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4)
Manhattan, New York
(맨해튼, 뉴 욕)
(아, 뭐야 말만 해도 멋있어.)
솔직하고,
멋진 남자란 남자는 다 만나면서,
변하지 않는 끈끈한 우정을 가진 여자친구들과,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지고서도 굶주리지도 않으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예쁜 옷과 신발은 다 입고 신고 사는 당당한 중년,
이십 대의 나는 종종,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같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상상했다.
(I mean, who didn't?)
도시는
빨리 질리는 내 입 맛에 맞는 새로운 것들과
음식메뉴처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 다른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런 곳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적응해 잘 살고 있는 나는 나 스스로를
늘
도시에 살고,
도시를 위해 살고,
도시에 속한,
'도시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live in the city,
live for the city,
(그리고 나는 지금 종종 그것이 매연냄새였나?라는 쓸 데 없는 상상을 첨가하곤 한다.
Typical me. Yep.)
And I have never really,
gave a thought to live in any other place other than the city,
while I lived in the city.
But life,
unexpected, happened.
십 년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해 고속도로에서 세 시간을 110km으로 운전해 달려온
(21023 치어링 크로스)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제이,
지금은 애들 아빠, 남편의 집이 있던 치어링 크로스는
단어만 들으면
마치 어디선가 너른 들판에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을 것만 같은 그 느낌 그대로
주위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할 것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사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시골, 깡촌, 그대로였다.
말 그대로 깡촌이라 인터넷이 잘 안되긴 했지만..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한국의 정말 못 사는 깡촌, 이런 게 아니라,
작지만 집 전체에 냉 온방 다 되고,
세탁기랑 드라이어까지 있는 세탁실이 있고,
싱크대 양쪽으로 냉온수 잘 나오고 오븐까지 달려있는 주방에
bath tub이 달린 욕실 겸 화장실까지 달려 있는 모던함에
이건 가평도 아니고, 뒷마당엔 한 사십 평 되는 푸른 잔디가 깔린 집에 살다 보니
하지만 살다보니 그런 시간도 오래갈 수 없었다.
이 사회가 돌아가려면 싫어도 누군가는 궂은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살아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곳에서 일상을 살려면,
나도
힘들고 궂은 일을 감당해 내야만 했다.
모든 것이 편하고 쉬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시골은 생각보다 더 큰 챌린지였다.
그놈의 고생, 많이 하고 산 것 같았는데 사실 나는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다고 까지 생각이 되었다.
글을 쓰고 재즈를 좋아하고 스스로를 복잡하고 우아한 도시 여성이라 믿고 살았던 내게 시골은,
그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감마저 주었다.
아니,
한국의 그 어려운 고등교육을 받고,
외국까지 나가 대학을 갔었는데
사실
나는 집 안에 스스로 못 질 하나 못해 사진도 하나 혼자 걸지 못했고
공부하고 글 쓴다치고
밥도 못했고, 청소도 잘 못하고, 설거지도 잘 못하고,
수영도 못하고,
잔디도 못 깎고,
모닥불도 하나 제대로 활활 못 피우고 (생각보다 불 피우는 거 어렵거든요, 캠프파이어는 캠핑 때나, 것도 남이 불 지펴 놓으면 구경이나 했지 제가 왜 불장난을 하겠어요. ㅎㅎ 근데 집에 넓은 뒷마당이 있다 보니 뒷마당에서 모닥불 엄청 피웠네요.)
운전도 못 하고,
식물들은 어떻게 심고 키우고 재배하는지도 모르고.
FUCK.
I didn't know shit.
(and I mean it.)
내가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 곳에선 중요하지 않았고,
내가 배운 것들은 이 곳에서 살면서 필요하지도 않았다.
whatever life that I thought that was so important in life
was, nothing.
what's really important,
what I should've really learned in life,
I didn't learn anything.
나의 이전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그렇다.
자연보다는 건물,
바다보다는 육지,
나보다는 우리로 채워진 도시에서
항상 사람들로, 문명과 가십들로
바쁘고 혼란스럽게,
마치 설탕물 쫓아온 일개미들처럼 한 곳에 바글바글 살면서는 잘 몰랐던,
스무 살이 넘어서,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언어도, 이곳의 문화와 상식과 삶도 모두 처음부터 다시 배워 나가면서,
무엇보다
'혼자가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
'도시가 허락해 주지 않는 넓은 공간에서
화려하고 일시적인 것들로 채워왔던 내 삶을
잘 변하지 않는 시골 풍경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들로 내 안의 빈 공간을 채운 것.'
그리고
'도시에 살아도,
시골에 살아도,
어디에 가서 살아도 살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생긴 것.'