Machina (한국 이름을 찾아보니 엑스 마키나라고 되어 있더라고요!)는 인공지능 과학의 선두 자이며 한 회사의 CEO인 네이든(Nathan)이 캘럽(Caleb)이라는 자기 회사 소속의 뛰어난 프로그래머를 일주일 간 자신의 비밀 연구소로 초청하여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에이바를 소개하여주며 시작된다.
에이바는 신비롭다.
사람의 얼굴과 감정이 든 표정, 손짓, 발짓이 섬세하고 캘럽과의 대화로 보이는 그녀의 이해력과 사고력은 사람보다 낫다.
캘럽은 성적인 욕망까지 느낀다.
그는 이런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런 개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고
결국엔, 그녀에게 푹 빠져 '그녀가 오류가 아닌 성공적인 결과물'로 느끼게 됨으로써 네이든으로부터 감금당해 있는 그녀를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전이 핫이슈다.
덕분에 나도 '캔디 크러쉬' 외에는 들여다보지 않던 게임 앱 중에서 바둑게임을 다운로드하였다.
알 파고는 한 달에 바둑을 만 판을 넘게 두고 학습을 한다는데
내가 꼴랑 서른 판의 바둑을 두고 한 판도 이기지 못해 분한 것은 분명한 시기이다.
내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물론, 기계의 창조주는 인간이지만....
단순히 어떤 일을 이성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기계'들이 되려 마치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했던 '사고하는 방법, 과거를 학습하여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려는 이해력'을 보여주는 것이 무섭고 염려된다.
그리고 이런 식의 발전이 가능한 것이 인공지능이며 기계일 땐, 언젠간 이 것들이 그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생기고 또 먼 훗날 언젠가는 그것이 인간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것이 또 언젠간 그들의 창조주인 인간에 대한 의문으로도 이어질 것만 같다.
So who to say that A.I and Machines that we created today will not have their own revolution of their own someday that could possibly so harmful to us humankind?
For, real?
나는 할머니를 돕는 게 싫었다.
무엇보다 귀찮았다.
감자를 깎고 만두를 빚고 설거지를 하라는 소리가 들리면 공부를 핑계 댔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 버리고 헤드폰을 꼽고는 나의 세계로 빠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불효녀지만
(그리고 변명 같지만)
그땐, 지금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께 십 년 전, 이십 년 전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편리한 기계들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기보단 그때, 소매를 걷어 올리고 그녀를 도왔어야 했다.
I was wrong.
그리고 그것이 조금 더 인간다운 자세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이유,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본능 외의 것을 영위하고픈, 이성적인 동물이며
동시에, 느끼고 표현하고 공유하는, 감성적인 동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편히 살기 위해 정말 많은 것을 창조해 왔고 아마 그 노력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으로부터, 기계로부터 시기, 자괴감을 얻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인공지능을 이기려고 더 좋은 두뇌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발전시켜 나가고 즐기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여름이면 모래사장에 다 젖고 데굴데굴 굴러보고
나무와 꽃을 심을 수 있는 곳에, 흙에 새 생명도 심어보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한다 말하고
수고롭지만 수고로움을 수고롭지 않게 생각해도 보고
일부러 먼 길, 차 대신 걸어도 보고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짜증도 내고 기뻐도 하고 눈물도 흘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